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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축제’ 지향한 전주세계소리축제 2년 만에 가을로 유턴?

전주세계소리축제 신임 집행부가 축제 개최 시기를 가을로 되돌리고, 올해 개막공연을 생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년 전 차별성 확보를 위해 ‘여름축제’로 변경한 것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철 조직위원장은 축제 정상화의 일환으로 이같은 계획을 언급했다. 이는 지난 2024년 글로벌 브랜드 강화와 여름 휴가철 관광객 흡수를 목표로 개최 시기를 8월로 옮긴 지 불과 2년 만에 나온 정책적 변화이다. 소리축제가 이같이 개최 시기 변경을 논의하게 된 배경은 여름철 극심한 폭염 등 기후 리스크로 관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의 여름 개최가 당초 내세웠던 비수기 전략의 이점을 증명하지 못한 채 브랜드의 정체성만 약화시켰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도내 문화계 인사는 “여름 개최는 다른 축제와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기후 리스크를 상쇄할 만큼의 관객 동원이나 새로운 변화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며 “가을에 행사가 많다는 이유로 개최시기를 옮겼지만 바꿔서 생각하면 그때가 적기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최시기 변경은 축제 본연의 경쟁력을 회복하려는 정상화 절차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최시기 복귀의 타당성과는 별개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철학 부재와 행정 공백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축제 개막 공연을 생략하거나 간소화하겠다는 방안은 축제가 지켜온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이에 소리축제 측은 조직위가 그동안 개막공연을 준비하며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고, 시기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개막공연 대신 세레머니 형식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조성원 프로그램팀 팀장은 “축제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공연제작에 대한 의무를 가져가는 게 맞는지 내부적으로 10년 넘게 고민해왔다”며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기 변경 역시 단순한 날씨 탓이 아니라 ‘축제성 회복’을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반면 현장의 시각은 다르다. 축제와 협업해온 한 예술인은 “올해 개막공연을 위해 유관기관과 실무협의가 상당 부분 진행 중이었으나 집행부 교체와 함께 무산됐다”며 “개막공연은 축제의 정체성과 그 해의 지향점을 드러내는 메시지인데 행정공백이나 제작 준비시간 부족을 이유로 포기하는 것은 축제의 상징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파행의 근본 원인은 전북도의 인선 지연이 꼽힌다. 집행부가 3월 중순에야 확정되면서 국제적 수준의 메인 프로그램을 기획할 물리적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는 독립적인 전담조직을 갖춘 소리축제가 지자체의 인선 시계에 따라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축제가 내놓은 구상이 지속 가능한 축제 모델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이 될지는 향후 구체화될 최종 실행 계획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소리축제 측은 올해 8월 축제 운영을 지켜본 뒤 개최 시기 변경 및 프로그램 개편안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도내 문화·공연계 관계자는 “올해 25주년을 맞은 소리축제가 지역예술인의 참여 요구와 글로벌 콘텐츠 생산이라는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명확한 공통분모를 찾아가야 한다”며 “지자체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운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26 17:53

전시 기간 아니었나요?…문 닫힌 한벽 전시실, 공공 운영 신뢰도 ‘흔들’

“분명 전시가 열린다고 했는데, 전시장 포스터도 없고 문도 닫혀 있네요. 오늘 전시 기간이 맞긴 한가요?” 전주 한옥마을 내 대표 전시공간인 전주한벽문화관 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이 전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서 관람객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전시가 제때 열리지 않으면서 공공 전시공간 운영 신뢰도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된 전시는 전주문화재단의 ‘2026 전시공간 지원사업’에 선정된 진현진 작가의 개인전 ‘발원: 바라고 또 바라다’로, 지난 11일부터 이달 3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안내된 관람시간은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한 주 5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다. 그러나 26일 오전 10시 30분 기준 전시실은 정상 운영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전시장 외부에는 해당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돼 있지 않았고, 관람 시작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전시실 출입문은 닫혀 있었으며 내부 조명도 꺼진 상태였다. 최근 포근해진 날씨로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전시 운영이 불규칙하게 이뤄질 경우 관람객 불편은 물론 문화공간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전주문화재단이 지역 예술 지원 확대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공모 선정 전시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지원사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전시 운영 구조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한벽문화관에서 진행되는 다수 사업이 외부 단체 대관 형태로 운영되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자체 추진 사업이지만 별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비예산 사업’으로 분류돼 관리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 시각예술계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역 작가는 “공모에 선정돼 전시 기회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시장 관리나 홍보가 뒷받침되지 않는 지원은 작가에게 허탈감을 줄 수 있다”며 “단순 공간 제공을 넘어 전시 기간 동안 기본적인 운영 인력과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벽문화관 운영팀 관계자는 “전시 담당 팀장과 실무자의 갑작스러운 병가와 연가로 인해 인수인계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해 운영에 차질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별도 예산이 없는 사업으로 대관료를 받지 않는 구조이며, 홍보 역시 입구 현수막 중심으로 진행돼 외부에서 확인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전시장 운영에 더욱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벽문화관 전시실은 회화·조각·공예·사진 등 다양한 시각예술을 선보이며 지역 예술 생태계 활성화와 시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운영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계기로 공공 전시공간의 운영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3.26 16:5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전은희‘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익산’

