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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인, 주민들과 예술을 통해 마을에 활력을 더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가 쇠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신도시가 건설되고 그에 따라 주요 기관들이 이전되며 중심지도 이동한다. 내가 근무하는 현장지원센터가 위치한 마을, 지역도 한 때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인구가 살았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들이 차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도 더 나은 환경으로 이주하였다. 자연스레 인구가 감소 되었고 마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이 70~80대인 고령화 마을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보다 떠나가는 사람이 많은 마을이 되었다. 2021년, 마을에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사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며,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그 중 <살롱기획단>은 마을 문화환경 개선을 주제로 청년 예술인들이 각 분야의 예술을 마을에 접목하여 주민들과 함께 진행하는 사업이다. 자문회의, 연계 프로젝트 기획·진행 등 체계적인 구성을 통해 3년째 각 분야의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장르가 생소한 마을의 어르신, 주민들에게 청년 예술인들은 예술을 경험하고 표현해 볼 수 있도록 각자의 프로젝트를 통해 펼쳐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사진 등의 분야별 청년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진행하였다. 진행한 프로젝트 중 ‘장수사진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다. 현재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 이를 매개로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공유·소통하고자 하는 취지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 특성상 한 번에 많은 인원을 진행하지 못해서 사전 예약을 받았었는데 “부끄러워서 나는 못해”라고 하시며 진행 초기 예약자는 몇 명 되지 않았다. 하지만 1회차 이후 다녀가신 분들이 평소 애정하는 소장품, 소중한 친구와 같이 촬영하고 싶으시다며, 경로당에서는 여기서 같이 지내는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남기고 싶으시다며 찾아오셨다. 서로의 모습을 정돈해 주며 오순도순 돌보는 모습에서 주민간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와 같은 사진관이 많이 사라진 요즘, 마을에서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이렇게 액자로 간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 하신 한 어르신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수요일은 사진 찍는 날이 되었다. 그 날 그 시간이 되면 도시재생살롱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삼삼오오 주민들이 모였고, 순서를 기다리는동안 예전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동안 소문을 따라 예상했던 인원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성황리에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마을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라 걷거나 이동하는 부분에 어려움이 많은데 어떻게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자주 만나 뵙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예술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활동하는 모습에서 그 고민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때로는 꺄르르 웃으며, 때로는 집중해서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순간들에서 소녀같은 감성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끝나고 가실 때는“오늘도 즐거웠어~고마워, 고맙다!”라고 연신 말씀하시며 집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런 따듯한 말들이 진행하는동안 예술인들, 사업을 진행하는 나에게 보람과 감동을 주었다. 행복하게 참여해 주시는 주민들과 예술인들의 예술, 열정, 젊음이 더해지며 자연스레 마을은 활기를 띠었다. 올해도 우리는 4개 분야 예술인들과 마을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 연간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작년의 감흥을 이어 예술을 통해 마을 곳곳에서 ‘문화예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가꾸어 나갈 것이다. /박주연 팔복도시재생지원센터 선임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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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3 17:49

“이러다가는 다 죽어!”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선보였던 콘텐츠 '오징어게임'에서 등장인물 오일남(노인)이 외친 대사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스포일러의 우려가 있어서 생략하지만, 결론은 자신들의 생존이나 눈앞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 결국 구성원 모두가 파국에 치닫는 위기 상황으로 이어지자 노인이 두려움에 떨며 외치는 한 줄의 절규였다. “이러다가는 다 죽어!” 나는 농촌으로 귀농한 지 5년이 되었다. 강산의 반절쯤은 변했을 시간일까? 문제는 강산이 어떤 한 공익광고처럼 푸르게 푸르게 변해왔다면 30대 청년이 농촌으로 들어와 그저 잘 정착해 가고 있노라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강산은, 사회는, 환경은 그렇게 푸르게 변한 것만은 아닌듯싶다. 양봉을 시작하여 매해 위기가 찾아왔고 그때마다 극복해나가고 있었지만 2022년부터 심상치 않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청년꿀벌농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필자의 모골을 서늘하게 하고 있다. 2022년 봄, 월동에 들어갔던 꿀벌들을 입춘을 기점으로 깨워 본격적인 꿀 농사를 준비하는데 벌통 안에 있어야 할 꿀벌들이 사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었다. 그 당시 언론사는 꿀벌 집단실종사건, 72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는 등의 타이틀로 연일 꿀벌 군집 붕괴 현상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현상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우려했던 대로 올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작년 가을부터 양봉농가들로부터 꿀벌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고 그러한 현상은 올해 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2023년 2월 22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전국적으로 약 40~50만 봉 군(약 100억 마리)가 사라졌지만, 양봉산업과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한적이라 발표하였고 또한 폐사의 원인이 꿀벌의 기생충인 응애의 방제 실패, 즉 양봉농가의 관리부실을 주원인으로 단정 지으며 기후변화는 꿀벌피해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봉업에 종사하며 매일매일 일기예보와 날씨 앱을 끼고 사는 입장에서 월동준비를 해야 했던 2022년 가을에 평년보다 2도나 높았기에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꿀벌들, 2023년 초봄에 따뜻해지다 갑자기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한파의 영향 등 이전과는 다른 이상기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산에 헬기를 이용해 살포하는 항공방제와 논에 드론을 이용한 방제, 꽃이 피는 시기에 과수농가에서 뿌리는 유독성 살충제 등 꿀벌을 위협하는 위험요인까지 수많은 가능성이 묵과된 발표이기에 안타깝다. 꽃을 수없이 옮겨 다니며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꿀벌.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0여 개의 작물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분석처럼 꿀벌의 역할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식물의 수정을 돕는 역할의 부재는 결국 초식동물, 육식동물, 인간에게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보일 것이고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내로 멸종할 것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예언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농부의 입장뿐만 아니라 18개월 딸아이를 두고 있는 아빠로서 꿀벌이 사라지는 문제는 단순하게 넘어갈 사항은 아니다. 우리의 단순한 문제의식과 원인 규명이 다음 세대의 생존에 크나큰 부담이 될 수 있으므로 “다 같이 살기 위해!”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박넝쿨(농촌기업브랜드 신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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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16 17:08

챗GPT, 우리는 사용할 준비가 되어있나?

