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지도자였던 박경훈(49)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이 프로축구 K-리그 사령탑으로 새 출발 하자마자 올해의 감독으로 뽑히면서 깨끗하게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한국 프로축구판에서 하위권을 맴돌던 제주를 단번에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끈 박 감독은 20일 오후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0 쏘나타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2007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 때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던 박 감독이 지도자로서 재기를 알린 의미 있는 상이었다.
화가가 꿈이었던 박 감독은 남들보다는 다소 늦은 고교(대구 청구고)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3년 만인 한양대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혀 10년 동안 맹활약하는 등 축구공과 함께 한 시간에는 늘 정상에만 서 있었다.
하지만 17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치른 2007년 FIFA U-17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통과조차 못 하고 쓴맛을 단단히 봤다. 2년 가까이 대표팀에 공을 들였던 터라 박 감독의 지도력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후 박 감독은 제주 사령탑에 오르기 전까지 전주대 체육학부 축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축구를 다시 공부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깨우쳤던 박 감독은 올해 제주를 맡아 그라운드로 돌아와서는 선수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말라. 실패를 만회한 팀이 승리한다"고 강조해 왔다. 박 감독은 바람처럼 빠른 축구, 돌처럼 단단한 조직력의 축구, 그리고 아름다운 축구 등 '삼다(三多) 축구'를 보여주려 했다.
만년 하위권에서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제주 선수들의 눈빛은 금세 달라졌다.
2006년 제주로 연고를 옮긴 뒤로 13위-11위-10위에 이어 지난해 15개 팀 중 14위에 그쳤던 제주는 결국 올해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유공 시절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1989년 이후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박 감독은 올해의 감독을 뽑는 기자단 투표에서 113표 중 87표를 쓸어담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4위의 성적을 일군 성남 일화의 신태용 감독(23표)을 압도적 표 차로 제쳤다.
FC서울의 시즌 2관왕을 지휘하고도 재계약에 실패한 넬로 빙가다(포르투갈) 감독은 고작 3표를 받는데 그쳐 박 감독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박 감독은 상을 받고나서 "실패한 감독을 받아준 제주 사장께 감사드린다. 또 서울 구단이 빙가다 감독과 계약을 안해 주셔서 제가 이 상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해 장내 웃음꽃이 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그동안 우승팀이 아닌 준우승팀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뿐이었다.
게다가 포철에서 선수로 뛰던 1988년 MVP로 뽑혔던 박 감독은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1986년 MVP, 2009년 감독상)에 이어 두 번째로 K-리그 MVP와 감독상을 모두 받은 지도자 대열에 합류했다.
박 감독은 "내년에도 감동이 있는 축구, 아름다운 축구를 선보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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