시골 작은 읍에서 자란 내가 처음 만난 도시는 익산이다. 한 사람만 거치면 뼛속까지 다 아는 작은 마을에서, 낯선 도시로 떠나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고등학생 시절 익산은 기대했던 만큼 다채롭지 않았다. 새벽 기차를 타고 역에 내리면 파고들던 한기와 빽빽하게 짜인 일상에 도시의 풍경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이리역 폭발사고로 다니던 학교도 피해를 보았다던 익산은 거대한 폭발이 남긴 침묵의 도시처럼 보였다. 활기차다기보다는 정체되어있었고 깊이보다 건조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익산』은 내 기억과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전은희 작가는 익산을 아파트 숲 사이에 수천 년 전 청동기 시대의 집터가 있고, 쓰던 항아리로 무덤을 만든 마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익산이 인간의 삶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부드러움’과 ‘풍부함’이라는 키워드로 익산을 그리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부흥을 간절히 원했던 무왕의 꿈을 품고 있고, 서동과 선화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낭만과 맞닿아있다. 발굴을 통해 그 웅장함을 드러낸 왕궁리 궁궐터는 비어있어 오히려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인간의 삶이 그러듯 도시 역시 아픔과 좌절의 시련을 겪는다. 만경강 변 배가 드나드는 나루였던 춘포는 일본인 지주의 농장이 자리를 잡으면서 대장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둑을 막아 물길을 돌렸지만, 그곳에서 생산한 쌀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 갔다. 이러한 일제의 수탈과 강압에 누구는 의병으로 또 누구는 독립운동과 만세운동으로 맞섰다. 그들의 숭고한 피와 목숨이 익산을 지켜낸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무심코 걷던 그 차가운 아스팔트 아래 백제의 섬세한 예술혼이 잠들어 있었고, 철길을 따라 흐르던 근현대의 아픔이 역동적인 성장의 동력이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내 기억 속에도 회색빛을 뚫고 나오던 찬란했던 순간이 있었다. 매년 봄이면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하얀 목련, 하숙집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친구들과 나누던 따뜻한 밥 한 끼, 그리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앞두고 학교 앞 문방구에서 쥐포 하나를 구워 들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었던 시간들. 그 소소하고 명랑한 순간들 덕분에 나는 외롭고 힘들었던 내 고등학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익산을 생각할 때 기차역의 차가운 공기보다 그 공기를 가르며 피어났던 하얀 목련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먼저 떠올린다. 도시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결국 그 땅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임을 이 책이 가르쳐 준 덕분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등이 있다. <책 깎는 소년>은 6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3.26 09:24

천둥의 밤을 건너온 존엄의 기록, 시(詩)가 되어 당도하다

70년 전, 제주의 밤은 천둥소리조차 비명이 되던 시간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칼날 앞에 누군가는 이름을 잃었고, 누군가는 존재 자체를 지워야만 했다. 제주4·3의 심연을 20년 넘게 기록해온 허영선 전 제주4‧3연구소장이 나란히 펴낸 두 권의 시집은 어둠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헌사이다. 첫 번째 시집 <우린 천둥의 밤을 지나온 자들이어서: 4·3레퀴엠>(마음의숲)이 비극의 불바다를 건너온 여인들과 아이들의 생존을 풀어낸다면 <법 아닌 법 앞에서: 4·3법정일기>(마음의숲)는 70년 만에 열린 재심 법정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피어난 존엄의 기록이다.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4·3이 지나간 역사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현재형의 고통으로 소환한다. 저자의 문장은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대신 70년이라는 침묵의 시간을 뚫고 나온 증언들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려는 단단함과 정직함을 담고 있다. 국가의 비수 앞에 학생복조차 입어보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난 아이들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저자는 “철을 잃어버린 아이들/노래를 잃어버린 새처럼/사랑을 잃었어”('철을 잃은 아이들' 중)라며 나직하게 읊조린다. 이 기록들은 연민을 넘어선 유대감의 증표이다. 저자에게 글을 쓰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슬픔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폭력 앞에서도 스스로 생을 밀어 올린 이들의 주체적인 역사를 입증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집 <법 아닌 법 앞에서: 4·3법정일기>는 재심 법정의 건조한 기록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해냈다. 저자는 2021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울려 퍼진 ‘피고인 무죄’라는 글자를 붙잡아 억울하게 씌워진 낙인을 걷어내고 그들의 명예를 되찾아줬다. 이처럼 저자의 시선은 훼손된 존엄을 회복하는 일에 맞닿아 있다. 제주 4·3을 과거의 눈물로 소비하려는 관성적 태도를 거부하고 진실을 불러낸다. 시로 풀어낸 허영선의 기록은 제주라는 지리적 경계를 넘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응답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가 일궈온 긴 세월이 시집을 통해 마침내 ‘무죄’라는 단단한 마침표를 찍는다. 시인의 눈으로 직시하고 역사가의 마음으로 기록한 문장들은 70년 전 비극이 오늘날의 존엄으로 승화되는 치열한 현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시종 재일 시인은 “이 시집은 4·3사건에 대한 끝나지 않는 기억, 이것을 계승하는 자를 겸허히 만들고 있다”라며 “거기서 사유의 깊이를 바다 울음의 여운처럼 진동시키는 음운의 힘. 어찌 경약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밝혔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허영선 시인은 제민일보 편집부국장과 제주4‧3평화재단 이사, 제주4‧3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해녀들>,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역사서 <제주4.3을 묻는 너에게> 등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6.03.25 17:44

