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규(부안여성농업인센터장)
부안여성농업인센터 알곡어린이집과 도농교류를 하고 있는 과천의 열리는 어린이집에는 200평쯤 되는 텃밭이 있다. 텃밭에는 상추, 오이, 토마토, 가지, 감자, 열무, 고추, 들깨, 파, 땅콩 등을 키우는데, 학부모들과 교사들, 아이들이 모두 이를 정성스럽게 키운다. 그리고 텃밭 한쪽에는 10평쯤 되는 논을 만들어 놓았다. 땅을 깊이 20cm쯤 파서 수돗물로 물을 채우고 봄에 손모내기를 한다.
물론 모는 6월초에 부안 캠프에 왔다 얻어간 모판 반 상자의 모가 전부였다.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 기차를 타고 과천까지 가져간 모는 열리는 어린이집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심어졌고, 어린이집 모든 사람들의 애정과 보살핌 속에 자랐다. 논에는 소금쟁이, 우렁이가 자라고 개구리밥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는 작은 습지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부안 아이들이 9월에 과천으로 캠프를 갔을 때 벼들은 잘 자라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지난주에 열리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어린이집 논에서 자란 벼를 수확했는데 워낙 적은 양이고 과천에서 여기저기 알아봐도 방아를 찧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 있는 가정용 정미기로 찧겠다고 했더니 바로 택배로 보내온 것이다. 콤바인이 아니라 온갖 수작업으로 훑어진 나락은 검불 투성이였다. 그것을 찧어서 8kg의 쌀이 나왔고 다시 택배로 열리는 어린이집으로 보냈다. 열리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자기들이 심고 키우고 거둔 나락에서 나온 쌀로 무엇을 할까 하고 기대할 것 같다.
공동육아나 생태교육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왕복 8000원의 택배비로 차라리 쌀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나락을 심고 가꾸면서 아이들이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면서 말이다. 매일 먹는 밥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땀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명을 가꾸고 키우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과연 알까.
이렇게 소중한 쌀이 요즘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10년 전 80kg 한가마에 17만원 하던 쌀값이 올해 13만원에 불과하다. 물가는 그동안 30%나 상승했고, 작년에 비해 농자재비는 20%나 상승했는데도 말이다.
지난 2007년과 2008년 2년간 전세계 37개국에서 식량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고, 주요수출국들이 식량수출을 통제하고, 투기자본이 몰려들어 곡물값이 폭등했다.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세계적으로 식량수급이 매우 불안하다는 사실과 큰 곡물회사가 국제곡물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또한 농업이 갖고 있는 환경보전, 전통문화 보존, 지역공동체 유지, 경관 및 휴식처 제공 등의 다원적 기능은 농업의 외연규모가 적정하게 유지되어야만 가능하다.
쌀은 단순히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25%에 불과한 식량자급률은 적어도 50%까지 상승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해 쌀문제를 제대로 잘 해결해야 한다.
/임덕규(부안여성농업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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