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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무궁화대상’ 15년째 공동주최 송기태 (유)동성 회장

질서와 안보, 정의, 봉사 등을 통해 헌신하는 전북지역 경찰관들을 발굴해 격려하는 전북무궁화대상 시상식이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지난 1997년부터 시행된 전북무궁화대상은 전북일보사와 전북지방경찰청 외에도 (유)동성(회장 송기태)이 공동주최하고 있다. 경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전북무궁화대상을 오랜 세월 공동주최하고 있는 (유)동성 송기태 회장으로부터 무궁화대상 등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전북무궁화대상을 올해로 15년째 공동주최하고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요?△사실 그때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우리 경찰들에 대한 지원이 변변치 않았었고 사회적으로 경찰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많이 부족했던게 사실입니다. 특히, 24시간 우리의 곁에서 가장 근접하여 생명을 담보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데도 사회적 냉대는 물론 위로나 격려, 시상도 별로 없었고요. 이 때 전북일보사에서 지역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일선 경찰들을 발굴하여 격려하고자 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전북일보사 사장님께 연락을 드려 행사를 공동으로 주최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죠. 이게 바로 무궁화대상을 공동주최하게 된 동기입니다.-평소 경찰의 역할에 대한 소신은 무엇인지요?△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어느 공무원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은 특히나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직업의 특성상 사실 월급쟁이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시민과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사회, 한 가족과 같이 지역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의로운 삶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동안 공동주최하면서 기억에 남은 일은?△처음에 무궁화대상 시상식을 개최하면서 과연 몇 년이나 이 시상식을 진행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비록 무궁화대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대상자를 발굴할 수는 있겠지만 경제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의미 없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많은 고민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더욱 발전시켜 온 무궁화대상 시상이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15년이란 세월동안 각 분야에서 탁월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만든 경찰관들을 발굴해 시상할때면 매년 흐믓하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무궁화대상은 안보, 질서, 봉사 등 경찰관들에게 수여되는 3개 부문과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정의부문 등 4개 부문에 걸쳐 매년 5명을 선정하여 시상하게 되는데 올해를 포함해 지금까지 두차례에 걸쳐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정의 부문 대상자를 선정하지 못한 점입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의로운 일을 행하며 사회와 함께 따뜻함을 같이 나누는 정의로운 행위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본 행사를 공동주최하면서 느낀 가장 가슴아픈 일로 기억됩니다.-지역사회 공헌사업에도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는 명절이 되면 항상 어려운 이웃들을 초대해 돼지도 잡고 많은 음식을 장만해 지역주민들을 대접하고 백미를 나누어 주던 것을 지켜봐 왔습니다. 그러다가 아버님의 사업을 이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저도 아버지께서 해오셨던 일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이어받게 된 것이지요. 제가 1973년도에 전주로 내려오면서부터 어려운 이웃 돕기를 진행해 왔으니 4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습니다.-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재임시 지역경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는데 어떤 일들이 기억에 남는지요.△2000년 4월 18일 전주상공회의소 제17대 회장 취임 당시에는 외환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어려운 경제상황과 경제구조의 영세성 및 지역특화산업 부재,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지역기업을 대표하는 경제계 수장으로서 총체적인 지역경제 활로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던 시절이었습니다. 2005년 3월에는 기업유치위원회를 구성해 자치단체가 할 수 없는 민간부문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 LS전선, 현대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도내에 유치함으로써 전북의 산업구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 고도화 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신용보증재단 설립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전주지점 개설, 호남고속철도 정읍분기역 설치 단초 제공,중소기업진흥공단 호남연수원 명칭 변경, 지역건설업의 BTL사업의 전반적인 제도개선, 자동차보험료 지역별 차등화 추진 반대, 완주산업단지내 KIST예정부지 송전탑 노선변경 및 지중화사업 등의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특히 지난 2001년 새천년새전북인운동 실천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2003년 전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강한전북일등도민운동추진협의회 회장직을 겸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대정부 건의, 200만 도민 서명운동 등을 주도 하면서 마침내 33.3㎞의 세계최장의 방조제를 완공한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앞으로 활동 계획은 무엇인지요△400여년을 전주에서 살아온 명문 후손으로서 집안의 명예와 자존심을 위해 지역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가와 사회단체장으로서 왕성한 시절을 보냈던 당시에 비해 건강은 좋지 못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데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 기획
  • 강현규
  • 2011.11.03 23:02

친환경 무상 급식이 농가 살렸다

“거창한 대규모 공동급식물류시설이 없어도 됩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초중고 모든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이 그렇게 어려운 일 만은 아닙니다”24일 경남 합천군 문화체육과 권오송 교육진흥담당은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로 학생들의 건강이 크게 좋아졌고 전학률이 떨어졌다”고 말했다.뿐만 아니다.학교급식에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우선 공급한다는 원칙을 세워 농민들의 소득이 대폭 향상됐다.로컬푸드를 학교급식으로 실천함으로써 합천군은 예산 투자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합천군이 모든 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시작한 때는 2009년부터다. 전국 최초였다.초등학교(병설 유치원 포함) 20곳, 중학교 12곳, 고등학교 6곳 등 38개교의 5719명 전원에게 학생들로부터 급식비를 받지 않았다.당시 합천군의 재정자립도는 경상남도 34.2%의 절반도 안되는 12% 수준이었고 1년 예산은 3400억원이었다. 가용재원 100억원 가량중에서 16억여원을 투입했다. 교육청 특별회계 15억여원이 더해져 총 32억원이다. 합천군은 도로 개설 등 눈에 보이는 성과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이라는 백년대계를 선택했다.2006년부터 3년간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30%의 학생들에게만 무상급식을 실시했지만 2009년부터 전체로 확대했고 올해도 13억원의 예산이 쓰여지고 있다.학교급식으로 인한 학생들간 위화감, 차별을 없앤 합천군은 급식 재료로 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을 고집하고 있다.합천군에서는 무상급식을 전체 학생에게 확대시키기 위해 2008년 4월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합천 생산자 영농조합법인’이 창립됐다.대표는 선종대 연호사 주지 전각스님이 맡았고 4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합천군 대양면 대목리에 10평의 저온저장시설과 사무실을 확보해 관내 초중고에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1톤 냉장차량 2대가 아침 6시30분에서 10시까지 구간별로 나눠 신선한 농산물을 학교에 배송하고 있다.직거래가 이뤄지는 지역생산물이 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합천에서 생산되지 않아 타지에서 조달한다. 쌀은 연간 합천산 65톤을 소비한다.합천군의 친환경 급식으로 농민들은 무농약 쌀 전량을 아무 걱정없이 판매할 수 있고, 가격도 안정적이어서 쌀농가 소득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채소류와 과일류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대부분 유기농인증을 받아 학생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안전한 급식을 위해 농민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는 유기농 연구와 실험에 수년간 매달려 인증에 성공했다.농민들의 안정적인 판로는 농산물 파동이 일어나도 학교급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계약재배에 따라 농민들은 일정한 가격을 보장받으므로 배정받은 물량의 생산에 최선을 다해 수급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무엇보다 합천군의 친환경 무상급식이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학부모와 학교의 이해에서 출발했다.각 학교의 영양사와 급식관계자, 학부모들은 합천영농조합법인이 틀을 갖출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로컬푸드에 의한 안전하고 신선한 급식, 거기에 지역의 소득향상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농민과 학교, 행정이 똘똘뭉쳐 합천군은 무상급식에 관한한 가장 앞서 가고 있다.

  • 기획
  • 백기곤
  • 2011.11.02 23:02

원주농업인 새벽시장에 가보니

우리나라 로컬푸드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원주 농업인 새벽시장은 1994년 5월 1일 개장했다. (전북일보 8월 1일자 20면 보도)강원도 원주시 평원동 54번지 원주교-봉평교 사이 원주천 둔치 8794㎡에 매일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까지 시장이 선다.농업인새벽시장 원주시협의회(회장 지경식)가 운영하는 이 시장은 매년 4월 20일부터 12월 10일까지 235일간 추석 하루만 빼고 매일 열리고 있다.426명의 회원은 모두 농민이다. 연간 5만원정도의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매일 조금씩 가져와 새벽시장에서 판매한다. 도매시장에 경매를 부칠 수 없을 정도로 물량이 적어 새벽시장에서 직접 소비자를 상대한다.자생적으로 출발한 시장의 역사가 18년째에 이르는 만큼 많은 원주시민들이 여기서 장을 본다. 둔치가 넓어 주차가 편리해 멀리서도 찾아온다. 소비자들은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싱싱한 때에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다.지난해 24만명이 이 곳을 찾아 80억여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됐지만 실제로는 100억의 매출을 넘을 것이라는 것이 원주농기센터의 분석이다.10년 넘게 원주새벽시장에서 과채류를 팔고 있는 지병서씨(57·원주시 신림면 황둔1리)는 “시민들도 조금 싸게 사고, 농민들은 조금 더 받고…. 직거래의 장점이 그대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매출이 적을 땐 하루 10만원도 안될 때도 있으나 100만원에 육박할 때도 있다. 회원들이 새벽시장 덕을 많이 본다”면서 “외부 장사꾼이 못들어오게 하는 등 관리가 엄격하다. 비가 내리거나 홍수시에 장사를 못하므로 시설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원주시는 로컬푸드로서 전국적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곳에 60억원을 들여 2013년까지 시설을 현대화할 계획이다.