전북문화관광재단만 납득한 ‘심사위원 경력’…심사받는 예술가는 신뢰 안해

전북문화관광재단의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이 전문성을 잃은 복불복 심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정청탁을 막고 공정성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심사위원 추첨방식이 오히려 해당 분야를 모르는 비전문가를 심사석에 앉히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재단은 “표기 방식의 오해일 뿐 실질적인 경력은 충분하다”고 해명했지만 심사위원 선정 단계에서부터 누가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전문성을 증명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4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사업 심사위원 구성은 미술장르에 컴퓨터공학 전공자와 영상전문가가 배치되고 연극 심사에는 마케팅 관련 협회 인사가 투입되는 등 장르별 전문성 부재 현상이 다수 확인됐다. 이는 해당 분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손에 지원금의 당락이 맡겨졌음을 의미한다. 실제 재단 심사평에서도 “계획이 추상적”이라거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대부분의 장르에서 반복됐다. 이같은 현상은 심사위원들이 기획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심사위원 인력풀의 기형적 편중 역시 공적 심의의 투명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내 6개 문화재단에 다양한 인적 자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자체 재단인 전주문화재단 인력이 전체 10개 장르 중 음악, 연극, 전통, 다원 등 4개 장르 심사위원으로 포함됐다. 도 단위 사업을 시·군 재단 실무자들이 심사하는 구조는 서로의 사업을 밀어주고 끌어주는 ‘상부상조 심사’라는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재단은 현행 시스템이 ‘절차적 공정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홍승광 재단 문화예술본부장은 “심사위원 선정은 인력풀 내 3배수를 무작위 추첨한 뒤 제척사유를 확인해 섭외하는 방식”이라며 “특정 기관 인력의 포진은 추첨 과정에서 발생한 우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내 전문가들이 이해관계나 민원 발생을 우려해 심사를 기피하는 현실적 한계가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전문성 논란에 대해서도 재단은 ‘행정 표기의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공식 직함은 현재 소속을 따르다 보니 발생한 기재상 문제일 뿐, 실제 심사위원들이 과거 배우 활동이나 평론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시스템 탓으로 돌리려는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 만한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배치하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라며 “심사를 받는 예술가(지원자)들의 수용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단은 현장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향후 명단 공개 시 현재 직함 외에도 주요 예술 경력을 함께 기재하고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소액다건’식 지원에서 벗어나 트랙별 특성화 지원으로 체계를 전환할 계획이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24 17:46

지역에 보이지 않던 전자음악 씬을 부른다⋯‘BOLD : GOOD’

지역에서는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던 전자음악 씬(Scene)을 불러내는 ‘굿판’이 열린다. 로컬 문화기획팀 ‘어반스트라이커즈 전주’가 다음 달 4일 오후 8시, 전자음악 공간 해상도와 해결 리스닝룸에서 다원예술 프로젝트 ‘제5회 BOLD: GOOD’을 개최한다. ‘제5회 BOLD: GOOD’은 전자음악과 시각예술, 문학이 결합된 프로젝트로, 그간 지역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던 전자음악 씬의 존재를 보다 직접적으로 가시화하고자 기획됐다. 전자음악과 디제잉이 예술적 감상보다는 유흥의 맥락으로만 소비돼 온 지역의 고정된 인식 속에서, 전자음악 씬이 마치 ‘없는 것’처럼 취급돼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단체는 이처럼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지역 씬의 부재를 한국적 정서와 종교적 전통인 ‘굿(巫堂)’의 언어로 돌파하고자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씬을 갈망하고 목격하고자 하는 바람을 모아 신을 불러내듯 지역 안팎을 연결하고 사람과 씬을 호출한다. 동양의 종교적 실천이자 한국의 무속 전통 속에서 굿은 소리와 몸, 제물과 염원, 분명한 목적을 통해 이 세계에 없는 것을 끌어들이는 능동적 행위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적 태도를 차용해 회피나 이주가 아닌,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을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핵심 정신으로 삼는다. 프로그램은 전자음악, 시각예술, 문학으로 구성된다. 음악 파트에서는 MINDWICH, XS, IF, CASHTRAY, SINGLE LEG, MOONICE, THANG, 3D3N, HANFLO 등 9명의 DJ가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세트를 선보이며 굿판의 소리적 층위를 형성한다. 시각예술 파트에는 매드김(김성빈), 작호(최혁), 한준 등 3명의 청년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기원’이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미술 작업과 제단의 형식을 통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씬으로 전환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문학 파트에는 Q, WEOL DAM(월담)이 참여해 시와 글을 통해 공간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감각과 존재들에 언어를 부여하는 ‘언어적 기도’를 펼친다. 공간적 배경 역시 주목할 만하다. 단체는 그동안 ‘임대’ 현수막이 걸린 공실을 활용해 사람들이 머물지 않던 장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게릴라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2월 개소한 ‘공간 해상도’를 거점으로 지역 전자음악 씬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도모한다. 제도와 관성적 시선 속에서 지워져 온 부유하는 씬들이 보다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고 확장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지역에서 쉽게 마주하기 어려웠던 전자음악 씬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다원예술 프로젝트 ‘GOOD’은 미성년자 입장이 제한되며, 현장에서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자세한 사항은 공식 인스타그램(@bold.letusb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3.24 17:11

“똑바로 서라”는 세상에 던지는 기분좋은 반항…기획전 ‘삐딱善’

