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무대·비보이 등 화려한 연출 돋보여 /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 감정선 회복 아쉬워
노부부의 환영(幻影), 젊은 부부가 꿈같은 춤사위를 펼치고는 보름달 뒤로 사라진다. 젊은 날의 그들이 그랬듯, 노부부도 말없이 서로를 위로하며 그림자만을 남긴 채 보름달을 향해 걸어간다.
지난 6~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선보인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의 제23회 정기 공연 ‘행복동 고물상’은 치매와 신(新)고려장, 고물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관객에게 눈물과 교훈을 강요하지 않았다. 김수현 도립국악원 무용단장이 부임한 이후 내놓은 첫 데뷔 작품으로 관심을 모은 이 공연은 빈 좌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무용수의 동작마다 스토리를 담아내겠다던 김 단장의 말은 그대로 재현됐다. 10개의 소품 가운데 ‘백색 치매춤’이나 ‘떠나는 길’ 등은 노부부 역의 문정근(前 무용단장), 장인숙(널마루무용단 예술감독) 씨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7명의 무용수들이 서로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헤매고, 고뇌하는 모습에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혼돈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 4명의 비보이와 작곡·편곡과 더불어 라이브 연주를 맡은 불세출의 참여는 시쳇말로 ‘신의 한 수’였다. 각 통로에서 고물을 주우며 등장해 자연스럽게 공연의 시작을 알린 비보이는 전통 악기에 맞춰 춤을 추거나 비트박스를 하고, 박수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 집중도를 높였다. 불세출은 기타와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등의 연주로 삶의 무상함과 노년의 적적함을 표현했다.
조명이나 무대 장치, 배경 전환도 공연의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이 여사의 죽음’에서는 홀로 무대에 주저앉은 이 여사를 무대 아래로 내려가도록 연출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나타내고, 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생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적절히 표현해 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조합이 작품 속에서 성공적으로 조화됐느냐는 데 이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10개 소품들의 장면 전환이 갑작스러워 전개상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감정선을 회복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무겁지 않게, 비극적인 현실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에 강하게 묶여 버린 탓일까. 각각의 장면 전환마다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모습으로 작품이 전개되면서 관객의 몰입도를 오히려 방해한 측면이 생겼다. 특히 ‘떠나는 길’에서 꽃상여와 연꽃으로 노부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뒤 ‘다시 활기찬 현실로’에서 10대 소녀들이 나와 ‘아이 엠 그라운드(게임의 일종)’ 등을 하는 장면은 기껏 고조된 감정선을 꺾는 듯한 느낌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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