  • 기획
  • 기타
  • 2011.11.02 23:02

“안전한 학교급식, 행정 지원에 달렸다”

“농민들이 친환경영농에 의식이 깨어있고 초기에 차량운송봉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보수를 받지 않고 법인 일에 적극 나서는 사람도 많아 무상급식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합천생산자 영농조합법인 정미영 사무국장(45)은 “우리 아이들한테 지역의 좋은 친환경농산물을 먹이자는 무상급식 취지에 농민들이 뜻을 모았다”면서 “다양한 품목이 공급될 수 있을 때까지 학교 영양사들이 1~2년씩 기다려주고 행정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무상급식 실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도입한 2009년 기존 급식업체, 식자재 공급업체 등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 업체들에게 농민소득향상과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 제공이라는 취지를 설명하자 수긍했다.정 국장은 “햄, 소세지, 수입 육류같은 국적없는 먹을거리에서 벗어나 지역의 친환경농산물이 공급되자 학생들의 아토피가 사라졌고 건강과 체력이 부쩍 좋아졌다”면서 “학부모와 교사, 영양사들은 지역의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에 긍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합천군의 무상급식 예산 13억중 법인 매출은 5억5000만원가량이고 나머지는 황토한우 등 육류, 생선류 식재료와 인건비이다. 비상근으로 월 30만원의 실비성 급여를 받는 정 국장은 “직원 2명, 아르바이트 1명, 차량 유지비 등으로 법인이 적자를 보고 있다. 차량의 감가상각비조차 어렵다”면서 “행정의 지원 증대가 아쉽다”고 말했다.

  • 기획
  • 기타
  • 2011.11.02 23:02

박승 전 총재는

가난했던 시절 대학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룬 뒤 대통령 경제수석(1988년)과 건설부장관(89년), 한국은행 총재(2002년) 등 학계와 관계, 금융계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우리나라 경제계의 큰 별이 됐다. 유지경성(有志竟成).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고사성어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누구한테나 일생에 세번쯤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박 전 총재한테도 세번의 기회가 있었다. 서울대 상대에 진학한 것이 첫번째이고 한국은행에 입행한 것이 두번째, 미국 유학이 세번째 기회였다. 한국은행 근무 시절 학술연수생으로 선발돼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수(중앙대 경제학과76년)의 꿈을 이루는 전환점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제학 교수가 되고 싶어했고 후진국 경제발전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아마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역저를 꼽으라면 경제발전론이다. 두차례 개정판이 나와 지금도 대학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키워드는 고난이다. 고난은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큰 길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회고록에서 썼다. 한국일보에 기고한 연재물(2009.72010.11) 제목도 고난 속에 큰 기회 있다였다. 어려웠던 시절 그는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다짐하면서 자신을 추스렸다. 그래서 회고록 제목도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로 정했다.어릴 때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해 온 것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일기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맨손체조 하는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회고록을 쓰는 데도 일기가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 경제전문가이자 한국경제발전의 산증인이지만, 삶의 궤적과 철학을 들여다보면 그는 꼭 이 시대의 선비라는 생각이 든다. 카리스마 넘치는 열강,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성품, 자신과 가족한테 엄격하지만 이웃에게는 따뜻한 성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마음가짐 등이 그런 일면이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 연봉의 20%를 떼내 고향 김제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 학교지역, 소년원 등 복지시설에 보탰다. 드러내지 않고 지금도 남을 돕고 있다. 건설부장관 7개월 재직중 공식적인 대외활동비로는 턱 없이 부족해 2000여만 원을 사비로 충당했다. 남한테 손 벌리지 않은 탓이다. 사후에 장기기증 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나이가 많아 안구만 가능하다고 해서 서울대병원에 안구기증을 등록해 놓았다. 서울대 상대 동기 모임(350여명) 때 아반떼를 타고 갔더니 동기생들이 쇼크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성공했다, 잘 나갔다던 사람이 소형 승용차를 타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통령 자문 국민원로회의 때 자가운전으로 청와대를 들어가는 위원은 박 총재가 유일하다고 한다.부인 권영하여사는 두살 아래다. 익산 양조장 집 딸로 이화여대 국문과를 나왔다. 당시 김제군 백구면 제내리에서 이리공고로 기차통학을 할 때 수도 없이 오갔던 그 집 딸이지만 당시엔 부부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슬하에 2남3녀를 두었다. 두 아들은 각각 KDI정책대학원 교수와 삼성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이고 사위들은 강원대 교수와 (주)유니레버 상무,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 기획
  • 이경재
  • 2011.11.01 23:02

“‘빈곤화 성장’ 큰 문제…정부, 강력한 재분배정책 펴야”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우면 더욱 바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여행도 하고 글도 쓰고…. 인터뷰나 강의요청도 있어 바빠요. 행사도 많고.”-경제문제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국가경제는 성장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더 어렵게 되는 ‘빈곤화 성장’이 문제입니다. 자유 경쟁 개방 등 신자유주의 질서의 역기능이지요. 성장의 과실이 승자독식되고 그 결과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겁니다.”-MB(이명박 대통령) 정부는 서민경제를 내세우지만 역설적으로 서민고통이 더 큽니다. “출범 초 친기업, 부자감세 정책을 내놨지만 이건 서민경제를 악화시키는 역주행이었습니다. 뒤늦게 친서민 정책을 내걸고 부자감세도 철회했지만 서민민생고는 더 깊어지고 있어요.”-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십니까.“MB의 개혁의지 부족 때문이지요. 부자와 대기업 등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MB 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떤 점일까요.“기업식으로 하면 국가도 잘 경영될 것으로 본 것 같은데 잘못된 판단입니다. 기업은 잘못하면 퇴출시키고 잘 되는 부문만 끌고 가면 되는데 국가는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공항에 기업인을 위한 귀빈실 만들고 친기업정책 펴면서 세금 깎아주면 잘 될 걸로 알았지만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고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경제정책들은 갈팡질팡했지요.”-참여정부도 ‘친 서민정책’을 폈는데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총재께서는 ‘노무현의 역설’로 표현하셨던데 무슨 의미입니까.“노무현 대통령은 늘 약자를 배려했고 정책도 서민 위주로 수립하도록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재임 시절 실제 혜택을 본 사람은 부유층이었고 서민대중의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말하자면 배를 서쪽으로 저어갔는데 실제 배는 동쪽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노무현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노무현의 역설’의 원인이 뭘까요.“집값폭등, 양극화현상 두가지입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값 상승과 관련해서는 최강도 대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집값 안정효과는 임기말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 혜택은 MB정권이 누리고 있습니다. 집값상승보다 서민생활을 더 어렵게 한 것은 경쟁우위 부문인 대기업과 열위부문인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과의 양극화현상이었습니다. 재임 5년간 대기업은 연평균 4.4%씩 성장했지만 중소기업, 자영업, 농업은 위축되고 실업자는 늘어나고 빈부격차는 커져서 서민들 먹고 살기가 더 어렵게 된 것이지요.”-양극화 현상은 사회통합과 경제발전의 걸림돌입니다.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만일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자유 경쟁 개방의 시장주의는 생산과 수출증대에는 효과적이지만 분배문제에는 역행합니다. 파이가 특정 계층에게 돌아가고 국민 대부분은 빈곤해지는 게 문제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재분배 정책을 펴야 합니다. 시장주의는 지켜가지만 분배문제 만큼은 시장에 맡기지 말자는 겁니다.”-재분배 정책을 하려면 많은 재원이 관건인데요. “‘사회복지세’를 신설하자는 겁니다. 빈부격차의 주범이 자산에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자산(금융자산과 부동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법인에게는 기업소득(이윤)에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떼낸다면 연간 20조~30조원의 재원이 마련되는데 이 돈은 결국 부유층과 대기업이 부담하는 돈입니다. 이 돈으로 반값 등록금과 실업자 최저 생활비, 최저생계를 하면서도 정부한테 한푼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자는 겁니다.” -정동영 의원이 주장하는 부유세와는 어떻게 다른가요.“부유세는 부자한테만 세금을 부과하고 부자를 미워하는 느낌이 들어 있습니다. 반면 사회복지세는 중산층을 포함해서 먹고 살만한 계층이 세금을 조금씩 더 내고, 대기업도 이윤의 일정액을 세금으로 내기 때문에 개념이 다르죠. 어려운 계층을 돕는다는 명분이 있어 가능합니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퓨전이군요.“공동체 자본주의로 가자는 거지요. 국민의 기본수요인 교육, 의료, 생존의 문제 만큼은 빈부 격차 없이 똑같이 누려야 할 덕목 아니겠습니까. 똑같이 책임지고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겁니다.” -한국은행 총재 임기 4년 중 3년을 참여정부에서 지내셨습니다. 경제문제에 관한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항상 약자와 서민 편에서 국정을 챙기셨습니다. 특권과 권위의식이 없고 부동산투기에 대해서는 반도덕적, 사회적 죄악이라고 말할 만큼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중요한 정책회의도 사저에서 상의 벗어 제치고 넥타이 풀고 담배도 권하면서 자유분방하게 했습니다. 소탈한 그런 분위기는 처음 경험했습니다.”-지금 지구촌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탐욕스런 금융자본’에 대한 저항인데 정부가 금융자본을 더 견제하고 감시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무질서한 과당경쟁의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입니다. 승자독식,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고 빈곤과 실업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 서민들의 소외감이 폭발한 것이지요. 정책 당국이 깊이 새기지 않으면 자본주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어요. 정부가 강력한 재분배정책을 펴야 합니다.”-이야기를 돌려, 지난 4월 모교인 김제 백석초등학교에 ‘박승 도서관’이 개관됐습니다. 총재께서 5억원을 기부해 성사됐다는 소식이 지역사회에 알려져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만. “내 재산은 자식한테 안 물려준다,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30년 전부터 공언해 왔어요. 그런데 3년 전 폐교 위기에 몰린 모교에서 교장과 교사들이 목공기술과 빵굽는 기술, 예절을 가르치는 등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걸 봤습니다. 이에 감명 받아 나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지난 4월 22일 개관한 이 도서관은 박 전 총재가 5억원을 기부하자 도교육청이 2억원을 지원해서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박 전 총재의 이름을 따 ‘박승 도서관’으로 명명됐다. 1층에는 도서관 및 박 전 총재 기념관, 2층은 3D영화관(80석) 및 연극, 세미나실을 겸비한 문화관으로 꾸며졌다. 3000여권의 장서가 있다. 이영란 교감은 모교에 대한 박 전 총재의 관심이 지대하다며 장학금 등 필요할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다고 전했다. -총재님의 좌우명이 선심후물(先心後物)입니다. 기부도 많이 하셔서 ‘노블레스 오블리제’(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회자됩니다. 선심후물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물질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데 나는 자식들에게 정신은 남보다 앞서고 물질은 한발 뒤따라가라고 가르쳐 왔어요. TV나 전화, 냉장고도 남보다 늦게 마련했고 자동차도 동료들보다 한단계 낮은 차를 탔어요. 그렇다고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바른 정신은 많을 수록 좋고 물질은 많을 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대학시절 서울을 오가면서 농사를 지으며 공부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동력이 작용한 걸까요. “가난 때문에 다른 길이 없었어요. 아버님은 중풍으로 누워 계시고 어머님은 연로해서 노동능력이 없었지요. 직접 농사(논 2000여평, 밭 500여평)를 지어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어요. 등록만 하고 내려와 농사를 짓다 시험 때가 되면 친구 노트를 빌려 공부하고 시험을 쳤어요. 집에 내려올 때에는 책을 한아름 도서관에서 빌려와 주경야독을 했습니다. 3학년 1학기까지 그런 생활을 했는데 자각은 더 깊어졌고 의지는 더 강해졌던 것 같습니다. 4학년 때는 서울대 상대를 대표하는 학생으로 뽑혔으니까.”당시 여동생은 오빠가 이런 변칙적인 대학생활을 하자 ‘서울대생들은 모두 시험 때만 학교에 가는 줄로 생각했다’고 박 전 총재는 회고록에 적고 있다. 푸른 벼라는 뜻의 청도(靑稻)를 호로 지은 것도 농사짓던 때 농민들의 땀냄새와 흙냄새, 푸른 벼 냄새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얼마전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를 출간하셨습니다. 가난한 농사꾼에서 한국경제를 책임지는 인물로 성장하기까지의 역사와 여러 경제 사회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돼 있더군요. 보람 있었던 일,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면. “일산 분당 등 5대 신도시를 건설한 것과 한은총재 시절 한은법을 개정해서 독립성을 강화한 것이 보람으로 남아요. 반면 화폐개혁이 무산된 것은 아쉬워요. 화폐단위의 인플레 현상이 심각해서 1000원을 1환으로, 대미 환율도 1대1로 하는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무산됐어요.” -1988년 노태우 정부 때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등 한국경제발전사(史)의 산 증인이신데 지근거리에서 본 역대 대통령은 어떠했습니까.“전두환 대통령은 호남형, 보스기질이 있지만 국정철학이 빈곤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군인이었지만 문학소년처럼 다정다감했어요. 김영삼 대통령은 우직한 결단력이있지만 지도자로서 허점이 많은 분이고,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의식이 투철하고 명석한 머리를 가지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권위적, 친서민적이었지만 지도자로서 세련미가 좀 떨어지는 분으로 비쳤습니다.” -화제를 전북 문제로 돌려 볼까요. 밖에서 본 전북은 어떤 곳,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까.“조용한 곳, 농사짓는 곳, 소외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요.”-전북은 예나 지금이나 인구는 빠져나가고 국내총생산은 16개 시·도 중 꼴찌 수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산업화 정책이 경부축에 집중됐고 정치적으로도 오랫동안 소외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지정학적 조건에서도 산업화하기에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당 대표, 국회의장, 대통령후보, 장관 등 인물도 많았고 호남정권도 탄생시켰습니다. 그런데도 달라진 건 없지 않습니까.“인물은 많았지만 지도세력으로서 세력화하는 데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관심은 없었나요.“여러번 기회가 있었지만 사양했어요. 젊었을 때부터 평생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소신이었습니다. 나는 성격상 정치가 맞지 않아요.”-지역이 발전하려면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요.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전북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느 나라나 산업화 과정에서 공장 많은 곳이 잘 살았어요. 그러나 앞으로는 돈은 공장지대에서 벌고, 소비는 환경이 좋은 곳에서 할 것입니다. 돈 버는 곳과 쓰는 곳이 분리된다는 얘기지요. 자연환경과 사회질서, 민심이 아름다운 곳이 경쟁력이 있는 시대가 옵니다. 살기 좋은 환경, 문화발전, 공공질서 있는 곳이어야 희망이 있습니다. 전북이 그렇게 되도록 잘 가꿔가야 합니다.”-그에 덧붙여 도민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자녀교육 잘 시켜 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가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교육이지요. 전북은 침체돼 있지만 2세들을 잘 가르쳐 훌륭한 인물로 만들면 그들이 전북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 달라는 것입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공동체 의식을 갖고 지역발전을 위해 힘을 합하면 막강한 힘이 발휘되고 20~50년 뒤 전북은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발돋움할 것입니다.”