우리는 왜 직선만이 정답이라고 믿어왔을까. 모든 것이 수직과 수평으로 정렬되는 세상에서,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인 직선을 거부하고 나만의 각도를 찾으려는 다섯 명의 예술가들이 있다. 남들과 똑같은 시선을 강요받는 현대인들에게 “삐딱함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개성”이라고 외치는 기획전이 24일부터 29일까지 교동미술관 본관에서 열린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함께 수학하며 각자의 조형언어를 다져온 김정해, 김효선, 최진희, 한정원, 해랑 박선영은 기획전 ‘삐딱善’을 통해 삐딱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뒤집는다. 이들에게 삐딱함이란 중심에서 밀려난 결핍이나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응시하는 ‘가장 나다운 각도’를 의미한다. 작가들은 안과 밖, 자연과 인공, 이상과 현실 등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시선을 억지로 교정하거나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화폭에 담았다. 전시명의 핵심인 ‘선(善)’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가들이 말하는 선은 단순히 도덕적인 착함이나 이분법적인 판단에 머물지 않는다. 익숙한 질서를 의도적으로 비껴가며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작가들만의 감각적인 방식인 것이다. “조금 다르면 어때?”라고 묻는 듯한 이들의 삐딱한 시선은 우리에게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정하면서도 강렬하게 일깨워준다. 결국 ‘삐딱善’은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방향이 빚어내는 긴장과 균형을 확인하는 자리다. 관람객은 작품을 통해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삐딱한 선’을 마주하게 된다. 규격화된 일상에서 벗어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운 각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전시·공연
  • 박은
  • 2026.03.23 16:05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고무줄 잣대’ 심사에 예술계 분노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하 재단)의 ‘2026년 문화예술육성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두고 예산 배분의 형평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역 예술계를 대표해 온 주요 단체들이 대거 탈락하고 특정 인사가 연관된 단체들에 지원금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22일 전북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9억5000만 원이 투입된 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심사에서 전북시인협회, 국제펜(PEN)문학 전북지부 등 지역 문단을 지탱해온 대표 단체들이 선정에서 제외됐다. 특히 한국문인협회 산하 14개 시·군지부 중 단 두 곳을 제외하고 전원이 탈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은 “지역 문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단체는 탈락시키고 소규모 단체들만 선정한 것은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지원이 중단되면 역사 깊은 단체들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성토했다. 장교철 전북PEN문학회장 역시 “문학인들을 구걸하는 처지로 몰아넣고 자존심을 짓밟았다”며 “객관적인 지표보다 심사위원의 입맛이 우선시되는 불투명한 심사기준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날을 세웠다. 올해 장르별 심의기준을 보면 문학분야 평가는 △계획의 구체성 및 타당성 40% △신청단체의 실행역량(사업실적 및 경력) 40% △발전기여도 및 파급효과 20%로 구성됐다. 실적과 경력 배점이 40%에 달함에도 지역 대표 문학단체들이 탈락하면서 심사 기준에 의문이 커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글을 통해 뜻을 전달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점은 (신청서가) 문학작품과 다르지 않다”라는 심사평은 공공지원사업의 객관적 평가 기준이 심사위원의 주관적 잣대에 밀려났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반면 특정 인사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복수의 단체들이 명의만 바꿔 지원금을 중복 수령하는 행태는 전혀 걸러내지 못했다. 재단 이사직을 역임했던 한 인사가 개인 지원금을 받은 데 이어, 본인이 운영하는 다수의 단체까지 사업에 선정되면서 예산을 가져간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정통성을 지닌 단체에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재단이 특정 인맥의 예산 독식은 사실상 방치하면서 공적 기구로서 공정성을 저버렸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진 분야 신청 자격으로 ‘개인전 1회 이상’의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예술가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가로 활동 중인 한 예술인은 “성장의 마중물이 되어야 할 지원사업이 오히려 ‘자력 전시’를 요구하고 있다”며 “재단이 자금력을 갖춘 이들만 넘을 수 있는 문턱을 세워 예술가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현장 이해도가 낮은 외부 심사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심사 방식이 전문성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재단 심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지고 있다. 홍승광 재단 문화예술본부장은 “올해 예산 증액분은 개인예술가 지원에 우선 배정했다”면서 “특정 인사의 중복 수혜 건은 내부에서 인지했으나 외부 심사위원들의 선정 결과를 임의로 조정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향후 현장 의견을 수렴해 성장 단계별 지원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22 16:52

[안성덕 시인의 ‘풍경’] 소리 없이 기적이 웁니다

대개 일제강점기, 새마을운동 시대에 생겨났지요. 간이역은 시설이 낡고 오래된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의합니다. 이용객이 줄어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는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산간벽지 승부역도 왁자했었지요. 간이역, 이젠 영화나 소설이나 다큐나 시에서나 뚜우 뚜우 거립니다. 세월의 승부에서는 지고 추억의 승부에서는 살아남은 셈입니다. 수선화 촉인 듯 고개를 내밉니다. 그 봄 속으로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봄 春 나루 浦 전라선 춘포역, 개찰구를 빠져나간 세월도 사람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건만, 이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역 아닌 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큰 들이라서 일제강점기 대장촌(大場村), ‘오바무라’라 불렀지요. 익산에서 여수 가다 보면 동이리 다음 역이었고 전주에서 익산 갈 땐 삼례 다음이었고요. 1914년 기적을 울려 1996년 ‘춘포역’으로 이름표 바꿔 달고 1997년 간이역이 되었다가, 2007년 문을 닫았네요. 만경강변 벚꽃 흐드러진 어느 봄날 덕진역에서 타 춘포역에서 내린 적 있었지요. 만발했던 벚꽃도 봄나루 사공도 간 곳 모릅니다. 춘포역 플랫폼에 소리 없이 기적이 우네요.

