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지원 안 받고 공연 참가자 재능기부로 / 자주·평등·생명 위해 목숨 바친 이들 제사 의식
동학농민혁명이 120년 전 민초들에 의한 혁명이었다면, 지난 18일 열린 ‘모악 천하 대동제’는 시민들에 의한 제의(祭儀)였다.
관(官)의 지원 없이 민(民)의 참여로 이뤄진 온전한 행사라는 점과 자주·평등·생명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위로하는 제의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프로그램 구성 등이 동학 120주년을 더욱 뜻 깊게 만들었다.
지난 18일 오후 5시 전주 경기전 정문 문화마당은 120주년 기념‘모악 천하 대동제’의 시작을 알리는 시민농악대의 기접놀이가 한창이었다. 이날 ‘모악 천하 대동제’는 서막(곡창의 신화)과 제의마당(들풀에도 넋이 있어), 집체마당(녹두새 울던, 아! 전북도), 종막(새야 새야 파랑새야) 등 4개 무대로 나눠 진행했다.
시민농악대의 기접놀이에 이어 악단 더불어봄의 ‘파랑새’와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서막의 문을 열었다.
이후 전라북도 무형문화제 제15호 호남살풀이 이수자인 진현실 씨의 ‘반야심경 도살풀이’로 시작된 제의마당은 ‘모악 천하 대동제’의 목적을 관객들에게 말 없이 전달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여태명 원광대 교수의 서예 퍼포먼스 ‘만경강 물을 길어 먹물을 만들고’에서도 하얀 천에 써내려 가는‘자주·평등·생명’글씨가 힘 있게 전달되면서 집중도를 높였다. 안정균 법사의 독경이 뒤따르자 하늘에 제의 시작을 알리는 고천문이 낭독됐다.
집체마당은 지성철 씨의 검무와 장순향 춤패의 군무 ‘녹두꽃 피고 지고’, 여성농민합창단의 ‘호남 농민가’ 등을 선보였다. 이어 노찾사의 ‘녹두꽃’과 주경숙 씨의 ‘노랑 민들레’, 연희단 팔산대의 풍물 굿 등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종막에 이르러서는 5명의 시민이 김용택 시인의 시 ‘나는 모악이다’를 함께 낭송하면서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오유열 씨의 고풀이‘모악산이 내려오는구나’와 김혜숙 씨의 길베가르기 ‘평산의 소가 되어’, 악단 더불어봄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끝으로 대동제 공연은 막을 내렸다.
공연을 관람한 홍모씨(49·전주시 경원동)는 “동학농민혁명 2주갑을 기념해 많은 공연들이 열리고 있지만, 제사를 지내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제의 분위기를 끌어가는 형식은 처음 접해 새로웠다”며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추모의 성격과 동학 정신의 계승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이어 “시민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고 재능 기부로 기획한 행사라는 취지와 맞게 출연진과 프로그램의 짜임도 훌륭했다”며 “다만 의미에 비해 장소가 협소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모악 천하 대동제 출연진은 도내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면서 대동제가 전국적인 관심사임을 보여줬다. 특히 공연 참가자들은 재능 기부를 통해 공연에 나서면서 동학의 주된 창의(倡義)정신 가운데 하나였던 자주와 평등의 정신을 실천했다.
임수진 모악 천하 대동제 추진위원장은 “동학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24억여원의 예산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거의 삭감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뜻 깊은 행사를 관의 지원 없이 민간 스스로 열기로 뜻을 모았다”며 “국민 모두의 정성이 모여서 동학 고장의 자존심은 물론 동학 정신이 크게 빛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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