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서울 평창동에서 가수 겸 작곡가 노영심씨를 만났다. 그간에 이야기 되어 온 '가끔 열리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에서였다. 서로 바쁜 사람들이라 만나는 일도 정말 가끔 이루어 질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커녕 1년에 한번 만나는 것도 힘들었다. 말 그대로 가끔 열리는 학교를 만들자고 가끔 만나자는 연락만 하다 말게 생겼다, 노영심씨가 전수천 씨가 이 근방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나는 그러면 그 선생님이나 만나자고 했다. 평창동 선생의 집으로 갔다. 작업을 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차를 마시는 던 중에 노영심 씨가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 용운분교 이야기를 했다. 이따금 자기도 그 곳에 온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번 그 곳에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지난주 일요일 전수천 선생께서 전화가 왔다. 용운분교에 가니,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아내와 같이 갔다. 내가 이따금 마음을 식히려고 찾아 가는 곳이 용운본교가 있는 마을 앞 호수가다. 붕어 섬을 끼고 조금 깊숙이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마을 용운리가 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배를 타고 학교를 다녔던 곳이다. 호수가로 난 좁은 솔숲을 따라 가다 보면 완만한 능선에 자리 잡은 밭들이며, 소나무들이며, 작은 마을 뒷산에 평화로운 무덤들이며, 호수 건너 사람의 때 타치 않은 것 같은 산 능선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곳이다. 나는 호수가 작은 무덤가에 앉아 잔잔한 호수와 호수 건너 산과 허리 굽혀 일하는 농부들을 바라보며 몇 편의 시를 썼다. 새로운 섬진강 연작이 시작된 곳이다. 어느 겨울 눈 오는 날 그 곳에 앉아 호수로 내리던 눈은 호수 끝까지 내릴 것 같았던 것이다. 눈송이들이 마치 이 세상 사람들이 닿지 못할 곳을 향해 가는 순결한 어떤 영혼들 같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왔다. 옛날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을 걸으며 전수천 선생이 이곳의 적막과 고요가 좋아 용운분교를 샀다고 했다. 정말 좋은 터다. 시골폐교 된 학교 터들은 다 명당자리다. 선생은 작업하기는 자기에게 안성 맞춤한 곳인데, 사 놓고 보니 서울에서 너무 멀어 걱정이라고 했다. 어둠이 내리는 용운리는 더욱 적막했다. 밥 떼가 되어 우리는 모악산 아래 된장찌개 집에서 오랫동안 그림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선생은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다. 지금은 한국 종합 학교 교수로 있으며,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아 국제적인으로 명성을 날렸고, 2005년에는 기차에 흰 천을 씌우고 '움직이는 선 드로잉열차' 로 미 대륙을 종단하는 국제적인 퍼포먼스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는 또 가끔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 김용택(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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