약 한 달 전 필자는 유튜브에서 믿기지 않는 영상 하나를 보았다. 미국 교육계가 어떤 AI(인공지능)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에서 말하는 바로는 미국 학생들이 레포트나 시험 답안을 AI로 작성해 가는 통에 숙제가 사라지고 학교는 AI가 대필한 답지를 걸러내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AI가 레포트에 담아야 할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걸 완결된 문단, 한 편의 글로 쓸 수 있다고? 더군다나 이게 미국 내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정도로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고?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챗GPT’ 이게 그 AI의 이름이었다. 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일종의 검색엔진. 단순히 검색한 정보를 나열하기만 하는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의 검색엔진과 달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나름대로 조합하고 걸러내어 완결된 문장과 문단으로 정리해준다는 AI. 당혹스러웠다. 필자가 AI에 대해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AI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을 이긴지 오래고, AI가 고흐나 렘브란트 같은 거장의 화풍을 따라 그리는 것이 놀랍지 않은 시대이다. 필자가 당혹스러웠던 지점은 AI가 가진 말도 안 되는 연산능력이나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필자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AI가 ‘그럴듯한’ 정보를 새롭게 생산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제는 이 정보들이 AI가 주는 인상만큼 정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토록 핫한 챗GPT 역시 스스로 제공하는 정보가 일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다. 당장에 챗GPT만 해도 2021년도까지 정보만을 학습한 채 22년 11월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므로 23년도 현재의 최신 정보에는 취약하다. 그리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인 만큼 온라인상에서 유통되는 데이터, 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기도 한다. 이는 AI가 습득한 정보가 항상 공신력 있고 검증된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정보의 파도 속에 휩쓸리며 살고 있다. 온갖 인터넷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들어온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검색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정보가 확실한 정보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판단을 할 때 한 가지 정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정보를 비교하고 거기서 나름대로 맞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별’해낸다. 그 선별의 과정이 정교할수록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챗GPT는 이러한 선별의 과정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AI가 제안한 검색 결과물을 우리가 의심하는 것이 쉬울까? 압도적으로 똑똑한 AI가 내놓는 결과물은 대체로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쌀 한 톨 만큼의 오차는 눈 감고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훨씬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우리는 정확한 정보를 선별해내는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AI는 우리의 일상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도구일 뿐이다. 대신 답을 찾아주는 정답지나 해결사가 아니다. 눈 깜짝할 새 이미 와버린 인공지능의 시대. 온전히 누리기 위해 우리는 의심하고 판단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보람 완주 문화도시지원센터 공유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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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9 18:20

은둔형 외톨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

“코로나 양성입니다. 바로 집에 들어가셔서 일주일 동안 격리하셔야 합니다.” 기침과 인후통이 심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처음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작년 2월 달 이였으니 딱 1년 만에 두 번째 확진이다. 실내 마스크 착용도 의무에서 권고사항으로 바뀐 시기에 느닷없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장 모레 연구실에 필자가 담당인 큰 행사가 있는데 가지 못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부랴부랴 동료 연구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말하고 행사 관련 준비는 다 했으니 모레 행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다행히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한시름 놓고 집에 들어갔다. 작년에 처음 코로나19에 확진되었을 때 필자는 서울에 일정이 있어서 3달 정도 친한 형이 살고 있는 서울 반지하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필자가 코로나19 확진이 되면서 본이 아니게 집주인 형을 본가로 쫓아내게 되면서 필자 혼자 집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모님과 남동생이 함께 살고 있었기에 2평 남짓한 방에서 방문을 닫고 일주일의 격리생활을 시작했다. 식사시간이 되면 부모님이 음식이 담긴 상을 방문 앞에 놓고 방문을 똑똑하고 두드리면 문을 열고 음식을 받았다. 이 웃지 못 할 상황을 겪으면서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인 최민식이 이유도 모른채 15여 년 동안 감금되어 군만두를 받아먹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나오는 정려원이 부모님이 문 앞에 차려놓은 음식을 받아가는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방안에만 있는 게 갑갑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방에만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먹고 자고 핸드폰 보고, 다시 먹고 자고 핸드폰 보는 단조로운 삶의 방식에 어느 순간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무기력감과 고립감이 들었다. 비록 필자의 경우는 코로나19로 인한 짧은 기간의 격리였지만 격리를 마치고 생각이 난 단어가 ‘은둔형 외톨이’였다. 격리기간 느꼈던 무기력감과 고립감은 강도는 다르겠지만 은둔형 외톨이가 경험하는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경제적 또는 정서적인 이유로 인해 고립·은둔 청년과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청년 중 고립·은둔 청년이 12만 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으로 보자면 61만여 명의 고립·은둔 청년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라북도를 비롯해서 기타 지역에서 이런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고립·은둔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여러 가지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광주광역시 경우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를 운영하여 은둔형 외톨이의 회복력 강화를 위한 사회안정망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전라북도도 조례가 제정 된 만큼 실태조사를 진행해서 전라북도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관련 사업들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제 고립·은둔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줄 때다.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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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02 18:01

올바른 이해를 통한 주민참여가 마을의 변화를 만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을의 모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마을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주민일 것이다. 또한 생활 속에서 불편하고 필요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도 마을의 주민일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사업 대상지 주민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그렇기에 지역, 마을의 모습과 현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민들과 회의, 워크숍, 인터뷰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소통·공유하며 사업을 진행한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의 관심과 참여는 중요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이 마을의 주체로서 참여할 때 잘못된 이해로 인해 공동,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닌 개인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의견은 자칫 잘못된 관습이나 이해관계로 사업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을까?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는 주민의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을 통해 그들의 의견과 참여가 가벼운 것이 아닌 우리 마을이 변화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그린신복마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에서는 주민교육사업으로 도시재생대학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고령인구가 많은 우리 마을의 특성상 정형화된 이론학습형 교육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은 단계별 프로그램(기본교육-우리동네디자인-주민공모사업)을 통해 기본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학습과 더불어 문제점을 도출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실행해 볼 수 있는 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작년 도시재생대학은 기본과정 '도시재생 사례 들여다보기', 워크숍 '우리동네 현황 파악하기', 우리동네디자이너 '마을문제 인식과 주민의식 조사', 주민공모사업 '주민참여 여가교실'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워크숍 '우리동네 현황 파악하기'에서는 우리 마을의 문제점 등에 대해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하였다. 그 중 골목길 환경개선, 쓰레기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먼저 우리 마을 쓰레기 정거장을 직접 청소해 보았다. 또한 진행하는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이후 결과공유회 때 주민들과 함께 영상을 시청하며 소감과 평소 생각했던 지점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직접 실천해 보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통해 평소에 자칫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부분들이 함께 가꾸어 나갈 때 변화한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는 '주민참여 여가교실'을 진행하였다. 주민들이 모여 평소 일과시간 중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해 보자! 라는 니즈로 시작하게 되었다. 마을 내 단순한 여가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우리 다음에 볼 때까지 잘 지내고, 다시 만나자”라며 무료한 생활 속에 안부를 물으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소통·만남의 장이 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교육들은 주민들에게 올바른 이해와 의식을 싹트게 해 점진적으로 마을에 좋은 영향력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도시재생은 주민의 관심과 책임감, 성숙한 참여가 있을 때 우리 지역, 마을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동행할 것이다. /박주연 팔복도시재생지원센터 선임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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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23 15:19

청년농촌활동가들이 뭉치면 생기는 일!

