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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바모스, 아미고!…한국은 졌지만, 우정은 이겼다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1만㎞ 떨어진 전주서 하나된 한국·멕시코 응원단
골 터지자 “미안해요”·“축하해요! 멕시코 파이팅" 양국 응원단이 만든 90분의 우정

19일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한국-멕시코전이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가운데 경기 시작 전, 전북대 한 치킨집에서 만난 양국의 응원단이 국기를 보이며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문준혁 기자

“바모스, 아미고! (가자, 친구!)”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한국-멕시코전이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19일, 1만 1780㎞ 떨어진 전주 대학가의 한 치킨집에서도 아침부터 함성이 터졌다.

멕시코에서 온 유학생 아스가르드(29) 씨와 에콰도르 출신 데이비드(21) 씨는 대한민국 응원단으로 가득 찬 치킨집 한가운데에서 멕시코를 향해 힘껏 목청을 높였다. 아침부터 몰려온 대학생들로 가게가 북적였지만,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한국 청년들과 멕시코 청년이 함께 앉은 테이블이었다.

“반갑습니다, 아미고!”

서로 처음 마주한 차현준(25) 씨와 유영태(25) 씨는 아스가르드 씨와 눈을 맞추고 악수를 나눴다. 킥오프 30분 전, 치킨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들은 각자 준비한 유니폼과 국기를 꺼내놓고 웃음 섞인 긴장 속에서 응원단 간 ‘탐색전’을 시작했다.

“오늘 멕시코가 2대 1 정도로 한국을 이길 것 같은데요.” 멕시코 측의 자신감 있는 예측에 한국 응원단 최윤서(25) 씨는 “우리가 멕시코를 3대 1로 이길 겁니다”라며 곧바로 받아쳤다.

 

경기 시작 전, 애국가를 부르는 한국 응원단.  / 문준혁 기자

킥오프 5분 전인 오전 9시 55분께 경기장 화면에서 각 대표팀의 국가가 흘러나오자 매장 공기가 달라졌다. 현준 씨와 영태 씨, 윤서 씨는 가슴에 손을 얹고 화면을 바라보며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그들의 눈빛은 현장에서 승리를 다짐하는 국가대표 못지않았다.

 

멕시코 응원단 아스가르드 씨는 멕시코 국가인 ‘Himno Nacional Mexicano’가 흘러나오자 솜브레로를 쓴 채 당당히 국가를 따라 불렀다. / 문준혁 기자

이어 멕시코 국가 ‘Himno Nacional Mexicano’가 흘러나오자 분위기는 한 번 더 바뀌었다. 멕시코 응원단은 거대한 솜브레로를 눌러쓴 채 초록·흰·빨강이 섞인 멕시코 국기를 들고 “멕시까노스, 알 그리또 데 게라~ 엘 아쎄로 아쁘레스따드 이 엘 브리돈~”을 우렁차게 따라 불렀다. 처음 듣는 멕시코 국가와 낯선 에스파냐어 가락, 화려한 전통 복장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생소한 광경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으로 남기는 이들도 있었다.

국가가 끝나자 가게 안에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멕시코 응원단에게 응원과 박수가 터졌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매장은 또 다른 스타디움이 됐다. 전반전 한국이 멕시코를 압박할 때마다 한국 응원단은 “오~ 오! 가야지!”를 외치며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거대한 스크린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멕시코가 압박을 당할 때마다 멕시코 측에서는 긴장감이 묻어나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전반 16분, 손흥민의 슈팅이 골문을 향해 날아가자 멕시코 수비수 에드손 알바레스가 골라인 직전 힘겹게 공을 걷어냈다. 공이 골대 가까이 향하자 멕시코 응원단은 동시에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하, 너무 긴장해서 지금 땀나요.” 멕시코 측은 줄곧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한국의 적극적인 공격에도 멕시코는 철옹성 같은 수비를 보이며 전반전은 0대 0으로 마무리됐다.

 

멕시코에 압박을 가하던 한국이 후반 5분, 멕시코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응원단의 희비도 교차했다. / 문준혁 기자

응원단의 희비는 후반 5분을 기점으로 교차됐다. 멕시코의 루이스 로모가 오른발 슈팅으로 한국의 골대 빈틈을 가르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한국 응원단은 연이어 “으악~” 같은 탄식을 내뱉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대한민국 응원단으로 가득 찼던 치킨집은 순간 냉랭해졌다.

잠깐의 침묵을 깬 것은 아스가르드 씨의 유쾌한 한마디였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한국어 사과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한국 응원단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축하의 의미로 박수를 보냈다.

선제골을 허용한 한국은 전방위적 공격으로 후반 추가시간까지 골문을 두드렸지만, 반전 드라마는 나오지 않았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곳곳에서 아쉬움의 탄식이 나왔지만, 멕시코 응원단을 향한 축하 인사도 이어졌다.

“축하해요! 멕시코 파이팅!” 매장을 나서는 이들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날 처음 만난 양국 응원단은 경기 종료 무렵엔 이미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돼 있었다.

“우리가 져서 아쉽지만 다음에는 안 봐줘요.”

윤서 씨의 농담에 데이비드 씨와 아스가르드 씨도 웃으며 “한국 파이팅!”을 외쳤다. 가게를 나서며 다섯 명은 서로의 국기를 맞바꿔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꼭 같이 봐요!”

“한국에서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날은 승자와 패자가 갈린 월드컵 경기였지만, 매장을 나설 때만큼은 한국과 멕시코 청년 모두 소중한 경험에 미소를 지으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경기가 종료된 후 양국의 응원단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다. / 문준혁 기자

문준혁 인턴기자

문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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