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외부기고

[안성덕 시인의 '풍경']선운사 상사화

image
안성덕 作

 

선운사 골짜기로 상사화 만나러 갔습니다. 사람들 몇 출입을 막은 줄을 넘어가 가는 꽃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찰칵찰칵, 아직 마음 붉다며 화양연화를 증명하려는 듯했습니다. 다짐하듯 관리사무소에 확인까지 했건만, 아뿔싸 작년처럼 꽃은 거반 돌아가고 꽃대마저 뭇발길에 부러진 게 태반이었습니다. 꽃과 잎만 영원히 못 만나는 줄 알았건만 나와 상사화도 영 연이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선운사 골짜기로 미당(未堂)이 동백꽃을 보러 갔다지요. 채 피지 않은 꽃만 보았다지요. 한때 마음을 주었을까요?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생각다 말았다지요. 급한 마음에 그만 꽃을 못 본 거지요. 미당은 조급했고 나는 늦었습니다. 세상 누구라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박(正拍)을 꿈꾸지만, 꼬이고 어긋나는 엇박자인 게 인생인 듯싶습니다. 동백이 미당을 만나주지 않은 것은, 상사화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은 것은 더 간절하고 더욱 안타까워야 꽃이 피고 절정이라는 은유인 듯만 합니다. 발밑 돌멩이 주워 누군가 쌓은 돌탑 위에 한 층 올렸습니다. 미당의 시구 속 막걸릿집 아낙의 육자배기 가락이나 웅얼거리며 돌아오는 길이 멀고 멀었습니다. 못 만난 이름인 듯 멀리서 별만 깜박거렸습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만평[전북만평-정윤성] 검찰의 정의란…

정치일반김경수 위원장 “K-관광 위해 지역공항 필수”…공공기관 이전, 2027년 구체적 추진 목표

사회일반강태완 씨 산재 사망 1주기⋯"중대재해 신속 수사하라"

법원·검찰검찰 ‘봐주기 감찰 의혹’ 전 진안소방서장 불구속 기소

전시·공연진정한 독립을 묻다, 김한비·유정 2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