  • 문화일반
  • 기고
  • 2026.03.21 08:46

‘K-문화수도’ 외치는 전북도, 홈페이지엔 문화가 없다

전북특별자치도가 ‘K-문화수도’라는 청사진을 내걸고 있지만, 정작 도민과 소통하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문화를 외면하고 있다. 대외적 홍보와는 달리 문화·예술 카테고리를 찾아보기도 어렵고, 특정 단일 사업보다 낮은 단계로 분류돼 있어 전북도가 내세우는 문화중심지로서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19일 전북도 홈페이지의 분야별 정보를 살펴보면 △전북 고향사랑 기부제 △전북 복지 △저출생 대응 정책 △전북, 마이웨딩 △토지/교통 △전북 농업 등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도의 미래전략이라고 주장하는 문화는 메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도민들은 문화 관련 정책이나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방대한 공고문을 뒤지거나 홈페이지 하단에 배치된 관련 사이트 링크를 찾아 헤매야 하는 처지다. 반면 결혼지원사업인 ‘전북, 마이웨딩’은 분야별 정보에서 한번의 클릭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문화분야는 별도의 사이트가 있어서 홈페이지에 넣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도립미술관이나 문화관광재단 등 기관 홈페이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농업 등 다른 분야도 별도의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유독 문화·예술 분야만 메뉴에서 증발한 것은 행정 내부의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고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광역단체와 비교하면 더욱 초라하다. 전남도나 경북도는 홈페이지 첫 화면부터 문화와 관광 메뉴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해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도는 2023년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문화 메뉴를 넣을지 고민하고도 결국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문화수도’를 외치면서도 행정 내부에서는 문화를 마이웨딩 사업보다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지역 문화계는 행정이 문화를 대하는 저급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거대한 축제 예산으로 생색내기보다 도민의 정보 접근성 같은 기본부터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홈페이지를 개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메인 메뉴에 문화를 배치하려면 전체적인 시스템 확인과 타·시군 사례 비교가 선행돼야 한다. 예산 편성 문제도 얽혀 있어 당장 개편은 어렵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전북도는 전북일보 취재가 시작되자 홈페이지에 ‘문화관광'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19 17:45

"전주 문화의 다음 20년”⋯정책 전환 목소리

전주문화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열린 ‘미래전략 포럼’ 종합토론에서 재단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단순한 사업 수행기관을 넘어 지역문화정책을 설계하는 주체로의 전환 필요성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19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이흥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의 ‘지역 공진화 문화전략’과 라도삼 서울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의 ‘AI시대, 지역과 문화기획’ 발제로 시작돼 향후 문화정책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시했다. 종합토론은 원도연 원광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은정 전북일보 콘텐츠기획실장, 김영주 가톨릭대 교수, 박영준 문화기획자, 설지희 프롬히어 대표가 참여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갔다. 김은정 실장은 “문화재단의 성과는 사업 규모 확대가 아니라 지역문화 생태계의 건강성과 문화단체의 자생력으로 평가돼야 한다”며 공모사업 중심 구조 속에서 재단의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교수는 “AI 시대에는 기존의 산업·이벤트 중심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지산학 협력, 문화데이터 구축, 실험적 플랫폼 조성 등 ‘공진화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영준 문화기획자는 “지역에 축적된 서사와 진정성이 문화의 본질”이라며 단기 성과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창작 인큐베이팅과 지속적인 지원 체계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지희 대표는 시민 참여 확대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전주는 문화 향유 역량이 높은 도시”라며 시민이 기획과 소비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와 거버넌스 구축 필요성을 언급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문화재단이 공모사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정책 설계와 생태계 조성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행정과 예술가,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 조직으로서 ‘플랫폼’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이번 포럼은 전주문화재단 20년을 계기로 지역문화정책의 방향을 재점검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생태계 구축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재단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에 따라 전주 문화정책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3.19 17:45

‘한’을 탱고로⋯페탈예술기획 ‘세한송백’ 무대

지역 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우리소리 우리가락’이 올해 첫 무대로 색다른 음악적 실험을 선보인다. 도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장르 ‘탱고’를 통해 ‘한국적 정서’를 현대 음악으로 풀어낸 공연이 관객을 찾는다. 우진문화재단은 20일 오후 7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제152회 ‘우리소리 우리가락’ 공연으로 페탈예술기획의 ‘세한송백: 겨울을 춤추는 푸른 열정’을 선보인다. 전주시가 후원하는 이번 무대는 클래식과 탱고가 결합된 ‘누에보 탱고’를 통해 동시대 청년 예술가들의 내면과 시대 감각을 풀어낸다. 공연 제목인 ‘세한송백’은 ‘추운 계절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의미처럼,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예술적 열정을 상징한다. 페탈예술기획은 이를 ‘겨울을 이기는 춤’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해, 관객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이번 공연은 ‘우리소리 우리가락’이라는 이름에 대한 재해석에서 출발했다. 페탈예술기획은 “우리 소리라고 하면 흔히 국악을 떠올리지만,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현대적인 누에보 탱고와 결합해 표현하고자 했다”며 “정서적으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선택한 음악적 기반은 누에보 탱고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작품들이다. 피아졸라의 음악에는 노동자 계층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만큼, 오늘날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체 측은 “당대의 아픔이 담긴 음악을 통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건네고 싶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은 자작곡과 피아졸라 작품을 넘나들며 구성됐다. ‘Rdando lentamente’를 시작으로 ‘항구의 겨울’, ‘Escualo’, ‘Cafe 1930’, ‘천사의 죽음과 부활’ 등 서정성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무대가 이어진다. 바이올린·첼로·피아노 등 클래식 악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탱고 특유의 강렬한 리듬과 감정선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2018년 결성된 페탈예술기획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젊은 예술가 그룹이다. 학교 선후배로 구성된 이들은 클래식과 무용을 결합한 융합 공연을 통해 자신들만의 색을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창작곡 EP ‘흑백개화’를 발매하며 음악적 정체성을 확장하고 있다. 단체는 이번 무대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전북은 국악의 기반이 매우 탄탄한 지역인 만큼, 클래식 기반 팀으로서 선정된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며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탱고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마음의 충격’으로 다가가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람료는 1만 원. 공연 예매는 전주티켓박스를 통해 가능하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3.19 17: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이경옥 ‘바람을 만드는 아이들’