  • 기획
  • 이경재
  • 2011.11.01 23:02

21. 혁신과 통합 운영위원 워크숍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의 서울시장당선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혁신과통합을 발족하고 야권대통합을 통한 총선대선승리를 이루려는 시민사회는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야권통합정당 건설에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10월 26일 재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한나라당, 민주당 어느 누구도 승리했다고 자축하지 못하고 있다. 통합하면 승리한다는 것으로 표현된 시민사회의 통합정당 건설은 박시장의 당선으로 힘을 얻게 되었고 11월 혁신적인 통합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제안서를 발표하고 시민사회와 제정당이 참여하는 혁신적인 통합정당 공동추진위원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혁신과 통합은 지역조직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11월 통합정당추진위원회구성과 1월 중 정당을 건설하는 일정으로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30일 개최된 혁신과 통합 운영위원 워크숍에서는 전국상황에 대한 보고와 혁신적인 통합정당의 가치와 과제, 통합정당의 운영원리, 비전과 정책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다.△박원순 서울시장, 혁신적인 통합정당에 참여지난 30일 혁신과통합 상임대표단 5인(이해찬, 문재인, 문성근, 남윤인순, 이용선)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찬을 갖고 야권단일후보로 나서 압승한 박원순 시장에 대해 축하하며 이번 보궐선거와 향후 정치변동에 대한 환담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서울시장선거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해 시민들의 강력한 심판 의지가 드러난 선거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금까지 공언한 대로 국민의 변화 요구를 받아낸 혁신적이고 통합을 이룬 정당이 만들어 진다면 이에 참여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혁신과통합은 시민사회와 제 정당이 참여하는 <공동선대위>꾸려 야권단일후보의 승리를 일구어 냄으로써 혁신과 통합을 통한 대안 마련이 국민의 요구이며, 총선 대선승리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갖게 한 것이다. △혁신과통합 지역조직 건설 박차 시민사회가 만들려는 혁신적인 통합정당에 박시장이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혁신과 통합 지역조직 건설도 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10월 5일 전북@혁신과통합이 지역조직 처음으로 발족한 이후 광역 13개중 부산, 경남, 대구가 발족하였으며 광주(1일), 경기북부(2일), 울산(3일), 경기동부(5일)의 건설이 예정되어 있고 충북, 충남, 전남이 11월 15일 이전에 발족하며, 강원과 제주 2개 지역이 준비하고 있다. 또한 수도권의 부천과 고양이 발족하였고 경기남부와 안산이 준비모임중이며 서울 강북구가 발족하고 22개 구의 준비모임이 구성되는 등 전국적인 혁신과통합이 11월 중순에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과 통합 조직담당 관계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혁신과 통합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서울시장 선거승리로 야권대통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아졌음을 실감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혁신과 통합 황현선 실행위원장은 10월 26일 이후 남원, 익산 등 지역에서 혁신과통합에 가입하고 지역에서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며 구체적인 활동을 묻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혁신적 통합정당 건설을 위한 워크숍30일 개최된 혁신과통합 운영위원 워크숍에서 최민희 사무총장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정당은 민주진보세력만의 정당이 아닌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제정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드는 혁신적인 통합정당이다고 말하고 워크숍과 대토론회, 지역조직 간담회 등을 통해 혁신적인 통합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워크숍에는 제주를 비롯한 각 지역조직 운영위원과 정당관계자, 언론사 들이 대거 참여해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혁신과 통합 발족이후 1026 재보궐선거까지 경과와 지역조직 건설 현황에 대한 보고가 있은 후 경희사이버대학 안병진교수가 혁신적 통합정당이 추구할 가치와 과제를 발표하고 김두수 홍보위원장의 정당 운영원리와 구성, 홍종학 정책위원장의 비전과 정책에 대한 발제가 있은 후 열띤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초벌구이로 참석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수정보완하여 11월 6일 6개분야 대토론회를 개최한 후 혁신적 통합정당추진 제안서 발표로 공식화 할 예정이다. 안병진 교수는 국내외적 대 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위기의식과 대각성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가치로의 혁신적 재구성을 요구한다고 강조하고 새로운 가치의 열망에서 핵심 키워드는 시민의 구체적 삶의 공동체라고 규정하며 시민민주주의와 시민경제론에 입각한 정당의 가치를 갖는 통합정당이다고 혁신적 통합정당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주장하였다.△전북의 정치혁신 물결혁신과 통합 이해찬 공동대표는 광역시장과 광역단체장을 만나 혁신적인 통합정당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서울, 인천, 경남, 강원, 충북단체장의 참여의사를 확인하였고 전북, 전남, 광주시 등의 단체장과 접촉하고 공식회동을 통하여 통합정당추진위를 확대 하겠다고 밝혔다.혁신과 통합은 민주당이 당헌당규를 개정하고 야권대통합에 나설 수 있도록 협의를 강화해 나가며 1월말 대의원대회를 예정하고 있는 민노당을 제외한 제 정당과 시민사회세력, 시민들이 공동으로 구성하는 혁신적 통합정당 공동추진위원회를 11월 중 발족하게 된다. 민주당이 빠진 대통합은 사실상 어렵기 12월 치루게 될 민주당의 전당대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한편 지역의 판을 바꾸자라는 주제로 연속토론회를 개최하며 지역정치혁신과 변화를 주장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지역정치 변화와 혁신을 위한 총선 출마예정자들의 모임을 마련하여 주목받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각 지역구에 출마예정자 12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고 변화와 혁신을 위해 대통합 정당 건설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며, 전북도민의 현역 국회의원의 교체에 대한 여론에 부응하여 대폭적인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참여자치연대의 제안에 대해 밀도 깊게 토론하였다. 참석자들은 이에 공감하고 11월 3일 회견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기로 하였다. 이날 참석한 12명 외에 출마예정자들도 가세할 것으로 보여 지역정치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전북@혁신과통합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장 안호영 전 참여자치연대 공동대표는 전국적인 변화와 혁신, 혁신적인 통합정당건설에 민주당이 핵심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전북에서의 변화와 혁신은 민주당의 변화와 혁신을 견인할 수 있는 요충지라고 말하고 대통합과 총선대선승리에 전북이 앞장서도록 매진할 것이다고 각오를 밝혔다.