“내난마을로 내가 시집와서 50년 만에 이렇게 즐겁고 행복하고, ⋯⋯ 앞으로도 모든 마을 사람들이 더욱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마칩니다.” 잔잔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마이크를 잡은 할머니의 멘트가 나오고 잠시 후 마을 주민분들의 흥겨운 노랫소리로 가득 찬다. 지난해 익산시의 성당면에 소재한 내난마을이라는 곳에서 열린 작은 마을 축제 “주민 재능잔치 노래자랑” 기록영상의 한 장면이다.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 사회적 경제공급기반 조성을 위한 공모사업에 선정된 익산시는 농촌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 9명을 선발하여 청년농촌활동가로 위촉하고 역할을 부여하였다. 사회적경제 관련 서비스의 혜택을 받기에는 도심지와의 떨어진 거리와 비례하듯 농촌의 주민분들,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그 수혜 가능성이 꽤 희박하다. 마을공동체 사업이나 체험‧휴양마을과 같은 사업을 운영하는 특출한 이장님이나 위원장님이 있거나 그 마을에 유능한 청년농업인, 혹은 오지랖이 넓은 지역주민이 있지 않고서야 일반적인 마을에는 사회적 서비스나 문화 혜택을 받기에 참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농촌 마을의 현장을 찾아가 주민들의 소리를 직접 듣고 도움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서비스는 제공하거나 지역자원 연계가 필요한 곳에는 관련 기관 및 단체와 연계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바로 농촌청년활동가들의 역할이다. 내난마을의 행사 또한 그러한 차원에서 활동가들이 지원하러 갔었고 행사 준비과정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 유튜브에 업로드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는데 할머니가 신나게 노래한 뒤 마이크를 놓지 않으시고 하신 그 말씀의 여운이 아직도 내 안에 진하게 남아있는 모양이다. 농촌모니터링, 농외소득, 청년인큐베이팅분야로 활동가들을 나누어 각 영역에 특화된 서비스를 지난해 7월부터 공급하고 있는데 농촌모니터링 활동은 농촌의 가장 중심소득원인 농산물 생산 농가들을 위한 서비스로 익산시의 마을전자상거래지원사업과 연계하여 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홍보마케팅 지원이 가장 큰 임무이다. 또한 농외소득 활동은 농촌의 농산물 이외에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 농경문화자원, 자연생태자원, 전통문화자원 등 공동체의 가치와 역사적 흐름이 담겨있는 자원들을 발굴하고 개발하여 농외소득 창출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체험‧휴양마을의 활동을 돕고 있다. 현장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체험프로그램 업그레이드 및 신규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작업을 하거나 고객 서비스 개선 활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청년인큐베이팅활동은 먼저 농촌 현장에 절실히 필요한 청년 인적자원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활성화를 위한 활동과 관련 거버넌스 구축을 바탕으로 관계기관들의 협조체계를 마련하여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농촌에 필요한 인적, 물적자원을 공급하는 일이다. 단순하게는 청년들의 귀농·귀촌을 돕기 위한 상담 활동부터 지원사업 신청을 위한 사업기획 컨설팅은 물론 단독으로 할 수 없는 분야에 대해 관련 기관들을 연계해주는 매칭 서비스까지, 생각보다 농촌 현장에 필요한 요청들이 많아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겉으로 보기에 농촌에 청년들이 꼭 도움만 주는 건 절대 아니다. 할머니의 고백이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것처럼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되고 우리는 그만큼 더 자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게 아닐까? /박넝쿨 농촌기업브랜드 신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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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6 15:04

‘기부’ 말고 ‘공유’할까요?

누구나 한두 개 정도의 취미나 관심사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 각자의 관심사를 풀어갈 것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정보를 찾거나 인터넷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학원이나 공방에 등록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개인의 취미, 관심사인 만큼 이를 해소하는 방법 역시 개인적인 범위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완주군은 여건 상 개인이 적극적으로 취미활동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완주군 읍면마다 가진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완주라도 어떤 지역은 도시 중심가이고, 어떤 지역은 대한민국 8대 오지 중 한곳이라 불린다. 그래서 일부 지역의 주민들은 취미활동을 위해 전주, 대전 등 완주군 이외의 지역까지 움직이는 수고를 겪어야만 한다. 필자가 2018년 처음 완주로 출근해 주민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도 바로 이와 같은 하소연이었다. 문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지역의 문제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허투루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문화강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이지 효과적인 대응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심 끝에 나온 대안은 ‘재능’을 ‘공유’할 수 있게 해보자는 것이었다. 누구나 관심사를 가지고 있듯이, 누구나 하나쯤 잘하는 부분이 있다. 개중에는 나만의 노하우라고 할 만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개인이 지닌 노하우를 원데이 클래스로 꾸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면 자연스럽게 주민 주체 문화 향유기반이 조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이 사업의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가진 재능(취미, 관심사, 노하우)를 원데이 클래스로 기획하고, 내가 클래스의 강사가 되어 이웃에게 재능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때 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것은 약간의 재료비와 수강생 모집에 필요한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이 사업은 원데이 클래스 지원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핵심은 강좌가 아니라 사람들 간의 만남과 교류 과정에 있다. 하지만 초반에는 주민들의 ‘재능기부’를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기부가 아니라 ‘공유’라고 안내를 해도 무엇이 다르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필자가 다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활동을 베풀기 위해 하시는 건가요?’ 그럼 백이면 백 ‘아니, 내가 즐거워서 한다’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어진다. ‘기부’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나의 희생과 헌신을 전제로 한다. 희생과 헌신을 담보로 한 기부는 널리 확산되거나 지속되기 어렵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 안에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재능이라고 하는 자원을 ‘공유’하는 것은 즐겁다. 즐거운 일은 널리 퍼지고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재능공유의 수혜자이지만 내일은 내가 재능을 나눠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일종의 순환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올해로 5년차를 맞는 이 사업을 통해 많은 변화를 느낀다. 많은 주민들이 더 이상 취미활동을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완주는 일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다고 자부심에 차 말을 한다. 재능공유를 통해 완주군민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문화향유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지속, 자립 가능한 힘. 공유가 가진 가능성을 믿는다. /장보람 완주 문화도시지원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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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9 16:27

용산역 기차선로에 앉아있던 남자

오래전 일이다. 필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 날도 교육을 마치고 익산으로 내려가기 위해 용산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며 의자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는 말에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 현장에는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고, 기차선로에 어느 남성이 앉아 있었다. 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기차선로에 내려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는 몸에서 술 냄새와 땀 냄새가 났었고 흙먼지가 잔뜩 뒤덮여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마치 현장일을 방금 마친 일용직 노동자의 모습과도 같았다. “선생님, 여기에 왜 이러고 계세요?” “어. 여기서 죽을려고.” “오늘 무슨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어 힘든 일이 있었지” 그의 목소리에서 깊은 인생의 고뇌가 느껴졌다. 조용히 앉아서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던 찰라 저 멀리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소리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야기를 멈추고 재빨리 그의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플랫폼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삶의 의지를 포기한 그의 몸은 물먹은 스펀지 마냥 축 늘어져 쉽게 플랫폼 위로 올리지를 못했다. “도와주세요. 누가 좀 같이 도와주세요!” 필자의 소리를 듣고 두 명의 시민이 달려왔다. “저기 선생님은 역무원을 빨리 찾아서 여기로 와주시라고 해주세요. 여기 선생님은 저랑 같이 이분을 끌어올려주세요.” 다행히 기차는 우리가 있던 선로로 오지 않고 다른 선로를 이용하는 기차였고, 그 남성도 무사히 플랫폼 위로 끌어올려졌다. 잠시 후에 역무원이 도착을 했다. “선생님 여기서 뭐하세요. 저 따라오세요”라며 그 남성을 데려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터벅터벅 역무원 뒤를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남성 또한 분명 한때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꿈과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 선로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었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남성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과연 그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이 마무리 된 후에 극도의 긴장감으로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남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필자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도우러 온 사람이 두 명 밖에 없구나’ 생각하며 이해는 했지만 씁쓸함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최근 언론을 통해 2030대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과 고독사하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지자체에서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청년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현실이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또는 정서적 어려움 때문에 상담을 받고 싶지만 기관에 방문하기까지가 문턱이 참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마음 편히 상담을 받고 위로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원스톱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의 역할도 중요하다. 용산역 선로에 앉아있는 남자를 구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달려왔던 것처럼, 우리 주변의 청년들을 살펴보며 청년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어른이 되어주자.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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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02 16:16