사촌오빠가 일본에 살아 자주 여행을 갔었다. 예쁘게 빚은 과자나 인형에 눈이 현혹되었다. 고풍스러운 가게를 들어갔다가 부채에 꽂혀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경옥 작가의 글에 나온 ‘방구부채’였다. 모양이 둥근 단선이라는 부채를 말한다. 부채 손잡이 직경이 1cm가 조금 넘는데, 작은 곳에서 부챗살이 40개로 갈라져 있다. 한눈에도 섬세하고 정교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내 모습에 오빠가 말했다. “저 부채 마음에 들어?” “아이고, 얼마나 비싼데? 신기해서 보는 거예요. 부챗살을 어떻게 잘랐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오빠가 사줄게. 장인 만든 아주 좋은 부채니까.” 오빠는 만류하는 나를 뿌리치고 기어이 사줬다. 10년이 넘게 지니고 있는 부채는 비싼 가격 탓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다. 책 속에 달래가 만들어주는 방구부채가 간절해진다. 이경옥 작가의 『바람을 만드는 아이들』은 부채를 만드는 아이들의 성장 이야기다. 마치 바람처럼 말이다. 달래는 아버지가 만드는 부채를 보고 자라난 아이다. ‘대나무는 무작정 자르면 부러지니 손목에 힘을 빼고 결을 따라가는 것’이란 가르침을 듣고 부채를 만들고자 열망한다. 서로 다른 사연과 마음을 갖은 아이들이 부채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주인공 달래는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다. 하지만 달래는 정련방장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선자장의 계략으로 달래가 공들여 만든 변죽은 타버리고 만다. 달래는 그때야 선자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했던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어느 결에 최고가 되려고 했던 것을 반성하고 진정한 ‘바람’을 나눠주려 결심한다. 달래의 마지막 말은 저마다 있어야 할 곳이 있음을 말해준다. “다른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요.”달래는 낮은 자리에서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각자 다른 곳에 있지만 함께 공동선을 이루자는 말이 묵직하게 와닿는다. 요즘 방송에 쟁점이 되는 뉴스는 최고 주목 받던 사람들이 줄줄이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하나같이 겸손하지 않다. 하나같이 숨겨둔 것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세상을 떠난 별들의 제 평가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평생 조연을 하면서도,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최선을 다했던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바람을 만드는 아이들』에 등장인물들은 자기가 있을 자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힘겨움, 꼭 해내겠다는 끈기, 남보다 낫겠다는 시기,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다. 화해하고 함께 목표를 행해 가는 친구들을 격려해준다. 아이들은 부채를 통해 바람을 만들어 내듯 서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낸다. 함께 용기를 내고, 서로를 위로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지금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3.18 19:11

내 이웃의 서재가 ‘인문학 도서관’으로…전주시 제1호 시민서가 지정

전주시가 시민이 평생 정성껏 가꿔온 개인서재를 공동체 자산으로 공유하는 ‘제1호 전주시민서가’를 선보인다. 시는 오는 23일 문화사학자인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신정일 이사장의 서재를 제1호 시민서가로 공식 지정하는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이번 협약은 ‘함께라서(書)’라는 슬로건 아래 개인이 소장한 장서와 인문학적 가치를 공적 자산으로 인정하고 이웃과 나누는 ‘책 문화 가치 환산’ 사업의 일환이다. 지자체가 주도해 사적인 독서공간을 지역사회의 인문학 거점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는 전국에서 전주시가 처음이다. 제1호 시민서가로 지정된 ‘신정일의 서가’는 신 이사장이 1970년대부터 수집해온 문학·역사·철학 등 수만 권의 인문학 서적이 소장된 보물창고다. 특히 희귀 문학잡지 창간호와 시집은 물론, 한국 잡지사의 중요 자료인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등을 보존하고 있어 인문학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받는다. 협약에 따라 해당 서가는 오는 2028년 2월까지 2년간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시는 이곳을 거점으로 월 1회 이상의 ‘서재산책’ 활동과 청소년 진로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역사회공헌 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다. 시민을 위한 강연도 마련된다. 오는 31일 ‘전주 택리지’를 시작으로 △4월 조선을 뒤흔든 역모사건 △6월 해파랑길 인문기행 △10월 세상을 바꾼 문장들 등 매월 화요일마다 깊이 있는 강연이 펼쳐진다. 신 이사장은 “개인의 서가도 누구나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도서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시민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고 깊은 사유를 공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박은
  • 2026.03.18 17:43