  • 기획
  • 김성중
  • 2011.11.01 23:02

심뇌혈관질환이란

심뇌혈관질환이란.심근경색증과 뇌졸중으로 대표되는 심뇌혈관질환은 암과 더불어 한국인의 중요한 사망원인 질환으로 최근 사회경제적 부담이 날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따라서 질환 발생 시 적절하고 신속한 초기 대처는 물론 적극적인 예방이 그 어떤 다른 질병보다도 중요시되고 강조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심뇌혈관질환 증상이 나타났을 때 올바른 대처를 못하거나 초기대처에 늑장을 부려 제때 의학적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게 오늘날의 현실이다.이에 전북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원광대병원)는 10회에 걸쳐 심뇌혈관질환에 대한 올바른 의학정보를 제공,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에 기여하고자 한다.△심뇌혈관질환 및 특징.심뇌혈관질환은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같은 동맥경화증의 선행이 되는 질환과 심혈관질환(심근경색증, 협심증) 및 뇌혈관질환(뇌경색, 뇌출혈)을 총칭하는 의학 용어다.사망률이 높고 의학적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어 환자와 가족 등 사회적으로 커다란 부담을 안기고 있는게 심뇌혈관질환인데 초기대응 여부에 따라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수 있기에 그 어떤 질병보다도 초기대처법이 중요하다.△국내 심뇌혈관질환 환자수.지난 2009년 허혈성 심장질환(심근경색증, 협심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65만명이고, 진료비는 대략 8,300억 원에 달한다.또한 이 기간동안 뇌졸중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약 52만명, 진료비가 약 8,700억 원인데 이는 2005년 대비 각각 18.5%54.7% 증가한 수치다.아울러 2004년 약 10만 건이었던 뇌졸중 발생도 인구 고령화 추세에따라 2030년에는 대략 35만 건으로 증가할것으로 예상된다.△심뇌혈관질환 국내 사망자.2009년 우리나라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결과, 암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28.3%로 가장 높았고, 심뇌혈관질환은 25.4%로 암 다음으로 한국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특히 뇌졸중으로 대표되는 뇌혈관질환 사망은 10.5%로 단일질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허혈성 심장질환이 5.2%를 기록하는 등 최근들어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이와함께 전북에서의 뇌혈관질환 및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자는 각각 1,551명, 535명로 나타났다.최근 10년간 전국적으로 심뇌혈관질환 사망률이 약 40% 이상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심뇌혈관질환 증가 이유 및 치료 성적.식생활의 서구화, 사회경제적 발전 및 고령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심뇌혈관질환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우리나의의 급성기 치료 성적은 매우 낮은 편이다.병원 도착 후 전문적인 치료 시작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선진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뇌졸중 환자의 경우 증상발생 후 3시간 이내에 병원을 방문한 환자의 비율은 49.0%(2009년)에 불과한데 이는 우리나라 국민 약 8천여 명이 치명적인 장애를 예방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아울러 전체 환자의 2.1%에게만 혈전용해치료가 제공되고 있을 뿐이다.△전북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는 어떤 곳.보건복지부는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심뇌혈관질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종합대책 일환으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9개 권역별로 심뇌혈관질환센터를 지정했다.이에 전북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는 심뇌혈관질환의 응급치료와 조기재활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권역치료거점센터로서 심뇌혈관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진료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 전문의료인력을 육성하며 지역주민의 건강교육을 담당하는 등 선진 의료의 선도적 역할 수행에 나서고 있다. /김남호 교수(전북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장원광대병원 순환기내과)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31 23:02

Q&A로 알아보는 소화불량

Q. 소화불량에는 어떠한 증상이 있나요?A. 식사와 관련되어 느끼는 모든 불편함이 다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즉, 속쓰림, 신물 넘어옴, 트림, 팽만감, 잦은 방귀, 복통, 식욕부진, 구역, 구토, 체한 느낌, 갑갑하거나 답답함 등이 있습니다.Q. 소화가 잘 안 돼 마음 놓고 식사하기가 겁이 납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이상은 없다고 하는데 왜 증상은 계속되나요?A. 누구나 한번쯤은 식사 중에 언짢은 얘기를 듣고 난 후 갑자기 소화가 안 되어 고생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의 소화기는 stress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식사할 때만큼은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고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며 '오래 씹어 죽과 같이 되면 삼킨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면 도움이 됩니다. 그 밖에 체질적으로 흉곽이 좁아 소화가 잘 안될 수도 있으므로 소화기 자체의 기능을 높여줄 수 있는 한의학적인 치료를 받으면 차츰 호전될 수 있습니다.Q. 연하곤란, 구역, 구토나 식욕부진도 소화불량과 관련이 있나요?A. 의학적으로는 별개의 증상이지만 실제 임상에서 보면 소화불량을 같이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서 언급한 여러 증상이 소화불량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소화불량으로 인해 상기 증상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상호 인과관계를 형성, 악순환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의학적인 치료를 통해 악순환의 원인을 정확히 살펴 연결고리를 끊게 해주면 제반 증상이 경감되어 호전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Q. 일 때문에 식사시간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식사 후 식곤증도 잦은 것 같은데 혹시 다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나요?A.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간단한 식사 시간과 식사량을 지킬 것을 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식곤증(食困症)은 식후 나른해지면서 졸리는 증상을 말하는데 한의학적으로는 위(胃)의 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위기허(胃氣虛)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치료도 위기(胃氣)를 보해주는 향사육군자탕(香砂六君子湯)과 같은 처방과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혈(穴)자리에 뜸을 뜨는 치료를 위주로 하게 됩니다. 기타 다른 기질적인 질환이나 만성 피로와 같은 전신질환에 동반되어 식곤증이 나타날 수도 있으므로 규칙적인 식사 후에도 증상이 지속된다면 정밀한 진단이 필요합니다./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 한방내과 강세영 교수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31 23:02

21. 소화불량

물질이 풍요해지고 보건환경이 이전 세대에 비해 나아지고 있는 현대에 오히려 소화와 관련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보릿고개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음식을 섭취해 고혈압당뇨고지혈증과 같은 대사증후군 환자는 증가하고 있으며, 오염된 음식은 없어졌지만 통조림과 같은 가공식품이나 화학적 조미료가 첨가된 음식물에 자주 노출되면서 우리의 몸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소화불량은 일반적으로 음식물 섭취 후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여러 가지 증상을 표현하는 용어로서 흔히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비특이적인 용어이며, 환자나 의사 사이에서도 상이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환자의 경우 소화불량은 소화가 자연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즉 복부팽만감, 중압감, 통증 등을 의미하며 다른 환자의 경우에는 속쓰림, 트림, 팽만감 또는 gas 충만감 등으로 표현한다.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 한방내과 강세영 교수는 "대부분 식후의 불편감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갈수록 증상의 정도가 심해지고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갑작스런 체중감소가 있으면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소화불량의 원인소화불량은 크게 밝힐 수 있는 원인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나눌 수가 있는데, 전자는 기질적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이며 후자는 신경성, 기능적 또는 비궤양성 소화불량 등으로 불린다. 기질적 질환은 다시 식도질환(급성식도염, 만성역류성 식도염, 식도운동장애, 식도협착 등), 위십이지장질환(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위하수, 위무력, 위암 등), 담도질환(담낭염, 담석증 등), 췌장질환(췌장염, 췌장암 등), 장질환(과민성 대장증후군, 흡수부전, 장폐색, 복부암, 허혈성장염 등), 전신질환(폐결핵, 울혈성심부전, 신부전, 만성간질환, 당뇨병, 악성종양, 요도증 등)으로 나눌 수 있다.△기능적 소화불량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며 이는 정신적 인자가 증상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신적 인자는 환자가 당면한 문제의 원인이나 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며, 특히 중요한 것은 우울증, 분노, 불안, 걱정 등 이다. 기능적인 장애이므로 그 양상이 복통 혹은 복부불쾌감, 식후 포만감, 조기 만복감, 식욕부진, 구역, 복부 팽만감, 구토, 트림, 가슴 쓰림, 역류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대부분 증상의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많은 환자들이 생활의 불쾌감, 불편감을 함께 경험하고 삶의 질이 저하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한의학에서의 소화불량한의학에서는 기질적 소화불량일 경우에는 크게 담음(痰飮)이나 어혈(瘀血)로 변증해 치료를 하며 기능성 소화불량일 경우에는 비위기허(脾胃氣虛), 비위음허(脾胃陰虛), 비신양허(脾腎陽虛), 비신음허(脾腎陰虛)로 나눈다. 특히 신경을 과도하게 써서 오는 위장질환일 경우에는 간기울결(肝氣鬱結), 간기범위(肝氣犯胃), 간기승비(肝氣乘脾), 심비혈허(心脾血虛), 심담허겁(心膽虛怯) 등으로 나눠 치료를 하며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병원에 가기 전에 체크할 점소화불량을 느꼈을 때에는 조건과 부위와 양상을 명확히 살펴 병원에 가기 전에 파악하고 있어야 진단에 도움이 된다. 영양상태, 체중의 변동과 식욕과 함께 불쾌감이나 고통의 부위와 지속시간, 빈도, 증상과 음식물 섭취와의 시간적 관계, 특별한 음식물의 섭취와 증상과의 관련성이 있는가, 대변의 변화 등을 미리 알고 있다면 의사가 진단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한의학에서의 치료한방적인 치료는 약물치료(환제, 산제, 첩약), 뜸치료, 침치료, 부항요법을 실시해 담음이나 어혈을 제거하고 약해진 소화기능을 북돋으며, 기를 소통시킴으로써 동반하는 불안, 불면 등의 신경성 증상도 개선시키고 있다. 더불어 생활습관 개선 지도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치료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소화불량 예방법모든 위장질환의 개선을 위해서는 자극적인 음식(술, 너무 짜거나 매운 젓갈, 튀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 등)을 피하는 것은 기본이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을 섭취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소화기를 태어난 이후의 몸을 지탱해 주는 근본으로 여기고 있다. 이는 음식물을 통한 에너지 및 몸의 구성물질을 섭취하지 못하면 삶을 지속시켜 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중한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소화기관에 부담을 주지 않고 소화흡수도 더 잘 되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오래 씹기이며, 사소한 것 같지만 꾸준히 실천하게 되면 약해졌던 소화력이 회복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밖에 식후 물 섭취를 30분정도 제한하거나 식사 시 국물류의 섭취를 덜하기만 해도 가벼운 트림, 팽만감, gas 충만감 등이 개선되는 것을 단기간에 경험할 수도 있다. 국물의 섭취를 덜하게 되면 염분의 섭취량을 크게 줄여 고혈압과 같은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우석대 부속한방병원 강세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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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원
  • 2011.10.31 23:02

