봄이면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동네 꽃집으로 향한다. 초여름이 오면 자주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선다. 장미로 시작해 능소화, 백일홍으로 알록달록 물드는 여름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가을이면 하루하루 다르게 물드는 나뭇잎의 색을 관찰하며 더 자주, 오래 걷는다. 겨울이 오면 따뜻한 차와 커피를 마시며 몸의 온도를 높인다.
꽃이 피고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제철에 맞는 음식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지금 이 계절을 살아간다는 말과 다름없다. 계절은 늘 현재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마음을 현재에 두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발붙인 채 삶의 순간순간에 감응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언제부터 오늘보다 내일을 먼저 살아가기 시작했을까.
지금의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먼 미래를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대비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기꺼이 유예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어느새 현재를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온통 불안이 스며 있고, 젊은 세대는 역설적으로 그 불안을 극복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들에 몰두한다.
어쩌면 불안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너무 오래 살아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수없이 상상하고, 그 가능성 속에서 이미 여러 번 지쳐 버린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래를 미리 살아버릴 필요는 없다. 반대로 현재는 지금 내 손에 닿아 있는 시간이다. 내가 보고, 걷고, 먹고, 숨 쉬는 모든 감각은 오직 ‘지금’에서만 존재한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미래를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감당할 힘을 오늘에서 길러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계절에서 찾곤 한다. 봄이면 꽃을 사고, 여름이면 짙어진 녹음을 찾아 길을 나선다.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 속도를 눈으로 좇고, 겨울이면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을 쉬게 한다. 거창한 의식도, 특별한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동안만큼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생각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몸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간다. 꽃의 향기를 맡고, 바람의 온도를 느끼고, 제철의 맛을 음미하는 순간에는 조급했던 마음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현재를 회복하는 가장 소박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계절은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장미는 자신의 때를 알고, 능소화는 여름을 기다리며, 나뭇잎은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든다. 자연은 늘 정직한 속도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그런 태도인지 모른다. 미래를 준비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예하지 않는 것.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오늘만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고, 오늘만 맛볼 수 있는 계절의 음식을 먹는 일.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현재는 특별한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 곁에 늘 머물러 있던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삶은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계절이 건네는 작은 신호들에 기꺼이 응답하는 오늘들의 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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