고유한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지역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다. 지역과 마을에는 고유한 문화가 있고, 사람들은 그 문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질서를 지키며 살아간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도시가 부상하고 반대로 쇠퇴하는 지역도 늘어간다. 인구감소, 주거환경 노후화 등으로 낙후된 지역이 생성되며 그 마을의 문화 또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지역이 도시재생의 대상이 된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물리적인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경제적 측면까지 고려하여 지역이 지속가능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대부분의 도시재생 지역은 문화재생 지역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 지역들은 낙후된 건물이나 시설들을 더 나은 환경으로 정비·개선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적 향유 프로그램 운영과 마을,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문화기반 조성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외부의 잘된 사례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도시재생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문화로 도시재생의 활력을 더하다. 도시재생이라는 방대한 범주에는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화의 힘이 존재한다. 문화적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함께 활동하면서 마을과 지역에 활력을 더하게 된다. 이러한 부분이 처음 필자가 도시재생에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 이유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장소 기반의 문화를 생성하고, 문화적 활성화를 통해 그 장소의 가치를 바탕으로 마을, 지역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가꾸어 나가는 전주의 원도심 하나의 사례로 2016년~2021년까지 진행된 전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이 있다. 전북도청 이전과 함께 다양한 이유로 쇠퇴하고 있는 지역을 활성화 시키고자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진행한 도시재생사업이었다. 물리적, 문화적 재생의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고 시민 활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가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자연스러운 활성화 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는 주체 발굴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각 분야별 주체들이 지속가능성을 기반으로 도시를 가꾸어 나가는 재생을 위한 것이었다. 원도심 도시재생 대상 구역에는 상권의 중심지가 이동하며 쇠퇴하게 된 고물자골목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며 그들의 가치와 문화가 잊혀져가고 있는 골목이었다. 이 지역에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둥근숲이라는 거점시설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 공간을 활용하여 청년들이 과거의 문화를 통해 골목의 활력을 되찾고자 주민들과 함께 <둥근숲 숲이 될 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문화콘텐츠를 통해 고물자골목과 둥근숲에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현재도 그들은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쇠퇴지역에 공공의 이용이 가능한 장소를 구축하고, 문화적 활성화 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물리적 재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예방하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지역과 주민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 도시재생이다. 문화로 잇는 도시재생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이 있다. 그 마을, 지역의 고유한 문화자원을 통한 재생이 있을 때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 있는 문화적 도시재생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 /박주연 팔복도시재생지원센터 선임코디 △박주연 선임코디는 전북대학교를 졸업한 뒤 전북청년정책포럼단 전주지역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전북청년정책포럼단 위원∙야호학교추진위원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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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26 14:07

어떤 농사를 짓고 계십니까?

요즘 농촌에서의 새로운 꿈을 찾아 귀농·귀촌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이 있다. 특히 청년층에서도 귀농에 관한 관심이 그야말로 “핫”하다. 2023년부터 대폭 확대된 “청년창업형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 기존보다 파격적인 지원확대, 예를 들면 정책자금의 대출한도를 최대 5억까지 늘렸으며 상환조건 또한 대출금리 연 1.5%(고정금리) 기준으로 5년 거치 20년 원금 균등 분할 상환! 거기에 영농초기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영농정착지원금 월 110만 원까지. (물론 2년 차와 3년 차에는 100만 원, 90만 원으로 차등지급) 그만큼 농업·농촌 분야에 청년의 역할론이 강조되고 있으며 정부의 지원 속에서 많은 청년 농부들이 육성되고 정착해 나가고 있다. 필자 또한 2018년도 청년창업형 후계농 1기로 선정되어 귀농한 경우로 농촌에 정착한 지 벌써 6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께서 꿀 농사를 지으셨고 아버지 또한 젊었을 때 그 밑에서 양봉을 하셨던 걸 알았기에 품목을 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실 상담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10여 년 동안 상담만 해왔던 내게 농업과의 연관성이라고는 단 1도 없었다. 농업이라 하면 그저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흘려들었던 앨빈 토플러 할아버지의 제3 물결 중 가장 첫 번째 물결이 농경시대였음을 일컬었던 정도? 하지만 청소년법인기관에서 사직하고 귀농을 결심하며 품목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끊겼던 가업을 잇는 청년 농부”, “3대째 꿀벌 농사를 짓는 청년꿀벌농부”라는 마케팅 활용에 아주 탁월한 타이틀이 그저 달콤하기만 했기에 호기롭게 양봉을 선택했고 벌통 30군으로 꿀벌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에 이상기후로 아카시아꿀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꿀의 75%를 차지하는 아카시아꿀을 한 방울도 수확하지 못했다는 말은, 그냥 그해 꿀 농사가 망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 해는 꿀벌의 최대 숙적인 진드기 방제를 위해 처리한 약품처리를 너무 적게 해서 꿀벌이 많이 죽어 나왔고 2021년에는 양봉장 인근의 과수원에서 살포한 농약으로 인해 꿀 수확 직전에 가장 왕성한 세력의 벌통들이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대망의 다섯 번째 해였던 작년 봄, 전국적인 꿀벌 연쇄 실종사건으로 78억 마리가 일제히 사라졌을 때 필자의 꿀벌들 또한 피해를 보았다. 그 짧은 기간에 참, 기구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농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먹고 살기만을 위함이 아니다. 꿀벌을 지켜야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신념과 더불어, 농촌에 청년들이 있어야 우리의 농촌 또한 지켜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농업은 1차 농산물 생산을 통해 우리의 먹거리, 즉 식량자원을 책임지는 아주 막중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 그뿐만 아니라 농촌의 생태환경자원과 농경문화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 가치와 공동체의 기능, 그 안에 숨겨있는 공익적 가치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역할이 절실하다. 필자를 향해 어떤 농사를 짓고 있냐는 질문을 한다면 꿀벌 농사를 짓는 것과 함께 청년농촌활동가로 활동하며 사람이 농촌에 머물고 정취를 누리며 언제든 다시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을 남기는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본 기고를 통해 농촌에 정착하는 지역 청년들의 좌충우돌 농촌 생활과 더불어 다양한 농촌 활동들을 포장도 가감도 없이 전해드릴 예정이니 기대하시길! /박넝쿨 농촌기업브랜드 신비 대표 △박넝쿨 대표는 현재 익산시희망농정위원회 심의위원, 익산시농촌활력지원센터 청년농촌활동가 대표, 익산시문화도시지원센터 이리랑익산(유튜브채널) CP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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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9 16:17

농한기에 ‘문화’합니다!