14. 영국의 쇼어디치개발신탁과 호크니협동조합

영국 런던의 북동부 쇼어디치(Shoreditch)지역은 낙후된 곳이다. 도심 외곽에 자리한 곳들이 그러하듯 다양한 인종이 모여살고, 일자리도 적다. 이 지역에도 지역공동체 회복과 도시재생을 위해 쇼어디치 개발신탁(Development Trust)이 결성됐다. 이 기구가 주력하는 사업이 이채롭다. 바로 식당운영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지원이다.▲ 지역공동체 재생운동 주도쇼어디치개발신탁 사무실이 자리한 건물 입구에 '워터하우스(Water House)'라는 간판이 달려있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서니 작은 광장 겸 놀이터가 있고, 안쪽으로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다.워터하우스는 쇼어디치개발신탁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원래는 5년전 쇼어디치 지역이 아닌 런던 킹스크로스역 주변에 '에이콘하우스(Acorn House, 지난 7월 폐쇄)'를 먼저 열었다.에이콘하우스와 워터하우스는 쇼어디치개발신탁의 한 사업방식이다. 식당 운영을 통해 지역 농산물을 팔아주고, 지역 청년들을 조리사로 키워낸다. 지역주민들을 식당에 고용하고, 수익은 쇼어디치지역 공동체를 위한 사업에 재투자된다. 식당 운영 하나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식당을 중심으로 공동체운동과 환경운동도 벌이며, 문화사업에도 투자한다.쇼어디치개발신탁은 에이콘하우스와 워터하우스 운영을 통해 친환경 요리사를 육성한다. 지역 주민들이나 청년들에 요리사 훈련 기회를 제공한다. 이 교육훈련에 참여하는 이들은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실제 요리사 양성 교육에는 범죄자 출신 등 사회적 자립이 필요한 이들이 참가하고 있다.요리사 양성과정을 마친 이들은 워터하우스에서 일하기도 하고, 다른 레스토랑에 취직하기도 한다. 특히 쇼어디치 개발신탁이 운영하는 요리사 양성과정은 친환경요리사로 차별화되고 있다.워터하우스에서 선보이는 음식은 모두 친환경요리다. 재료는 런던 외곽의 M5농장에서 가져오는데, 농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이 재배한 것을 사용한다. 직거래와 친환경을 중심으로 한 요리는 여느 레스토랑보다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식당 수익금은 전액 쇼어디치 지역 발전에 사용된다. 워터하우스 쉐프 밥 그립스(BOB GRIFFITHS)는 "워터하우스나 에이콘하우스는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회적기업 성격이 강하다"며 "수익금도 전액 지역 공동체에 재투자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식당 모델쇼어디치지역 공동체 회복을 주도하는 거점이 되고 있는 워터하우스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식당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자그마한 강줄기 옆에 자리한 워터하우스는 강에서 직접 물을 끌어다 사용한다. 식당 곳곳에 텃밭도 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로 거름도 직접 만든다. 지렁이가 살고 있는 거름통이 식당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간단한 채소는 식당 입구와 주변의 텃밭에서 키운다. 식당 옥상에는 벌통도 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요리에 사용하는 꿀도 직접 받는다.요리사 연수 프로그램과 연계된 M5농장에서도 유기농으로 동물을 키운다. 농산물 생산에서 손질, 조리, 처리하는 과정이 모두 환경과 연결돼 있다.밥은 "재료를 인근의 M5농장에서 가져오는 것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며 "작은 식당이지만 공동체와 환경 경제성 효율 등 다양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호크니협동조합발전회쇼어디치 지역 인근인 달스턴도 런던내에서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동네다. 이 곳에도 역시 지역공동체의 지속발전을 위한 호크니협동조합발전회(Hackney Co-operatives Development)가 조직돼 있다. 호크니협동조합발전회도 영국내 많은 공동체기업들처럼 지방정부와 기업들의 지원으로 다양한 공동체사업을 하고 있다. 자산은 지방정부와 기업들의 임대와 기부로 마련한 건물과 광장이다. 이러한 자산을 토대로 마을기업을 만들고 주민들의 문화예술향유와 소통을 지원하고 있다.현재 달스턴 지역의 구심점은 호크니협동조합발전회가 입주해있는 건물과 건물 앞 광장이다. 건물은 호크니지방정부가 협동조합에 100년동안 임대했다. 협동조합은 이 건물의 임대사업을 하는데, 수익은 모두 지역 공동체사업에 쓰여진다.호크니협동조합과 쇼어디치개발신탁 모두 로컬리티(Locality)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공동체회사다.특히 호크니협동조합은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문화예술단체나 기업 예술가들이 함께 어우러져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돕는다. 건물도 예술단체나 예술기업에 임대하고, 광장에서 문화행사도 열어 주민들이 소통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과 전시 행사도 열고, 공정무역과 유기농산물 판매도 한다. 지역기업들의 상품전시도 함께한다.이러한 행사장소로 애용되는 곳이 바로 광장이다. 원래 이 동네에는 광장이 없었다. 주민들간 교류하고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호크니협동조합발전회가 지방정부와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주차장이었던 곳을 광장으로 조성하고, 이 곳에서 공연 놀이 게임 토론 등 지역행사를 열었다. 광장 입구에는 질레트(GILLETT) 등 광장조성에 후원한 기업들의 이름을 새긴 명패가 걸려있다. 광장에서는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의 공연이 수시로 열린다. 광장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는 광장앞 카페에서 관리한다. 알티노 페르난데스(Altino Fernandes) 호크니카페 매니저는 "광장이 생기면서 달스턴 주민들에 생활문화가 향상됐다"며 "주민들의 여가프로그램이 광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호크니협동조합발전회는 지역내 작은 기업이나 자영업자 컨설팅도 한다. 또 주민들이 지역 기업을 이용하는 운동도 벌인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달스턴지역의 경제적 자립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은수정
  • 2011.10.31 23:02