3000년 살아남은 모험담, 현대적 산문으로 다시 깨어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담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역설적이게도 독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고전으로 꼽힌다. 생소한 비유와 방대한 분량 탓에 완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신화연구가 김원익이 내놓은 평역본 <오디세이아: 그리스 신화 원전>(세창출판사)은 이러한 무게감을 덜어내고 고전 본연의 재미를 완벽히 되살려냈다. 책은 트로이전쟁 이후 10년 동안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인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중심으로, 파편화된 그리스 신화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입체적인 서사로 재구성했다. 단순히 이야기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오디세우스라는 한 인간이 겪는 처절한 고뇌와 성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김원익 평역자는 노래 형식의 고대 시(詩)였던 원전을 산문 형식으로 새롭게 번역했다. 원전의 깊이는 유지하되 문장을 현대적으로 다듬은 덕분에 독자는 난해한 표현에 가로막히지 않고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이는 학문적 엄밀함과 문학적 감수성이 만나 고전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춘 성과라 할 수 있다. 독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도 돋보인다. 풍부한 해설과 엄선된 명화는 추상적인 신화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이해를 돕는다. 또한 오디세우스의 항로를 담은 정밀한 지도는 독자가 모험에 직접 동참하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신과 영웅들의 관계를 정리한 계보도를 덧붙여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한 점은 김원익 평역자의 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번 책은 고전을 향한 학자의 경외심과 독자를 향한 애정이 만났을 때 어떤 걸작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원전의 묘미를 보존하면서도 가독성을 극대화한 이 책은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잊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자극을, 신화의 세계에 첫발을 들이는 이들에게는 친절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김원익 평역자는 책 머리말에서 “평역에 부족한 부분과 실수가 있다면 앞으로 계속 다듬고 고치도록 하겠다”며 “그리스 신화의 원전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도 좀처럼 다가갈 수 없었던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해묵은 갈증을 풀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평역자 김원익은 전주고와 연세대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홍익대 교수이자 세계신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신통기>, <사랑의 기술> 등 고전의 정수를 담은 역서와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문화>,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신화수업 365>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6.03.18 17:43

진영의 파도 너머 원칙을 묻다…이석연이 던진 화두 ‘소신’

진영논리가 일상을 잠식했다. 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불의가 된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진실조차 뒤바뀐다. 혼란에 빠진 한국사회는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법조인이자 ‘헌법적 자유주의자’로 살아온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이 펴낸 <소신>(도서출판 새빛)은 바로 이런 시대를 향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권력의 유혹이나, 진영의 이익이 아닌 변하지 않는 원칙을 붙들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저자 이석연은 법제처장과 헌법재판소 제1호 헌법연구관을 지낸 대표적인 법치주의자다. 평생 권력이 아닌 ‘법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 저자는 이번 신간에서 자신의 인생을 관통한 통찰을 5부에 걸쳐 풀어냈다. 세계 각지를 답사하며 얻은 인문학적 사유부터 한국 사회의 예민한 헌법적 쟁점, 치열했던 젊은 날의 기록까지 저자의 인생 전체를 엮어 독자들을 깊은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람들은 종종 헌법을 추상적인 것,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 여긴다. 잘못된 생각이다. 헌법은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구체적인 약속이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는 독재와 전횡의 시대로 돌아간다. 헌법은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권력을 견제하는 살아있는 기준이어야 한다.”(p. 6) 저자가 말하는 원칙은 고집이 아니다. 특정 진영에 속하지 않는 ‘헌법의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그는 2024년 말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헌법의 가치를 다시 확인했다. 헌법은 법전 속의 죽은 문자가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가장 구체적인 방패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권력은 늘 선을 넘으려고 하지만 유혹을 막아낼 때 마지막 보루는 결국 헌법이라고 역설한다.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가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판단의 유일한 잣대를 헌법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근간은 20대 시절에 확립됐다. 산속 암자에서 독파한 500여권의 책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초를 만들어줬다.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던 젊은 날의 모험이 지금의 ‘이석연’을 만든 셈이다. 저자는 “완성된 삶은 없으며 인간은 죽는 날까지 미완성”이라고 강조한다. 책의 종착지는 통합이다. 저자가 말하는 통합은 거창하지 않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다름을 인정하며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지극히 평범함 일상의 실천이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 절로 길이 생긴다는 ‘도리불언 하자성혜’의 가르침처럼 저자는 원칙을 지키는 묵묵한 삶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을 전한다. 저자 이석연은 정읍 출생으로 중학교 졸업 6개월 후 대학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금산사에 들어가 2년간 책을 읽었다. 전북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23회)와 사법시험(27회)에 합격했으며 수도이전법 등 30여건의 위헌 결정을 받아낸 논쟁적 법률가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책이라는 밥> <판단력 수업> <헌법은 상식이다> 등 20여권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6.03.18 17:42