최근 들어 ‘옛드(옛날 드라마)’가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다시 공개되고 소비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는 방송평론과 언론의 분석기사 등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필자 또한 직장 동료들과 ‘옛드’ 이야기를 하자면, <전원일기>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드라마가 주는 ‘무공해’와 ‘힐링’ 감성이 있는데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배우들이 낯설지 않고, 특히 완주에 일터를 잡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원일기>는 ‘옛날 드라마’ 이상의 감상을 주고 있다. 필자의 눈으로 본 농촌의 ‘문화현장’은 50년 전 그 당시와 현재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주체적인 문화활동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지역 문화환경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는 문화도시 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초등학교 때 TV에 나오던 그 시골, 농촌과 지금의 현실이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마을회관의 모습도, 동네 작은 가게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드는 주민들의 모습도, 혼자 사는 노인, 농촌 노총각 등 지금으로 말하면 1인 가구의 문제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유독 초점이 맞춰지는 장면은 <전원일기>의 겨울이었다. 바로 농촌의 농한기. 많이 다양화됐지만, 대개 농촌은 추수가 끝나는 11월부터 이듬해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까지 농한기를 맞는다. 농한기가 되면 주민들은 여유가 생겨나지만 이 여유를 채워줄 여가와 문화는 턱 없이 부족하다. 아니 전무한 수준이다. 문제는 바로 현실과 맞지 않는 지원시기. 특히 완주 같은 도농복합도시는 더욱 그렇다. 정작 주민들이 문화활동을 필요로 하는 이 시기에는 모든 지원사업들이 올스톱, 그야말로 ‘한기’를 맞고 있는 것이었다. 지자체부터 여러 기관, 단체들까지 주민들을 지원하는 공모사업, 참여사업 모두가 봄, 가을에 집중돼 있다. 공적 영역 사업의 회계연도 문제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또한 사정은 똑같지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문화도시 정책이고, 완주문화도시조성사업이기에 ‘꼼수’라도 부려봐야 할 판이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마을 문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주민들, 이장님들, 부녀회장님들, 촌장님들과 함께 고민을 시작했다.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남아도니 이때야 말로 ‘문화’하기 좋은 때라 한다. 또한 농한기는 종종 마을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는 때이기도 했다. 잦은 음주와 내기 화투 등으로 일어난 다툼은 공들인 마을 관계를 해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와 건강상 문제는 여전히 품앗이 문화가 이어지는 마을 농사일에도 피해를 주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어르신들이 외출을 꺼리시니 소통과 교류도 단절되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완주에서는 지원방식의 다양화와 행정기관 협의,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안과 참여로 크고 작은 농한기 문화 프로그램이 지금 완주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사실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적이다. 1년 365일 문화로 풍요로운 도시, 생각만으로도 기쁘고 희망적인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생각이 많아진다. 이것은 완주군, 한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보조금법이 그래서, 다들 그렇게 지원하니까, 현장을 우리는 끊임없이 외치지만, ‘본래’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장이 달라졌다면, 우리의 욕구와 수요가 달라졌다면 제도도, 관습적인 방식도 다 변화해야 하고 그런 노력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문화활동가도, 중간지원조직도, 시민도, 이 도시에서 행복할 수 있다. 지역과 시민의식의 변화를 모른 척 하지 말자. 우리는 20년 전 드라마를 보며 ‘어머!’ 해야 맞다! /장보람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유문화팀장 △장보람 팀장은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사업팀과 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기획팀 등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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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12 17:37

청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한 해가 지나가고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위험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그리고 한참 꽃 피울 나이의 청년들이 희생 된 10.29 참사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다. 그리고 청년들의 소비 트렌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인생은 오직 한번 뿐”이라는 욜로(YOLO) 문화와 “플렉스 해 버렸지 뭐야”라는 유행어와 함께 플렉스(Flex) 문화가 크게 유행하며 현재를 중요시하고 지금의 “나”를 위해서 과감하게 소비하는 것이 청년들의 소비 문화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생활하는 무지출 챌린지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활용 해 먹는 냉파(냉장고 파먹기)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필자도 SNS에 올라온 챌린지를 보고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해보기도 했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아 결국 며칠 가지 못하고 포기를 한 경험이 있다. 투자에 관해서도 주식과 코인 투자에 몰렸던 청년들이 점점 저축을 하며 “짠테크”를 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처럼 짧은 사이에 청년들의 문화 트렌드가 정반대의 경향으로 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라는 말처럼 떨어질지 모르고 계속 올라만 가는 물가와 금리 그리고 찾기 힘든 일자리 문제로 인해 청년들이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정부와 많은 지자체에서 이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청년 정책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은 눈에 띄게 효과를 나타내는 지역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 필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말모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친구들이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었다. 주변의 알고 지내는 청년들만 봐도 많은 수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전망하는 기사들을 보면 올해보다 작년이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 보다는 불안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필자 또한 청년이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와 같은 무책임하고 어설픈 위로의 말을 청년들에게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런 현실 앞에서 청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많이 회자 되었던 이 문구는 필자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단은 끈질긴 노력으로 강호 포르투갈을 이기고 우루과이와의 골득실에서 앞서 16강이라는 기적을 일궜다. 필자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포르투갈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16강 진출을 보며 미리 짐작해서 포기를 했던 지난 내 과거의 모습을 반성을 하게 됐다. 올 한해도 우리는 현실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좌절하고 쓰러지고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미리 포기하지는 말자.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 扮)의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처럼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이고, 세상이 우리의 형편과 모습을 보고 비웃을지라도 우리 함께 서로 응원하며 그 뜨거운 마음만은 꺾이지 말자! /최준호 원광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연구원 △최준호 연구원은 (사)새벽이슬 정책실장을 겸하고 있으며, 익산시 일자리정책과 청년정책계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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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05 14:20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2016년도 바둑판 위에 ‘인간과 AI의 대결’이라는 주제가 던져졌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최정상급 프로기사인 이세돌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총 5번이 이루어졌다. 3월 13일 5번기 4국에서 이세돌은 묘수를 통해 승승장구하던 인공지능을 꺾었고, 알파고가 스크린에 띄운 ‘기권’의 메시지는 기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뻔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도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라는 안도감까지 주었다.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의 엄청난 성장 속도를 봤기 때문일까? 그해에는 유독 ‘2030년이면 30% 직업 인공지능이 대체해…’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군’과 같은 타이틀의 기사가 유독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예술가의 직군은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끝난 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인공지능 대체 불가 직무에서 화가, 조각가, 작가, 연주자 등 대부분이 예술가로 나타났다. 고도의 창의력이 필요하며 인간의 감성에 기초한 직업들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대국이 끝난 후 벌써 6년. 이세돌은 19년도 은퇴 사유 중 하나를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인공지능에 느낀 허무와 좌절감으로 밝혔다. 실제로 알파고는 벌써 3년 전에 ‘알파고 제로’라는 이름으로 발전했다. 스스로 바둑을 학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72시간 만에 기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00전 100승을 거두고, 새로운 바둑의 정석을 만들어냈다. 절대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졌던 문화예술계는 어떨까? 실제로 지난 9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한 작품이 사실은 텍스트를 이미지화해주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 의 생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미술뿐만이 아니다. 카카오브레인과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개발한 인공지능 시인 ‘시아(SIA)는 지난 8월 첫 시집을 출간했고, 아직은 학습 능력에 따라 미약한 부분이 있지만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스킬이라고 생각되었던 감수성을 전달한다는 호평을 받았다. 화가, 작가, 작곡가까지 단순히 창작물을 모방하던 인공지능들이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스스로 사고하고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AI 작가’들의 등장으로 이제 문화예술은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창작물로 봐야 할 것인가 생산품으로 봐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아직 인공지능을 작동시키고 이를 평가하는 주체가 결국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주체보다는 도구로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예술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 이후 짧은 몇 년 간 많은 예술가들이 장르적 도약을 이루어 낸 것만 보아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을 통해서 예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모방론, 표현론, 형식론 등 예술을 정의했던 수많은 이론은 새로운 형식의 예술가와 작품에 의해 뒤집히고 또 다른 이론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공지능 예술가의 등장은 너무나 인간 같은 모습에 섬찟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기술과 예술의 융합 과정에서 문화와 삶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과거를 송두리째 뒤집을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갈 것이고, 그것이 예술이니까. /이수진 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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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5 13:51

