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0일까지 온라인 전시… 퍼포먼스 영상, 설치 작품
지역 리서치 기반 작업… 공동체 연대에 대한 고민 담아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구석구석 의미가 배어 있는 특별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풍경을 잃을 처지에 놓여있고 심지어 그들의 생존은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전시는 인간 존재의 의미, 실존적 장소 그리고 공동체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환경오염으로 집단 암이 발병한 익산 장점마을의 아픔을 예술로 치유하려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느 때보다 환경과 인권에 대한 가치가 높아진 요즘, 공동체 연대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정윤선 시각예술가의 개인전 ‘무주의 맹시_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환경 재난으로 죽음과 맞닿은 채 살아가는 익산 장점마을과 인천 사월마을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는 눈은 특정 위치를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향하는 위치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는 형상이나 상태를 뜻하는 일종의 실험 심리학적 용어다. 전시명이 보여주듯 전시는 주의(관심)에서 멀어져 버린 ‘무주의’ 속에서 고통받아 온 두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 작가는 지난 2019년 11월 우연히 뉴스를 통해 접한 두 지역의 참상에 큰 충격을 받고, 전시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익산 장점마을은 지난 2001년 마을에 들어선 비료공장의 불법행위로 온 마을이 1급 발암물질로 오염돼 집단 암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 17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22명이 암 투병 중입니다(2020년 11월 기준). 평화롭던 작은 마을은 이제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곳이 됐습니다. 주민들의 빼앗긴 목숨과 일상은 여전히 남의 동네 이야기인 채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역 리서치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 입체, 설치,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총망라한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익산 장점마을 비료공장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영상 ’무명’이다. 텅 빈 공장, 부식된 콘크리트 기둥 사이를 누비는 배우의 강렬한 몸짓은 이름 없이 떠도는 영혼이 생사의 번뇌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그간 마을 주민들이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행위이자 졸지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과 남겨진 그들 가족에게 보내는 애도와 해원”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장점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생과 사’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사진과 그들의 추억이 담긴 오브제를 재촬영해 영정 사진 크기의 렌티큘러 이미지로 작업했다.
“주민들은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본인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집단 암 발생 피해에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도 서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상황, 주민 모두 생과 사의 모호한 경계에 속박된 채 중첩돼 서 있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정윤선 작가는 부산 출신으로 영국 골드스미스대학 순수예술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외 다수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전시는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전시 홈페이지(http://www.jungyunsun.com/)에서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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