졸수에 피운 사랑꽃, 이근풍 시집 ‘흐르는 세월 속에서’ 출간

임실 출신 이근풍 시인이 시집 <흐르는 세월 속에서>(오늘의문학사)를 펴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의 23번째 작품집으로, 1부 ‘흘러가는 세월 속에’를 시작으로 2부 ‘어머니 별’, 3부 ‘자신도 모른 사이’, 4부 ‘사랑받는 사람으로’, 5부 ‘사랑의 불꽃’까지 총 5부로 구성됐으며 약 100편의 시를 담았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무력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보내면서/ 내가 할 일 무엇인가/ 다각도로 생각해도/ 떠오르는 영감 없고/ 흘러가는 세월 속에/ 해야 할 일 못 찾으면/무엇하고 살 것인가/ 여러 갈래 길 가운데/ 가야 할 길 안 보이면/ 노력으로 찾은 거다”(시 ‘흘러가는 세월 속에’ 전문) 시집 속 ‘흘러가는 세월 속에’는 노년의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짚는 성찰을 담고 있다. 무력감과 방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담담하게 드러난다. 이어 ‘서시-맑은 정신으로’에서는 시 창작을 통해 삶을 견뎌온 시인의 내면이 응축돼 있다. 시인은 “인생살이 하는 동안 최고의 선택은 시를 쓰는 것이었다”고 밝히며, 시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평온을 고백한다. 시를 쓰는 과정이 잡념을 덜어내고 삶을 맑게 하는 시간이었다는 점도 강조된다. 전반적으로 이번 시집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삶을 관조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시인이 체득한 삶의 의미를 서정적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리헌석 문학평론가는 발문에서 “졸수를 넘긴 연세에도 순수 서정시집을 펴낸 시인의 노당익장을 박수로 응원한다”며 “작품 곳곳에 담긴 ‘시인의 본분’에 대한 성찰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시인은 전북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했다. 계간 <오늘의문학> 16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북경찰문학회, 전북임실문학회, 문학사랑협의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3.18 17:13

유응교 시인, 시조집 ‘꽃에게 사랑을 묻는다Ⅱ’ 출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순정한 시선으로 묵묵히 시의 길을 걷고 있는 유응교 시인이 시조집 <꽃에게 사랑을 묻는다Ⅱ>(신아출판사)를 펴냈다. 2007년 출간한 시집 <꽃에게 사랑을 묻는다> 이후 19년 만에 선보이는 시조집은 꽃을 매개로 삶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노래한다. “떠날 때 떠나는 건/얼마나 눈부신가/일시에 흩날리며/환하게 웃으면서/손 털고/일어서 버린/ 멋진 삶이 좋아라//끈질긴 애착으로/붙들지 아니하고/화사한 추억들만/이승에 남겨놓고/가볍게/손짓하면서/떠난 삶이 좋아라”(‘벚꽃의 꿈’) 시집에는 감꽃 개나리꽃과 꽃구절초 금낭화 동백꽃 모란꽃 물망초 백일홍 벚꽃 산수유 수선화 등 80여 종의 꽃이 시가 됐다. 꽃은 시인에게 어머니고 사랑이며, 삶을 대변한다. 시인은 “꽃은 흘러간 지난날의 추억 속에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해준다”며 “꽃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나아가 우리의 몸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꽃에 대한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꽃을 선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공학박사이자 전북대 학생처장을 역임한 명예교수인 유 시인은 다수의 대학 전공 이론서와 칼럼집, 시집을 냈다. 한국예총이 수여하는 한국예술문화대상, (주)국제해운이 수여하는 해양문학상(바다사랑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칼럼집 <전북의 꿈과 이상>, 시집 <그리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이 있다. 현재는 전라시조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6.03.18 16:48

‘민주와 포용의 한 세기'⋯권노갑 백인(百人) 평전

권노갑, ‘김대중의 영원한 비서실장’을 기리는 책이 출간됐다. 올해 96세를 맞은 그를 위해 대통령과 영부인, 국회의장, 국무총리, 장관, 정치적 동지와 후배, 경쟁자와 벗에 이르기까지 117명의 기억을 모은 <권노갑 백인 평전>(메디치미디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한 원로 정치인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현대 정치사를 입체적으로 기록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인물들이 같은 시대를 회고하며, 한 사람의 삶을 통해 한국 정치의 굴곡과 민주주의의 여정을 다시 불러낸다. 1부 ‘시대의 이름이 말하는 권노갑’에서는 대통령과 영부인, 국회의장, 국무총리, 당대표 등 시대의 지도자들이 직접 전하는 권노갑의 이야기가 담겼다. 민주주의의 분기점마다 그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증언한다. 이어 2부 ‘권노갑과 그의 시대’는 그와 함께 시대를 건너온 인물들의 기록이다. 독재와 탄압, 정권교체와 화해의 시간을 지나며 형성된 한 정치인의 윤곽이 드러난다. 특히 양영두 사선문화제전 위원장의 글 ‘대한민국 민주역사에 크게 기록되길 소망하며!’가 실려,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던 시절의 권노갑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3부 ‘권노갑의 일과 삶’은 그의 삶의 태도를 조명한다. 김대중의 사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실천한 동반자이자, 승리보다 책임을, 계산보다 신의를 앞세운 참모로서의 면모가 담겼다. 마지막 4부 ‘권노갑의 끝없는 배움’은 정치 이후의 삶을 비춘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다시 교실로 돌아간 만학도의 모습, 가르치기보다 배우기를 택한 자유인의 태도는 정치인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속내를 보여준다. 각 부 도입부에는 권노갑 인생의 주요 순간을 담은 자료사진이 실렸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함께했던 시절부터, 96세의 나이에도 정계 원로로서 역할을 이어가는 현재까지 그의 삶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책 말미에는 당시 정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사와 대담, 연보가 부록으로 수록됐다. 특히 13대 국회 초선 시절 권노갑 의원과 노무현 의원이 지역감정과 정치 구조를 주제로 나눈 대담이 담겨, 두 정치인이 바라본 한국 정치의 고민과 현실 인식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아울러 김대중 정치의 현장을 기록한 취재수첩 기사들도 함께 실려, 민주화 시대 정치 현장의 긴장과 사건들을 전한다. 권노갑의 삶은 김대중이라는 이름과 분리될 수 없지만, 그는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그 역사를 지탱해온 또 하나의 축이었음을 이 책은 분명히 보여준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3.18 16:46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