지구력

금세 겨울이 오더니 2022년도 막바지다. 봄에는 춥다가도 따뜻해지더니만, 여름엔 무진장 더웠다. 또 가을은 덥다가도 추워지더니 겨울은 무진장 춥다. 날씨는 시기가 되면 변화무쌍하게 휙휙 변하는데,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12월 다가오는 생일에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다 여전히 제자리인 내 모습에 조금 서글퍼졌다. 2022년이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한 해를 돌이켜보니 도전하면 실패했고,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었던 것 같다. 가장 크게 얻은 건 깨달음이다. ‘두 마리 토끼는 숙련된 사냥꾼만이 잡을 수 있구나’ 이러한 깨달음은 내 자신을 토끼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한 무능력한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가장 크게 잃은 건 지구력이다. ‘욕심은 앞서는데 행동은 망설이니 토끼가 도망가기 딱 좋겠지. 아 나는 무능한 사냥꾼. ‘이러한 자책을 반복적으로 계속 일삼다 보니 무능도 모자라 무기력한 사냥꾼으로까지 전락시켰다. 생일 전날. 무기력으로 밋밋한 일상은 생일이 코앞에 다가와도 아무런 기대가 되지 않았다. 졸업한 같은 과 친구들의 등쌀에 저녁 약속이 잡혔다. 우리는 겨울에 모이기만 하면 눈이 왔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눈이 펑펑 내렸다. 다들 퇴근 후라 지친 몸을 이끌고 거친 눈바람을 해치며 삼례에서 전주, 익산까지 갔다. 애들이 준비해온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으로 만든 케이크를 보고 한참을 웃다가 거창하게 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느라 누구 한 명의 눈이 반쯤 감긴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삼례로 돌아오니 11시였다. 친구가 같이 있다가 자정이 지나면 초를 불자는 제안했다. 그렇게 친구의 집에서 자정을 기다리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미간에 초를 꽂고 소원을 빌었다. 노력 없이 이루고 싶은 게 많아 구구절절 빌다 보니 좋아하는 연예인 얼굴에 빨간 촛농이 떨어져 있었다. 섬뜩했지만 이 섬뜩함도 즐거웠다. 아침에는 멀리 떨어진 친구들의 연락에, 학과 친구들의 정성 어린 축하에 즐거운 생일날을 보냈다. 그날은 자기 전 침대에서 한참을 혼자 피식거리다 잠이 들었다. 참나 기념일이라는게 뭐라고 이렇게나 사람을 들뜨게 하나. 이상하게도 들뜬 마음은 밋밋하던 일상을 조금씩 채웠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보단 나를 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계산기가 나오기도 전에 베풀었다. 아무래도 실패에 집중하다 보니 고독에 빠졌던 것 같다. 그래서 반복된 일상에 지루하고 지쳐도 다시 지속 할 수 있게 도와준 것들을 잊고 있던 게 아니었나. 나는 올해 번듯한 성공은 없었지만, 과정 중에 사소한 즐거움과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고 싶은 욕심과 의지까지 버리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포기하긴 이른 사냥꾼. 거창한 생일을 보냈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올해 지구력이 되어준 모든 것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말에 보는 영화, 계속 들어도 좋은 노래, 친구들, 학교 사람들, 가족들, 오래된 인형들 전부 여전히 제자리에 있어 줘서 고맙다. 이 마음을 올해가 가기 전 깨달은 사실이 이번 생일에 받은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하며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싶다. 새해가 다가온다. 항상 연말은 끝이라서 아쉽고, 연초는 시작이라서 두렵다. 실패하면 말고, 성공하면 좋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숙련된 사냥꾼.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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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8 14:19

영화 다시 보기, 되풀이하며 새롭게 바라보기

몇 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면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롭고, 어떤 장면은 볼 때마다 매번 나를 설레게 한다. 이렇듯 같은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그 영화가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내가 겪은 경험과 감정들로 인해 시각이 달라지고 초점이 바뀌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 다르게 본 영화 2016년 나의 대학생 4학년 시절, 당시 나의 최대 관심사는 ‘페미니즘’이었다. 어느덧 졸업반이 된 나는 그제서야 학과 수업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던 터였다. 당시 전북대학교 교수이자 여성학자인 김혜경 교수의 ‘젠더와 역사’, ‘여성과 일’ 등의 여성학 수업을 들었다. 또 우연한 기회로 전주여성의전화에서 주관하는 ‘가정폭력 전문상담원 양성교육’을 수료하게 되었다. 여러 회차의 교육 중 한번은 지역에서 활동 중인 영화감독과 함께 영화의 몇 장면들을 다시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본 영화는 이미 봤던 영화인 ‘건축학개론’이었다. 이 영화는 대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로 각인되어있었는데 이를 젠더 관점(성인지적 관점)으로 다시 보니 이야기의 전개가 달리 보였다. 이전에는 승민 역할을 맡은 이제훈이 그저 짝사랑에 실패한 어수룩한 청년으로 보였지만 이날은 찌질하고 이기적인 남자로 보였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승민이 짝사랑하던 서연의 등을 돌리는 순간은 다름 아닌 본인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속에서 승민은 밤늦게 학과 선배인 재욱이 술에 취한 서연을 집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다음 날 “이제 좀 꺼져줄래”라며 차갑게 돌아선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서연을 방관한 그는 이를 배신으로 정당화시키고 서연을 ‘쌍년’이라고 기억한다.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상대가 ‘쌍년’이 되는 과정은 너무나도 남성(승민) 중심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콜미바이유어네임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영화를 볼 때면 금세 몰입하는 편이다.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최소 세 번 이상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지점이 발견됐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198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둔 청량하고 아름다운 영화 속 분위기와 영상미에 빠져들었고, 두 번째 봤을 때는 열일곱 소년의 뜨거운 여름날과도 같은 첫사랑 이야기와 퀴어 로맨스에 집중했다. 영화를 세 번째 봤을 땐 다름 아닌 주인공 엘리오의 아버지가 보였다. 그는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엘리오를 대한다. 그는 엘리오가 사랑한 ‘여름 손님’ 올리버가 떠나고 상심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와 나누고 싶지 않은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네가 가졌던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어. 보통 부모들이면 없던 일로 하고 아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빌겠지만 난 그런 부모가 아니야.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내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 (중략)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그렇게 영화를 세 번 보고 나서 곧바로 원작인 책을 주문했고 이 대목을 노트에 필사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매력을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요즘엔 다른 이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를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 『혼자서 본 영화』, 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범죄심리학자 박지선이 영화를 리뷰하는 ‘지선씨네마인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B tv 파이아키아’를 시간내어 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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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11 14:01