20. '서동' 바로 알기

요즘 드라마'계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드라마에 백제 무왕이 나오는데, 어릴 적 이름이 서동이다. 무왕은 아주 나약하고 어수룩하며 사택 가문과 대립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형편없는 군주로 묘사되었다. 분명 역사 왜곡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서라벌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마를 주고 꼬드겨 서동요를 부르게 하여 선화공주가 궁궐에서 쫓겨나게 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역사 왜곡이라고 본다.▲ '서동요'는 어떤 노래인가선화 공주님은 / 남 몰래 결혼하고/ 맛둥서방을 / 밤에 몰래 안고 가다.善化公主主隱 / 他密只嫁良置古 / 薯童房乙 / 夜矣卯乙抱遣去如이는 '서동요'라 불리는 향가이다. 어린아이들이 흔히 "얼레꼴레 아무개는 누구하고 어찌 어찌 했다네." 하며 남을 놀리면서 부르는 형식의 동요다. 이 기록은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어머니는 과부가 되어 서울의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녀는 못의 용과 정을 통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어릴 적 이름은 서동(薯童)이다. 재기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랏사람들이 서동(薯童)이라 불렀다.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가서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랐다. 이에 그는 동요를 지어서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그것을 부르게 했다.'이러한 기록을 그대로 믿어서 서동이가 마를 캐어서 생활했으며, 서라벌의 아이들에게도 마를 주면서 '서동요'를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를 캐는 것은 서동의 생업이 아니다서동이 살았던 곳은 서울 남쪽 못가라고 하였다. 이곳은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오금산성 아래 용샘 근처로 본다. '삼국유사'에서는 선화공주와 만나 백제로 온 뒤에 왕후가 준 금으로 생계를 도모하려 하니 서동이 크게 웃으면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공주가 "이것은 황금입니다. 한 평생 부를 이룰 만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어 서동이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처럼 많이 쌓아놓았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곳은 땅이름으로 보아도 오금산(五金山)임에 틀림이 없다. 아무런 까닭 없이 땅이름에 '금(金)'자를 넣을 리 없다. 무왕은 금마 사람임이며 오금산 아래에 살았다.그렇다면 익산에 마가 많은가? 익산 시내인 소라단(松內)에도 마가 자라고 있다. 물론 오금산성이나 미륵산에도 마가 자라고 있다. 설령 그렇더라도 오금산 자락은 그리 넓은 지역이 아니다. 오금산에서 마를 캐어 팔았다면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동안 캘 분량 밖에 나올 수가 없다.그렇다면 마를 캐서 팔았다는 얘기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것은 '서동'에서 '서(薯)'가 '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를 캐어서 팔았다는 얘기는 훨씬 뒷시대에 이 고장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백제는 망해 버린 나라이기 때문에 역사도 왜곡되었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서동(薯童)은 '맏동'으로 읽어야 한다'서동'을 향찰 표기로 보고 읽었으면 한다. 곧 '薯童'을 '서동'이 아니라 '맏동'으로 보면 어떨까?물론 이에 대한 선행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명렬의 논문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에 따르면, "양주동이 '서동(薯童)'은 '말자(末子)'의 뜻으로 '맏둥', '막둥', '마퉁'으로 속명 '말통대왕(末通大王)'이라 하여 서동이 곧 무왕이며, 서동요의 작가도 무왕으로 단정함에 따라, 그 뒤의 연구자들(조윤제, 김사엽, 김동욱, 조지훈, 이능우, 구자균, 정주동, 김기동, 김준영, 김종우, 정병욱, 이명선 등)도 모두 같은 학설을 내세워 국문학계의 일반적인 학설처럼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계에서도 역시 서동이 곧 무왕임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는 곧 학계의 정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글쓴이는 양주동 이래 정설로 되다시피 한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양주동의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자."'薯童'은 '맛둥' 또는 '마퉁'이다.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末子(말자)'의 뜻인 '맏둥'에서 생긴 전설이다. '맏둥'(막둥마퉁)이 '末子(말자)'의 原義(원의)임은 왕의 속명 '末通大王(말통대왕)'으로 알 수 있다."양주동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맏둥'으로 읽고, '막내', '막둥이'라는 뜻으로 풀이했는데, 이는 서동에서 '薯(서)'를 '마'라는 뜻으로 풀이했다면, 말통대왕에서는 '말(末)'을 '음(音)'이 아니라 '末(말)'의 뜻에 너무 집착한 풀이로 잘못된 해석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맏동'으로 읽고, 뜻도 '막내'가 아니라 '위대한 아이, 큰 아이, 우두머리 아이, 으뜸이 되는 아이'라고 본다.조선시대에 쓰인 자료를 보면, "??[宗, 棟, 義], ?[長子], ?[最], 마리[頭, 首, 髮]"가 나타난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늘날 '맏'으로 쓰는 말은 조선 초기에는 '?'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이 오늘날 '맏'으로 바뀌고, '맏'은 '말'과 통하는 말이다.이보다 앞선 기록인 삼국사기의 '訥祗麻立干(눌지마립간)'에 쓰인 '마립'도 '??'와 같은 뜻으로 '우두머리, 왕'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은 '최고, 가장, 위, 머리'의 뜻임을 알 수 있다. 또 낱말의 꼴은 먼저 '?'과 '??'가 일찍이 쓰이다가 '??'가 '마리'와 '머리'로 나뉘었으며, '?'은 오늘날엔 '맏'으로 모음이 바뀌었다고 본다. '맏누이, 맏딸, 맏며느리, 맏사위, 맏아들, 맏아이, 맏언니, 맏이, 맏형, 맏형수' 따위가 그 보기이다.이 '맏'이 다시 자음이 바뀌어 '말'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말'은 일부 명사의 앞에 붙어 '큰 것임'을 나타내는 접두사(接頭辭)가 된다. 왕개미를 '말개미', '큰 거머리'는 '말거머리', '큰 거미'는 '말거미', '큰 대추'는 '말대추', '큰 벌'은 '말벌', '큰 매미'는 '말매미', 그 밖에 '큰 잠자리'는 '말잠자리'가 된다. 곧 '?', '맏', '말'은 모두 같은 뜻을 지닌다.언어학적으로 볼 때 'ㄷ'과 'ㄹ'은 같은 혀끝소리[舌端音]로 서로 넘나드는 성질이 있다. '듣다[聽]'가 '들어, 들으니'로 되거나, '묻다[問]'가 '물어, 물었다'가 될 때는 'ㄷ'이 'ㄹ'로 바뀐다. 반면에 '바느질'과 '고리'가 합해지면 'ㄹ'이 'ㄷ'으로 바뀌어 '반짇고리'가 된다.▲ '맏동'은 위대한큰우두머리 아이를 뜻해따라서 서동(薯童)을 '맏동'으로 보면 '맏동'이는 '맏동'으로 바뀌고, '위대한 아이, 큰 아이, 우두머리 아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읽어야 할 중요한 실마리가 삼국유사에 있다. 앞에 인용한 글을 다시 보자."어머니는 과부가 되어 서울의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녀는 못의 용과 정을 통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어릴 적 이름은 맏동(薯童)이다."설화나 고대의 기록에서 용은 곧 왕과 통한다. 그렇기에 왕의 얼굴은 용안(龍顔), 왕의 자리는 용상(龍床)이 된다. 따라서 용과 관계를 맺어 낳았다면 맏동이는 왕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귀한 아이이고 영향력이 대단히 큰 아이였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보면 능히 그 아이는 '위대한 아이, 큰 아이,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로서 당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한 이름이라면 '맏동'이라고 불러도 결코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맏동이가 마를 캐어서 팔아 생업을 삼았다는 얘기는 '서(薯)'자에 연연해서 뒷날 지어낸 얘기라고 보아야 한다. 마를 캐어서 생업을 유지할 만큼 미천한 사람은 임금이 될 수 없다.맏동이는 오금산 아래 용샘 근처에서 살다가 백제의 무왕이 되어 600년부터 641년까지 통치하다가 죽어서 오금산 가까이에 있는 곳에 그의 비와 함께 묻혔다. 무왕의 무덤을 대왕릉, 왕비의 무덤을 소왕릉이라고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택회 문화전문시민기자(시조시인)

  • 기획
  • 이화정
  • 2011.10.31 23:02

안호영 변호사는

전북 진안군 동향면에서 출생한 안호영(46) 변호사는 동향중학교와 전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다.대학시절 전두환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동료와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사회현실에 눈을 뜬 그는 1987년 대의원대회 의장으로 선출돼 6월 민주항쟁의 한 복판에 선다.그 후 민주항쟁의 구심체가 되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영등포 지부에서 지역 활동을 한 뒤 군복무를 마치고 93년 제35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사법연수원(25기)을 나왔다.96년 전주 '백제법률사무소'에 몸을 담고 노동자와 서민을 변론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된 전북대 혁신대오 이적단체 사건 변론을 맡아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또 김형근 교사의 통일교육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도 무죄를 이끌어냈다.'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주전북지부장을 지낸 그는 전북겨레하나 후원회 이사장, 여성의 전화 후원이사장, 아파트공동체연구소장, 교육개혁 시민연대 운영위원 등 다양한 시민단체 활동과 후원을 통해 인권과 민주, 통일을 위한 작은 걸음들을 멈추지 않았다. 또 진안군 고문변호사와 한국농업경영인회 진안군연합회 고문변호사를 맡을 정도로 고향과 농촌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안 변호사는 특히 지난 전주시내버스 파업 때 노사 양측에 '사회적 합의안'을 제시해 주목을 받을 만큼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교사로 재직하는 부인(김명숙46) 사이에 세 자녀(예슬, 찬주, 형주)를 두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27 23:02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前 공동대표 안호영 변호사

10.26 서울시장 재보선을 계기로 안철수로 상징되는 '시민정치'의 파고가 예사롭지 않다.기존 정당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절망과 불신이 촉발한 '시민정치'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판도까지 뒤흔들 태세다.얼핏 수도권에서 먼저 분출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같은 시민의 제도권 진입 움직임은 사실 지방이 한 발 앞서 있다.학생운동권 출신의 인권변호사로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를 3년 넘게 맡아오다 최근 대표직을 사퇴한 안호영 변호사.그가 고심 끝에 지난 7월 정치에 대한 '참여'의 방식을 180도 바꾸기로 결심했다.안 변호사를 만나 시민운동 실천가로서의 삶과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에서의 활동, 그리고 새로운 '참여'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전북의 대표 시민단체인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공동대표 재임기간의 성과를 정리하신다면.지난 2008년 부임해 광우병 쇠고기반대 촛불문화제를 하면서 국민들의 의식과 생활정치의가능성을 확인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 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에서 밝힌 촛불은 제가 87년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있을 때 그 느낌이었습니다. 촛불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을 시민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아울러 시민교육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두 차례씩 문을 연 시민경제아카데미가 올해로 8회쨉니다. 시민과 소비자의 시각에서 경제정의와 지역경제 활성화의 방향과 대안을 마련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이를 통해 슈퍼마켓연합회와 전통시장 상인회와 연대해 대형마트와 SSM의 횡포를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한 일도 보람입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전에도 활발한 시민단체 활동을 해오셨죠.- 저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민중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었습니다. 당시 노동, 농민 등 계급계층운동으로 진로를 모색한 동지들이 많았지만 저는 법조인으로서 정의와 봉사를 고민해왔습니다.이에 따라 1996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민단체, 학생운동권 등의 요청과 주변 인권변호사들의 제안에 주저없이 달려갔습니다.그러다보니 남북평화교류와 협력, 여성의 권익신장, 아파트공동체 지원, 진보적인 여성단체 후원, 법률자문과 무료법률지원 등에 관심을 두게 됐고 그런 단체에서의 역할도 피할 수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3년 넘게 일했던 참여연대 공동대표로서 아쉬운 대목도 있을 텐데요.- 참여연대는 지방과 중앙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고 100% 재정자립을 위해 회원회비로 운영하고 부족한 재정은 주막과 후원의 밤을 통해 조달합니다. 주막은 전주시 3대 축제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로 일반 시민의 참여가 높습니다. 준비위원장을 맡아 후원 사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단기간에 자립도를 높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특히 단체의 핵심 역할을 맡은 상근활동가의 열정과 헌신에 걸맞게 임금과 처우를 챙겨주지 못한 부분이 무척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운명처럼 해왔던 시민운동의 연장선에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하시다가 그만두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실 참여연대는 각종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그 원칙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저는 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록 제가 단체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특히 저희 단체는 전북의 낡은 리더십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단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전북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공동대표를 그만 두고 제도권 정치에서 변화를 모색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물론 저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해 주변의 격려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지만 한 번 마음을 먹었으니 도전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대목인데요. 시민단체 경력을 제도권 진출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지적도 나올법한데요.- 결론적으로 말해 그럴 의도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사실 자기 밥벌이 하려고 시민단체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주민과 지역사회의 지지를 절대 받을 수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활동해 왔다고 자부합니다.변호사로 일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가려면 정당에 줄을 대서 기회가 되면 공천 받아 당선되면 되는데 저는 그런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누적된 이유가 뭐겠습니까. 단순히 인물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존 제도권 정치권이 시대정신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이는 정치권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이 나서서 풀어보고 대안을 찾으라는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입니다. 그게 제가 추구하는 목표점입니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이 주민들의 평가에 영향은 주겠지만 낡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해와 편견은 사양하겠습니다.▲ 지난 달 출범한 '전북@혁신과 통합'에서 정치개혁입법특별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도 그런 맥락과 닿아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북지역은 그동안 민주화운동에서도 앞장섰고 격동기에 올바로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선거에서도 민주와 진보를 선택했죠. 물론 2012년 정권교체와 민주진보정부 수립에 대한 열망도 높지만 지역사회에 높아지고 있는 지역 정치혁신에 대한 욕구가 더욱 넘쳐납니다.그 중에서도 민주당 일당구조로 고착된 전북에서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무능, 기득권 안주에 대한 비판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더구나 민노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이른바 소통합이 결렬되면서 민주당의 행보가 매우 중요한데,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전북에서의 민주당은 변화와 혁신에 미온적입니다. 그런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게 시민사회와 지역주민들의 바램 아니겠습니까.결국 혁신과 통합은 전북의 낡고 보수적인 리더십을 민주진보적인 리더십으로 바꾸고 민주당의 독점구조를 깨뜨릴 것입니다.▲ 결국 내년 총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굳혔는데 지역구는 정했습니까.- 진안무주장수임실은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이 지난 2009년 불출마를 선언한 곳입니다. 정 최고위원의 선언은 민주당을 변화혁신시켜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데 밀알이 되면서 새로운 리더에게 길을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같은 정 최고위원의 의지는 정권교체와 변화와 혁신,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 교체를 주장하는 제 뜻과도 일치합니다.특히 그동안 전북은 새만금성(城)에 갇혀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전북의 동북권인 진안,무주,장수,임실,남원,순창지역은 상대적으로 불균형으로 정체되어왔습니다.전북정치의 혁신과 변화가 도심에서 이루어지는 곳이 전주라면, 전북의 변화와 발전은 동북권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변화는 중심에서보다 변방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저는 변화와 혁신, 새로운 리더십, 전북정치의 변화를 위해 변방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입니다.

