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억 간직, 오늘날 사람과 문화가 머무는 공공의 무대로 ‘주목’ 전통유산의 계승과 국제 문화교류의 장, 남녀노소 모두 문화 향유의 주인공
전주한옥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검은 기와지붕이 이어지는 한옥들 사이로 하얀 집 한 채가 환하게 서 있는 모습이 시선을 붙든다. 그 낯섦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멈추게 한다. 이곳은 오랜 세월 전북도지사 관사로 사용되다 이제는 도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하얀양옥집’이다.
△권위의 담장을 넘어, 도민의 집이 되다
하얀양옥집은 약 50년 동안 전북의 행정을 품어온 공간이다. 1971년 완공된 뒤 첫 5년 동안은 전북은행장, 그 뒤 19년 동안은 전북도 부지사의 관사로 사용됐고, 이후 1995년부터 27년간 도지사 네 명의 살림집으로 쓰였다. 그리고 2022년 6월, 제36대 전북도지사에 취임한 김관영 도지사는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관사를 쓰지 않겠다”며 관사를 도민에게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랜 세월 동안 문턱이 높았던 이 공간은 2024년 5월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이경윤, 이하 재단)이 운영을 맡으며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새출발을 알렸다.
문턱을 낮춘 만큼, 보다 친근한 새 이름이 필요했다. 재단은 도민을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모았고 그 결과 ‘하얀양옥집’이 25년간 불렸던 관사라는 타이틀을 대신하게 됐다. 당시 검은 지붕의 한옥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탓인지 주민들은 이 집을 ‘하얀집’으로 불렀는데 예전의 그 이름을 다시 되찾은 셈이다.
△방마다 새겨진 이름, 공간마다 머무는 이야기
하얀양옥집의 대문을 열고 현관 입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은 전시공간 ‘문턱’이다. 방문객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문턱을 넘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을 지나 2층으로 이어진 나무 계단을 오르면 도지사의 집무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 ‘이을’과 마주하게 된다. 과거 도지사들의 헌신과 수고를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게 ‘이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방문객들에게 고민하게 만든다. 이곳에 마련된 편지지와 필기도구를 사용해 도지사에게 편지를 보낼 수도 있다.
2층에서 가장 넓은 공간은 응접실 ‘맞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예술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으며 실제로 예술가의 무대나 토론회 등으로 가장 북적이는 곳이다.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공간은 백인의 서재 ‘여럿이’다. 전북도민은 물론 역대 도지사와 예술가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명사 백 명이 추천해 준 도서를 한곳에 모아 놓았다. 독서 공간도 마련되어 누구든 원하는 만큼 머물다 갈 수 있다. 소규모 모임이나 강연도 열 수 있도록 꾸며져, 과거에 사적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오늘날 공적인 사유와 대화의 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이렇듯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방들이 오늘날에는 사람과 문화가 머무는 공공의 무대로 새롭게 쓰이고 있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면 바깥으로 연결된 테라스 ‘무렵’으로 전주한옥마을의 돌담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잠시 바람을 쐬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은 방문객에게 또 다른 여유를 선사한다.
△한 가족의 집에서 온 도민의 문화거점으로
하얀양옥집은 개소 이후 현재(지난달 29일 기준)까지 14만 7188명이 방문하며 체류형 지역 문화거점으로서의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개소 기념으로 열린 기획전 ‘들턱’(집들이의 순우리말)에서는 하얀양옥집과 ‘동갑’인 1971년생 전북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해 도민들에게 선보였고, 이외에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세계소리축제, 전북장애인복지관, 전북여성단체연합, 세이브더칠드런 등 다양한 지역 기관과 협력했다. 테라스 콘서트, 아트마켓, 팝업스토어, 마술쇼, 플리마켓 등 도민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행사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는 남녀노소 모두가 문화 향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획전시 ‘작은 손 큰 상상’에서는 전주한옥마을에 소재한 전주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작품을 출품했을 뿐 아니라 도슨트까지 맡으며 ‘이웃’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전북일보의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청년이장이 떴다> 프로젝트와 관련해 화정마을(완주군)·용평마을(김제시)·월봉마을(고창군)의 어르신 23인과 전북 예술인 6인이 협력한 예술 작품을 전시하며 관람객들의 열띤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전통유산의 계승과 국제 문화교류의 장으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선자장(전통 부채 제작 기술 보유자)인 김동식·방화선 장인과 함께 복합 문화 콘텐츠(판소리, 합죽선 제작 시연, 관객 참여형 토크 등)를 진행하며 도민들에게 전통문화를 알렸다. 또한, 한지 공예 전문가인 김혜미자 장인과 함께 진행한 일본 가나자와시市 와의 교류 및 한국-몽골 국제 문화예술 교류 기획행사 등을 통해 전북 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데 노력했다.
재단은 또한 지난 2년간 축적한 사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에도 국내외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오는 하반기부터 국립공원공단 서부지역본부·전북여성단체연합·전북특별자치도 등과 협력하여 지역 문화거점으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이외에도 어린이·가족을 위한 참여형 전시 등을 기획하여 도민 누구나 일상 속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단의 목표이다. 하얀양옥집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10시~18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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