연결된 세상, 단절된 우리

‘멕시칸치킨 금암점’. 초등학생 시절 단골이었던 동네 치킨집이다. 당시 내가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한 마리주세요! 주소는... 아, 아니다. 주소 먼저 말해야 되나.. 여기 전주시 덕진구...” 그렇게 두세 차례 전화 주문 연습을 끝낸 뒤에야 가까스로 수화기를 들 수 있었다. 떨리는 맘으로 주문을 마치고 나면, 아주 가끔은 가게에서 메뉴나 주소를 다시 불러달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2~30분 후 대문 앞에 도착한 사장님께 현금을 건네면, 사장님은 맛있게 먹으라며 치킨 봉투를 쥐어주셨다. ‘굽네치킨 녹번점’. 현재 한 달에 한 번꼴로 돈을 쓰는 동네 치킨집이다. 내가 혼자 치킨 한 마리를 시켜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핸드폰 잠금 화면을 풀고, 배달앱을 켠 뒤, ‘주문내역’ 창에서 ‘재주문’ 버튼을 누르기. 그렇게 서너 차례 손가락을 놀리고 나면 치킨 주문은 끝이 난다. 주문 정보가 상세히 기록된 앱 덕분에 가게에서 내게 메뉴나 주소를 다시 물을 일은 없다. 3~40분 후 핸드폰에 ‘배달 완료’ 알람이 뜨면, 뛰쳐나가 현관 밖에 덩그러니 놓인 치킨 봉투를 가져온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표상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오늘날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무제한적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든 스마트폰 하나만 손에 쥐면 이메일, SNS, 유튜브, 블로그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주문하고, 옷을 사며, 미용실을 예약하고, 강의를 듣는다. 또 길을 찾고, 의사의 진료를 받으며, 택배를 부치고, 영화를 본다. 즉,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이 ‘스마트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매듭지어 지고 있다. 그저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잽싸고 힘세며 야무지기까지 한 스마트폰은 그렇게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소가 되었다. 하루 종일 입 밖으로 꺼내는 말보다 카카오톡 채팅창에 입력하는 단어 수가 더 많다. 친구들에게 맛집을 수소문하기보다 네이버의 리뷰와 별점을 신뢰한다.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보다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이를 대변할 이모티콘을 골라내는 데 열을 올린다. 지금껏 우리는 스마트폰으로부터 편리성, 안전성, 정확성, 효율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인간성을 잃었다. 서로 간 눈과 눈이 마주치고, 손과 손이 맞닿으며, 말과 말이 교차했던 숱한 순간들이 이제는 ‘데이터화’, ‘디지털화’라는 미명 하에 점차 흐려지고 있다. 맺고 끊음이 쉽고 빨라진 인간관계는 그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우리 일상을 채웠던 미지근한 온기와 색채가 그렇게 한 줌씩 사그라지고 있다. 가끔은 내 삶이 손바닥 위의 자그마한 스마트폰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네모반듯하고, 뭉툭하고, 새까맣고, 차갑고, 딱딱하고, 피로한. 그토록 못나고 재미없는 모양이 과연 내 인생의 생김새인가-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처량해진다. ‘등잔’과 바로 그 밑의 ‘그림자’처럼, 오늘날 온 세상에 만연한 ‘연결’의 뒤편에는 그보다 몸집이 큰 ‘단절’이 도사리고 있다. 2022년 현재는 과연 ‘연결의 시대’인가, ‘단절의 시대’인가?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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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4 17:51

그럴싸한 취미를 만드는 법

대학교 입학 직후 교수님 연구실에서 면담했을 당시“자네는 취미가 뭔가?”라는 질문에 나는 전공과 순발력을 살려 최대한 그럴싸한 취미인 ‘독서’를 만들어냈다. 전공이었기 때문에 책은 오히려 과제처럼 느껴져 더 담을 쌓고 살았는데도 말이다.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이력서에 무난한 한 줄을 위해 만들어져 무려 9년간 이어졌던 거짓 취미는 최근 진짜로 즐거운 일을 찾고 나서야 끝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나와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 취미생활이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하고, 하비슈머(hobby+consumer의 합성어로 취미생활을 위해 소비활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취미 부자 등 취미에 대한 다양한 신조어만큼 내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다양한 취미생활이 등장했다. 등산, 골프, 테니스와 같은 운동부터 수초로 어항을 꾸미고 물고기를 키우는 아쿠아 스케이핑, 작은 어항 속에 나만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비바리움(Vivarium)까지 매일같이 이색적이고 새로운 배움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도 취미를 검색하면 자동 완성으로 가장 먼저 뜨는 단어는 ‘취미생활추천’, ‘취미생활 순위’이다. 이제 막 나의 취향을 고민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단어들은 취미가 어쩐지 성공해야 할 것 같은 또 다른 사회적 과제처럼 느껴져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온다. 분명 취미와 성공은 동일선상에 놓일 수 있는 단어이다. 그러나 성공은 그저 즐거운 취미생활의 부산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에자와 유사쿠는 친구들과 밴드부를 했었고, 미국으로 가서 공연까지 보러 갈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일본으로 돌아와 밴드를 계속하며 미국에서 가져온 앨범을 판매하다 사업가가 되었고, 판매 상품은 앨범에서 의류가 되었다. 그 회사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큰 온라인 의류 쇼핑몰인 조조타운이 되었다. 김성완 작가는 카이스트를 졸업해 삼성전자를 입사했다. 동호회 운영진 활동을 했을 정도로 즐겁게 했었던 레고와 야근의 길에서 레고를 선택해 세계에서 21명밖에 없는 레고 공인작가이자, 하비앤토이 대표가 되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음반 수집 취미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앨범 재킷이 멋있거나 가격이 싸다는 둥 다양한 이유로 사 모았다. 따라서 중구난방이고 결과적으로 모여버린 레코드.’라고 말한다. 슬기롭게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성공한 사례,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 남들과는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진 취미 모델을 밤새 추천받아 검증해보는 것은 결국 9년간 내가 취미는 독서라고 대답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취미라는 단어에는‘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이라는 또 다른 정의가 있다. 취미는 개발해야 하는 새로운 스펙이 아니다. 유행하는, 성공한 취미를 쫓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고 인생에서 마주칠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하여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정말 그럴싸한 취미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수진 (재)전주문화재단 팔복기획운영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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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7 18:41

디지털 다이어트

한 달 전 카카오 중단 사태가 일어났다. 트위터에서 본 500여 개의 하트를 받은 트윗의 내용은 “기왕이면 평일 회사에 있을 때 불나지”라는 뉘앙스로 쓰인 글이었다. 나도 평일이 되면 일자리에 나가는 직장인이라 하트로 슬쩍 공감을 실었다. 내용은 근무 시간에 카카오톡이 중단되면 업무도 마비가 된다는 뜻으로 생활 전반에 디지털이 많이 관여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일상에 결제 연락, 예약 등 디지털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고 카카오 중단 사태는 많은 사람은 불편함을 호소했다. 그때 나는 우리가 디지털에 과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디지털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종일 컴퓨터 앞에 눈을 두고 어딜 가든 손에 핸드폰을 쥐고 다니다 보니 집에 있어도 오는 연락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집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핸드폰과 컴퓨터를 안 만지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손에 놓은 지 5분 만에 핸드폰을 찾았다. 다짐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핸드폰만 있으면 모든 것이 쉬웠다. 이미 맛본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자율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면 강제성을 부여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 애플리케이션도 깔아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제일 무식하고도 돈이 많이 드는 해결법을 택해야 했다. ‘핸드폰 감옥’ 편리하지만 복잡한 디지털과는 정반대의 조치였다. 핸드폰 감옥이 무엇이냐면 감옥이라 칭하는 상자 안에 핸드폰을 넣고 시간을 지정하면 지정 시간이 다소요 될 때까지 상자가 열리지 않아 핸드폰을 하고 싶어도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하는 단순한 조치였다. 그래서 핸드폰 몸통만 멀리 두고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것보단 상자에 넣어버리면 갈등의 여지 없이 핸드폰을 할 수 없다. 그렇게 이주를 보내니 어느 순간 핸드폰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은 일과가 되었고 그 시간 동안 다른 활동으로 시간을 채웠다. 디지털을 대체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은 꽤 만족스러웠다. 책도 읽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효율적이게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핸드폰을 감옥에 보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시간을 높게 잡았다. 그래서 자기 직전에야 핸드폰을 할 수 있었다. 또한 핸드폰이 필요 할 때 쓸 수 없어 곤란한 일도 많았다. 언제 한번은 새벽에 책을 읽다 속이 허해져 간식거리를 사러 편의점에 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타이머를 보니 감옥이 열리려면 두 시간이 지나야 했다. 당시엔 핸드폰 없이 야심한 밤에 혼자 편의점을 다녀오기가 나로서는 쉽지 않았기에 사람 일은 혹시 모른다는 마음으로 핸드폰 감옥을 통째로 들고 편의점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냥 깨부술까 하는 마음도 수백 번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핸드폰을 감옥에 가두기가 쉬워졌다. 어느 날은 핸드폰이 직접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 날도 있었다. 매일 핸드폰을 감옥에 가두다 보니 적절하게 시간도 설정할 수 있게 되었고 할 일이 없으면 당연하게 핸드폰을 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때울 방법을 자연스레 찾게 되었다. 온전하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되찾은 것 같아 어느 정도는 디지털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디지털이 만연한 시대다.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누군가는 휴식이라 할 수 있지만 자기 직전까지 타인과 교류한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휴식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주말내내 집에 있어도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다면 디지털 다이어트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백지은 우석대 미디어영상학과 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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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0 13:56

