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에서 우러나는 기교적인 소리
일제강점기 동편제 판소리를 대표하는 사람은 송만갑이었다. 그러나 송만갑은 아버지인 송우룡으로부터 집안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대중의 요구를 따르는 판소리를 한다고 죽임을 당할 뻔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동편제 판소리의 대가인 유성준에 비하면 훨씬 동편제 판소리의 규범에 충실한 소리꾼이었다.
전형적인 동편제 판소리는 도끼로 장작 패듯 한다고 할 정도로 전력을 다하는 목소리를 앞세우는 치열한 예술혼을 담고 있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기교를 앞세우는 서편제 판소리에 비해 전승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송만갑이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명창이었음에도 그의 ‘춘향가’와 ‘심청가’가 전승에서 탈락한 것은 이 때문이다.
송만갑제 판소리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는 소리는 ‘적벽가’이다. 송만갑의 ‘적벽가’는 제자인 박봉래와 박봉래의 동생인 박봉술을 통해 현대까지 이어졌는데, 박봉술은 궂은 목에도 불구하고 ‘적벽가’의 최고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세력이 더 강했던 유성준의 ‘적벽가’가 임방울과 정광수를 끝으로 전승에서 사라져버린 것에 비추어 보면, 박봉술이 전승한 ‘송만갑제 적벽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봉술의 ‘적벽가’는 송순섭, 김일구, 안숙선, 박송희 등에게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김일구는 일찍이 박봉술로부터 ‘적벽가’를 이어받아 자신의 장기로 삼은 사람이다. 박봉술은 대명창이기는 했지만 목이 부러져(성대를 심하게 상해서) 고음을 힘차게 내지 못하고, 가성으로 가늘게 뽑아 소리를 했다. 그러나 김일구는 본래 목이 예쁜 데다가 공대일, 장월중선 등 서편제 판소리의 영향 아래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기교를 구사하는 데 능하다.
이번에 ‘적벽가’를 부를 김명숙은 김일구로부터 ‘적벽가’를 배운 사람이다. 또 염금향과 성우향으로부터 성음 중심의 판소리라고 하는 보성소리를 먼저 배운 사람이다. 그러므로 김명숙은 박봉술의 ‘적벽가’중에서도 가장 기교적인 ‘적벽가’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명숙은 나이에 비해 늦게 이름을 얻은 명창이다. 목이 다소 거칠어서 이를 가꾸고 다스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랜 연륜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이를 담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판소리는 연륜의 예술이다. 판소리에는 인생의 온갖 굴곡이 다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로서는 다 이해 못할 인생의 깊은 맛은 연륜이 쌓여야 비로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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