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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최기우 극작가-양귀자 ‘한계령’

책‘원미동 사람들’ 표지/사진=독자

전주는 문학의 도시다. 수많은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고, 그 문장들은 지금도 골목과 풍경 속에 여운을 남기고 있다. 양귀자의 단편소설 「한계령」도 그렇게 전주를 품은 작품이다.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문학과지성사·1987)에 실린 이 소설은 고향 전주의 철길 동네를 배경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을 조용하고도 깊게 그려낸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에 사는 작가인 화자는 이십오 년 만에 유년 시절 친구 박은자의 전화를 받는다. 찐빵집 딸이었던 은자는 이제 경인 지역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가수 ‘미나 박’이 되어 있었다. 전화 한 통은 두 여자의 삶을 가로지른 세월을 불러내고, 화자는 기억을 더듬어 자연스레 기린봉이 보이던 철길 동네, 레일 위로 반짝이던 햇살, 하천 너머 저탄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난했지만 그 시절의 공기는 선명하고, 소설 속 전주는 낭만과 삶의 냄새가 뒤섞인 공간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한 재회담에 머물지 않는다. 화자는 은자의 간곡한 청에도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기억 속 은자를 현실에서 마주치는 순간, 소중하게 간직해 온 유년의 풍경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은자는 화자에게 친구를 넘어 사라진 고향으로 향하는 마지막 표지판이었다.

소설의 제목이자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노래 <한계령>은 이 작품의 주제를 압축한다. 화자는 마침내 클럽을 찾아 그 노래를 듣는다.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그 선율 위로 큰오빠의 지친 뒷모습이, 아스팔트 아래 묻힌 흙냄새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겹쳐 든다.

양귀자는 격동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수많은 한국인이 경험한 고향 상실을 절제된 언어로 포착한다. 고향은 지도 위에 그대로 존재하지만, 마음속 고향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이 소설이 건네는 뼈아픈 깨달음이다. 이 아픔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재개발로 지워지는 동네,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골목 상권, 빠르게 변하는 도시 풍경 앞에서 많은 사람이 여전히 ‘내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기 때문이다. 화자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누구라 해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고향은 지나간 시간 속에 있을 뿐이니까.”(338쪽)

그러나 고향은 소멸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들은, 큰오빠까지도 다 변하였지만, 상상 속의 은자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338쪽) 그 사실 하나가 화자를 버티게 한다. 기린봉은 오늘도 전주 하늘 아래 그 자리에 있고, 레일 위로 미끄러지던 햇살은 이 소설 속에서 영원히 반짝인다.

기억 속 사람이 곧 고향이다. 그를 잊지 않는 한, 고향도 우리 안에 머문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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