너는 나다

올해 3월 28일부터 5월 19일까지 53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기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목소리를 낸 노동자가 있었다. 체중이 20㎏ 줄어들고 혈압·혈당도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던 그는 “살아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입장문을 내놓으며 투쟁을 중단했다. 이를 지켜본 일부 시민들은 해당 기업 제품 불매운동과 1인 시위 등으로 연대했지만 한편에선 그 기업에서 만든 ‘포켓몬 빵’의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거대 기업 앞에서 개개인의 연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후 10월 15일 새벽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배합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사고 이틀 뒤인 10월 17일 40대 노동자의 오른손 검지가 절단되었다. 올해 초부터 바로 며칠 전까지 같은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 노동현장에서 배운 연대 나는 연대를 노동운동 현장에서 배웠다. 당시 ‘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세대학교가 먼저 떠올랐던 고등학교 3학년 때(2012년)였다. 그때 우연히 읽은 기사에서 외국인노동자가 기본적인 권리를 너무도 허무하게, 합법적으로 빼앗기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약자의 약점을 악용하는 악덕 기업과 고용주들의 존재를 이때 처음 발견했던 것 같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올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단 더 많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전북 대안언론 ‘참소리’를 발견했고 타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북권 노동운동 사태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약자들의 처절한 절규와 연대, 저항과 투쟁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전북권에서는 ‘전북고속 총파업’이 가장 큰 이슈였고 기사를 읽고 나니 조금이나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전주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설치되었던 천막을 찾았다. 교복을 입고 쭈뼛쭈뼛 천막 안으로 들어가 방명록에 응원글과 이름을 적는 것으로 나의 연대는 시작되었다. 이후로도 몇 차례 찾아가서 버스노동자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은 하루 15~16시간 이상의 장시간의 운전 노동과 월 120~160만 원의 저임금에 오랜 기간 시달려왔었다. 휴식, 식사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위장병을 달고 살고 방광염에 걸린 노동자가 대다수였다. 이들이 사측에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맞게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과 식사시간, 안전운행시간 보장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였다.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오직 연대뿐이었다. 이후 거리 피켓시위, 삼보일배 시위 등을 함께 했는데 다행히 교복을 입은 내가 아저씨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몇 친구들도 시위에 동참했고 버스노동자 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뜻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연대를 배웠다. 연대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 또는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너는 나다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젊은 육신은 함께 불탔다. 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하고도 2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얼마나 바뀌었을까. 쌍용자동차 노동자 복직투쟁(2009~2019),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투쟁(2007~2022)처럼 길고 험난했던 투쟁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외침은 지금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강소은 미디어공동체완두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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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3 13:56

‘그럴 수도 있지’

2018년 봄. 갓 대학에 입학해 정신없이 노닐던 새내기 때였다. 몇 주 동안 제집처럼 드나들던 과방 출입문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짤막한 글귀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문 앞에 떡하니 걸려있는 것이다. 누렇게 변색된 에이포 용지 위에 붓펜으로 어설프게 써 내려간 ‘그럴 수도 있지’. 오른쪽 귀퉁이엔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연분홍 꽃이 두세 송이 그려져 있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눈에 띈 적 없었지만, 모양새를 보아하니 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듯했다. 알고 보니 역사가 일 년도 더 된 그 캘리그래피는 당시 꽤 친했던 한 학년 위 선배의 작품이었다. 선배는 뿌듯함과 민망함이 반씩 섞인 표정으로 “이게 바로 내 삶의 신조이자 우리 과의 급훈”이라 설명했다. 냉정히 말해 글씨도 그림도 하나같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공중화장실 칸막이에서 뜻밖에 명언을 발견했을 때처럼 나는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럴 수도 있지’의 영어 번역문은 ‘I understand’다. 목적어는 없다. 이해의 대상이 남이 될 수도,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과 나의 숱한 허물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포용하는 ‘관용’의 자세가 모진 고행도 경건한 기도도 아닌, 그저 그 간결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됨을 그때 깨달았다. 이에 그 소박한 글귀가 내 맘속 깊이 뿌리 내리도록 몇 번이고 곱씹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2학년이 되었다. 새내기들의 전유물이었던 과방은 더 이상 찾을 일이 없었고, 하루에 한두 번씩 주문처럼 되새겼던 여섯 글자는 자연스레 차츰 흐려져 갔다. 이후 뿌리 얕은 나무가 쉽사리 흔들리듯 살랑이는 바람에도 난 한없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차가 막혀 약속 시간에 늦을 때면 한껏 짜증이 났다. 주문한 음식의 조리 시간이 길어질 때면 곧잘 불쾌감을 느꼈다. 길거리에서 흡연자를 마주칠 때면 마구 화가 솟구쳤다. 그렇게 별거 아닌 일에도 나는 쉽게 분노했다. 다이어트 도중에 떡볶이를 시킬 때면 나 자신을 혐오했다. 시험에서 아는 문제를 틀릴 때면 몇 날 며칠을 후회했다. 아침잠을 못 이겨 오전 수업에 지각할 때면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렇게 사소한 실수에도 나는 크게 자책했다. 가게 점원의 말투가 불친절할 때면 속이 상했다. 대학 동기가 짓궂은 농담을 건넬 때면 혹여 진심일까 마음졸였다. 부모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면 날 향한 애정의 진위를 의심했다. 그렇게 하찮은 비난에도 나는 깊게 상처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얘기를 나누던 친구의 입에서 한참 동안 잊고 살았던 내 빛바랜 주문이 무심코 흘러나왔다.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이내 나도 모르는 새 줄곧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자각했다. 내겐 남을 이해할 의지도, 나를 위로할 여유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금세 달아오르고 금세 식어버리는 가벼운 양은 냄비처럼, 텅 빈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싹 메마른 삭막한 마음은 고작 그 여섯 글자에 다시금 슬며시 촉촉해졌다. 그날 이후 사소한 일로 습관처럼 분노가 치솟거나 마음을 다칠 때면, 가만히 눈을 감고 4년 전 봄날을 떠올린다. 여닫을 때마다 희미한 쇳소리를 내던 육중한 진회색 철문을 떠올린다. 스카치테이프 한 장에 매달려 힘없이 달싹이던 누런 에이포 용지를 떠올린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서른 번쯤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앳된 나를 떠올린다. 그렇게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조금씩 하자 있는 서로를 너그러이 감싸 안으며 살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민주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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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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