  • 기획
  • 김성중
  • 2011.10.27 23:02

"학생들 정서·협동심 함양"

주산초등 강현숙 교사(37)는 1500여명으로 추산되는 전북지역 음악줄넘기 지도교사 가운데서도 1세대로 꼽힌다. 음악줄넘기가 도내에 본격적으로 보급됐던 시기인 지난 2000년초 연수를 받은 이래 줄곧 학교현장에서 음악줄넘기 교육에 전념해왔다.이력도 화려하다. 지난 2004년에는 제33회 전국소년체전 식전행사에서 음악줄넘기 안무를 맡았고, 국무총리상과 문화관광부장관상도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북교육포털에 음악줄넘기 교육동영상을 올리는 등 교육콘텐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음악줄넘기 지도에 관한 한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다.지난 2000년 교편을 잡은 강 교사는 지난해부터는 주산초등을 음악줄넘기의 신천지로 발돋움시켰다.강 교사는 "지난해 부임당시 여느 시골 초등학교처럼 주산초등 학생들도 문화적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 상태였다"면서 "학생들이 음악줄넘기를 접한 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음악줄넘기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무척 장점이 많은 운동입니다. 체력증진은 물론 정서순화와 사회성 함양, 끈기와 협동심을 기르는 데에도 적지않은 도움을 줍니다. 음악줄넘기를 통해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졌고, 학부모들의 관심와 성원도 높아졌습니다""음악줄넘기 교육을 위해 방과후수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그는 "저학년의 경우 음악줄넘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고학년들에게는 고도의 줄넘기 동작을 통해 몸의 유연성과 정교한 움직임을 지속시키는 능력을 기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했다.그는 "옛말에 '한 우물만 파라'는 격언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물은 한번에 여러 개 파야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도 교사로, 음악줄넘기 메신저로, 부안교육지킴이로 1인3역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정진우
  • 2011.10.26 23:02

性평등 사회 구축위해 교육 강사 체계적 양성 절실

"지역사회의 여성들과 함께 여성인권향상과 성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쉼 없는 노력을 기울여 온 전주여성의전화가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동안 여성주의적 실천을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한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이제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창립 당시의 전주여성의전화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며, 현재 및 미래의 새로운 성 평등 역사 쓰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전주여성의전화 20주년 기념행사를 앞둔 김미숙 대표의 말이다.그 동안의 성과에 대해 김 대표는 "1999년 가정폭력상담소를 개소하여 상담활동과 교육 및 홍보활동을 통해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함으로써 평등하고 폭력 없는 가족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2002년까지는 가정폭력추방운동센타로, 2010년부터는 가정폭력상담소로 활동하면서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그 동안의 활동으로 가정폭력을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교육사업과 홍보사업이 강화되었고, 여성주의 상담을 통해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오는 폭력이라는 것을 알리고 내담자를 역량강화 하는 여성주의 상담 슈퍼비전 및 심화교육을 진행하여 전문성을 높여내는 성과를 거뒀다"며 "성폭력, 가정폭력, 다양성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교육을 통해 인권과 평등,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인권강사를 양성하여 인권교육의 효과를 높이고 대중화를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김 대표는 그러나 "여전히 가정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오는 폭력이라는 것을 알리고, 여성주의 상담 수퍼비전 및 상담심화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전문성과 상담원 성장을 위한 활동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들고 "성평등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폭력차별다양성 등에 대한 인권교육 강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이들 강사들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 속에서 여성주의 시각에 맞는 교육을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학교 및 지역시설에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 대표는 또 "일반 시민들의 폭력 감수성을 높이고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캠페인과 홍보가 필요하며,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소통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시도가 요구되고 있다"며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그는 "20년사 발간을 준비하면서 전주여성의전화 역사에 대한 기록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며 "그 동안 전주여성의전화 발자취를 더 담고자 하였으나, 자료의 부족으로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술회했다.김 대표는 "전주여성의전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2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30년, 50년, 100년의 역사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며 "앞으로 성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여전사들의 열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지혜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물결을 일으킬 것이다"고 전했다.

  • 기획
  • 전북일보
  • 2011.10.25 23:02

20. 창립 20주년 맞은 전주여성의전화

전주여성의전화는 오는 27일 오후 4시부터 전주웨딩캐슬에서 전주여성의전화 창립 20주년 기념행사 '여전사 스무살 꿈을 꾸다'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전주여성의전화가 지난 20년간 지역에서 활동한 역사와 성과를 살펴보고 전망을 모색해 보는 자리이다.여성폭력 상담과 법 제정운동 스무해전주여성의전화는 1989년 12월 「전북여성의전화 준비위원회」를 시작으로, '여성을 비인간화하는 모든 잘못된 관행과 통념, 불평등과 차별, 폭력의 문제 등을 바로잡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을 위해 1991년 창립되었다. 이후 전주여성의전화는 여성상담 및 교육 활동을 통해 회원들의 성장을 도모하고 지역사회에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그리고 여성운동의 성장과 여성폭력 관련 법제도적 개선에 힘입어 전주여성의전화 부설기관으로 성폭력상담소(1998년 ), 가정폭력상담소(1999년)와 여성의쉼터(1999년)를 개소하면서 제도권 안팎에서 여성폭력 근절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평등하고 평화로울 권리, 곧 여성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권리를 위해 전주여성의 전화는 상담, 교육, 홍보를 통한 의식향상운동, 여성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조사연구사업, 제도개선을 위한 법제정운동, 피해자인권지원운동 등의 여성폭력추방운동과 성평등 문화운동 활동을 주요하게 펼치며 지역사회에서 여성인권단체로서 자리매김해 왔다. 또한 인권확보를 위한 미디어운동, 재산권운동, 정책모니터링, 이주여성사업,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 정치이슈 연대 등의 여러 활동을 전개해 왔다.여성의전화 20년 활동과 성과는※ 가정폭력 상담 건수 - 1991년~2010년 상담건수 : 약22,817건전주여성의전화 2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 지난 8월 24일 좌담회 '길에서 길을 묻다'를 진행하였다. 조직에서 지역에서 전국적으로 여성인권을 위해 동시대 활동하고 있는 여성활동가들과 향후 20년을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전주여전의 동력과 연대의 힘을 발견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아래 내용은 그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사무처장은 "여성의전화는 한국사회에서 조심스러워서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가정폭력 중에서도 '아내 폭력'이라는 주제를 말하기 시작한 단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힘을 보여줬다"며 "'상담'과 '교육'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가지고 '아내폭력'이란 주제를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역모임을 꾸준히 이어왔다는 장점이 있다"고 전주여성의전화의 활동을 정리했다.또한 2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준비해 온 박숙희 사무국장은 "회원과 같이 했던 모든 활동이 활동하면서 가장 나를 행복하게 했고 사람을 만나면서 즐거움을 얻고 그 안에서 희망과 에너지를 찾게 되는 것 같다"며 "더불어 전국적인 연대망이 있어서 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면서 에너지를 찾게 되었습다"고 활동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전북여성단체연합 박영숙 상임대표는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상식이며 이상이다'라는 창립취지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동안 여성의 전화는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말 못할 사정에 놓여있는 폭력의 희생자들, 남편의 구타, 가까운 친족에 의한 성폭력, 강간 등 피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관습과 문화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던 많은 여성들에게 네 탓이 아님을, 더 나아가 그것은 곧 범죄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점을 활동의 큰 성과로 꼽았다.여전사 스무살 꿈을 꾸는 행사는성평등한 사회를 향한 전주여성의전화의 가치와 활동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지역사회의 모든 이들과 함께 스무해의 꿈과 앞으로의 희망을 나누는 20주년 기념행사가 오는 10월 27일 전주 웨딩캐슬에서 열릴 예정이다."여전사 스무살 꿈을 꾸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전주여성의전화 창립20주년 기념행사 1부는 전라북도 가정폭력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민관 네크워크 구축방안" 토론회가 4시부터 진행된다. 이어 2부는 스무살을 맞아 스무해의 꿈과 앞으로의 희망을 담은 영상과 회원 축하공연, 기념행사 및 환영만찬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이번 행사는 지역여성운동 의제를 발굴하고 여성주의를 실현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는 시민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으며 행사문의는 전주여성의전화(전화 287-7324)로 하면 된다. /태리명희 NGO 시민기자(전북여성단체연합 교육국장)

  • 기획
  • 김성중
  • 2011.10.25 23:02

'건강한 밥상' 노재석 대표

"지난해 10월 꾸러미 밥상이 첫발을 내디딘 이후 1년 동안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로컬푸드 확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조금이나마 실천했다고 자부합니다"완주군 로컬푸드 영농조합법인 '건강한 밥상'노재석 대표(53)는 "농민에게는 소득을, 도시민에게는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로컬푸드야 말로 우리 농업의 방향"이라면서 "무엇보다 전주완주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농산물의 품질을 중점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꾸러미 기본 품목인 계란은 유정란으로서 대형마트에서도 보기 드물다. 두부는 우리 콩으로 만들어져 고소한 맛이 일품이고 콩나물은 무농약 친환경이다. 제철 농산물은 시기별로 가장 좋은 제품을 납품받아 배송하고 있다"노 대표는 꾸러미의 품질을 강조하면서 "당초 연말 개장하려던 봉동읍의 통합물류센터가 내년 4월에나 문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산 지역경제순환센터내 저온저장 시설과 작업장은 60평으로 비좁아 꾸러미사업과 학교아동유치원 급식 등 로컬푸드사업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완주군내 13개 읍면의 마을공동체지역공동체가 꾸러미에 참여해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소비자는 생산자와 직거래하기 때문에 시중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이익"이라면서 "그동안 문제점을 꾸준히 보완해 왔으므로 앞으로는 생산유통소비가 더욱 착해지는, 누구나 찾고 싶은 완주 로컬푸드 꾸러미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 기획
  • 백기곤
  • 2011.10.25 23:02

1. 시행 1년, 선두주자 완주군 - '건강한 밥상' 창립

농업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변화는 거대 다국적 농기업이 지배하는 글로벌농식품 체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국적농기업은 WTO, FTA 등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관철시켜 각국의 농업을 피폐화시키고 있다.우리나라는 식량자급률 25%(쌀 제외시 5%), 작년 연간 쌀 소비량 72.8㎏으로 10년새 25% 감소, 시장개방 확대, 대형마트의 소비시장 독점, 지역농업의 소멸, 소농 퇴출, 농약비료 사용에 의한 환경파괴 가속, 음식식품에서의 다양성 실종, 식품안전 위협 등을 겪고 있다.글로벌푸드(Gloval Food) 본산지 미국은 공동체농업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또 선진국인 영국은 농민장터, 이탈리아는 학교급식, 일본은 지산지소 등을 통해 가족농의 확고한 존립기반과 농촌지역사회를 유지하면서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바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도농상생(都農相生)! 로컬푸드(Local Food)'를 추진하고 있다.전북일보는 도농상생의 길, 로컬푸드의 도내 현황 및 국내 대표적인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선진국 영국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로컬푸드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재배되고 가공된, 이동거리가 짧은 먹을거리다.기후토양 등 지역의 특성, 지역소비자의 요구에 맞게 생산되고 소비자가 생산자와 생산과정을 알고 있는 얼굴있는 먹을거리다. 지역의 정서는 물론 문화역사까지 반영돼 있다.가까운 곳에서 생산한,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가장 가까운 곳의 소비자가 먹는 로컬푸드를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내 자치단체가 완주군이다.전주시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특성도 있지만 완주군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떨어지는 농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로컬푸드에 주목하고 있다.완주군은 작년 5월 로컬푸드영농조합법인 '건강한 밥상'을 창립했고 9월엔 로컬푸드육성지원 조례를 제정했으며 10월에는 농산물과 식재료로 구성된 '꾸러미'의 배송을 시작했다.이처럼 완주군이 로컬푸드에 앞장서는 것은 그 효과 때문이다.완주군의 경우 생산자단체가 해당 농산물을 취급하는 비율이 대부분 10% 미만이다. 상추는 29%로 비교적 높지만 고추 10%, 생강 2%, 콩 1%에 불과하다. 로컬푸드로 생산과 유통의 간극을 해소시켜 농민의 소득을 높일 수 있다.또 완주군내 65세 이상 농가 비율은 34.6%(전국 평균 33.3%)로 이들은 판로가 마땅치 않아 생산 농산물을 68% 자가 소비한다. 이같은 고령농소농에 대한 새로운 대책이 로컬푸드다.완주군 로컬푸드는 군내 생산자에게는 유통단계를 축소시켜 높은 소득을, 완주전주지역 소비자에게는 친환경 안전한 농산물을 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해 상생의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농산물의 기획생산과 연중공급을 위해 완주군은 농촌노인 두레농장, 파워빌리지 등 체험마을, 로컬푸드사업단과 자활사업단, 품목별 작목반 등을 운영하고 있다.시장지향형 상업농은 △규모화 농가상업농 △단작 중심 대농 △기존 유통시장 대응력 강화 △규모화규격화브랜드화 △생산자단체 순기능 향상 등을 특징으로 농촌실정과 맞지 않지만, 로컬푸드는 △소규모 가족농고령농 △다품목 소량생산 중소농 △새로운 직거래 시장 개척 △품목별 기획생산 △품질기준과 신뢰관계 확대 등 농촌현실을 잘 반영해 완주군내 3000농가가 월 100만원 소득을 거둘 수 있다.영농조합법인 '건강한 밥상(대표 노재석)'이 로컬푸드사업으로 작년 10월부터 펼치고 있는 '꾸러미'는 회원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소비자에게 직접 배송되는 꾸러미는 계란(유정란), 콩나물(250g), 두부 1모(550g)가 기본품목으로 제공되면서 높은 품질을 자랑하고 있고 제철 농산물과 채소곡류반찬류 등 10가지 안팎으로 구성된다.10월 14일에 공급된 꾸러미는 유정란콩나물두부와 올기쌀감자깻잎김부각모듬쌈채소느타리버섯 등으로 구성돼 있고 생산지와 생산자가 안내돼 있다.연간 52주의 공급계획이 수립돼 농식품 100여가지가 포함된다. 일반 가정이 1년 동안 맛보는 농산물은 50가지 가량이다. 기본꾸러미는 월 4회 10만원이고, 격주 월 2회(5만원)도 가능하다. 현재 회원수는 2500명이며 2013년 전주완주 전체가구의 20%인 4만가구를 꾸러미 회원으로 확보함으로써 연간 480억(완주 총 생산액의 16%)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임정엽 완주군수는 "로컬푸드는 스타농대농에 대한 지원 보다는 우리 농촌의 현실인 소농고령농에 대한 지원효과가 크다. 지역의 자금이 지역에서 순환한다"면서 "완주군의 로컬푸드사업은 농촌이 도시 못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한편 도내에서는 완주군외에도 김제시진안군 등이 로컬푸드 추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 기획
  • 백기곤
  • 2011.10.25 23:02

김삼룡 前 총재는

김삼룡 전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는 따라붙는 애칭이 많다. 대학 총장, 향토사학가, 애향운동가 등 수식어가 유난하다. "무엇으로 불리우고 싶냐"는 물음에 "그때그때 상황에 맡게 불러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최선과 열정을 쏟아온 인생역정의 배려였다.1925년 정읍시 북면 화해리에서 3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나 할머니의 선업(善業)으로 오늘의 위치에 이르게 됐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대종사(박중빈. 1891~1943)와 후계 종법사 정산종사(송규. 1900~1962)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할머니 당대의 집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 인연으로 14세에 익산 중앙총부로 출가했으며, 그 5년만에 대종사가 열반에 드는 슬픔과 허탈에 빠졌다. 인생의 본질에 눈 뜨는 시기였다.해방 다음해 설립된 유일학림(원광대학교 전신)의 전문부 1기생으로 3년 교육과정을 마치고 군산교당 교무를 거쳐 원광대에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그 학교에 전임강사로 돌아온 것은 35세 되던 1959년이었다. 세상일은 수레바퀴처럼 처음은 힘들어도 일단 구르면 탄력이 붙는 걸까. 학생처장 등을 맡으면서 대학면모를 다졌고 1971년 종합대학 승격 후에는 교무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1973년은 또 하나의 운명적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초대소장을 맡게 된 것이다. 고고학은 전공이나 강의와 관련이 없었던 비교적 생소한 분야였다. 하지만 지역에는 마한 혹은 백제와 관련된 유적과 이를 뒷받침할 기록, 그리고 다양한 구비설이 남아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익산이 백제의 수도인가, 미륵사는 이와 관련해 창건되었는지 등은 연구 과제로 내려왔다. 그 과정에 황수영 이병도 전영래 이병기 등 학자들이 뜻을 모았다.무던하게 쫓아다닌 결과 1984년 59세로 일본 쯔꾸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그러던 중 박길진 초대학장의 열반으로 1986년 총장직에 올랐다. 하나의 인연이 다음으로 이어지면서 널리 뻗어가는 모양새였다. 그 다음해는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를 맡게 된다. 진기풍이존익이치백 부총재와 방영선 사무총장이 오랫동안 함께 일을 꾸렸다. 1990년대에 만든 '애향장학금'의 수혜대상 1호는 서울대 재학생 유성엽(현 국회의원)에게 돌아갔다.고희가 된 1994년 8년간의 총장직을 마감하고, 2003년에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직을, 2006년에는 33년간 몸담아 온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직을 차례로 그만두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무궁화장, 전북대상(학술부문), 전라북도 문화상, 전라북도 어른상 등은 이런 일련의 활동 평가다. 파고들었던 일들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자서전에 담아 내년에 발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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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동성
  • 2011.10.2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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