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람들 먹여 살릴 기술산업 주목하라"
"유치원 때였는데 아버님이 장남감을 사다주셨어요. 태엽을 감으면 돌아가는 비행 장난감이었죠. 지금도 그 모양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때부터 비행기를 좋아했어요. 내 전공이 항공인데, 어린 시절 이후 줄곧 다른 생각할 여지가 없었지요. 대학 다닐 때는 교수님이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서 나사 연구원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주가 고향인 박철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과 초빙교수(76)는 정말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 됐다. 나사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다 합쳐서 37년. 아폴로 우주선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던 그는 비행기를 직접 조종해 하늘을 날기도 하는 파일럿이기도 하다.
"창공을 날때의 그 기분은 말할 것도 없어요."철저하게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았던 삶. 그래서 항공을 전공했고, 손꼽히는 세계적인 항공우주 전문가가 된 그는 전북의 창조적인 미래를 위해 항공우주산업에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 박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두시간동안의 인터뷰는 다소 낯선 영역인 항공우주산업과 개인적 삶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 금세 지나갔다.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그날 올려다본 하늘은 더욱 특별해보였다.
▲ 해외에서 보낸 시간이 많으신데, 특히 중앙집중화 현상이 심한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원래 지방색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BMW 본사가 있는 뮌헨에 가면 시민들이 전부 BMW만 탑니다. 벤츠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에 가면 또 벤츠만 타지요. 저는 미국에 살면서 BMW를 탔는데, 슈투트가르트의 초청강연에서 '무슨 차를 몰고 다니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BMW야 말로 제일 빠르고 좋은 차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객석에서 야유를 보내는거예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에서는 그런말을 하면 안되는 거였어요. 그만큼 자기고장에서 생산하는 차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겁니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지역에서 성장한 사업들이 반 이상은 될겁니다. 자기 자신, 그 다음은 자기 가족, 그게 더 커지면 자기 친구, 자기 도시가 되는 겁니다. 지역은 곧 자기 자신의 연장이예요."
▲ 전주에 사는 사람들도 전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살았는데, 그 곳에는 실리콘밸리대로의 강력한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그곳이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곳, 우주에서 제일 좋은곳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샌프란시스코가 우주의 중심지고, 모든 우주가 자기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 샌프란시스코를 만들고 정신까지 만들어 내고 있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정신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면서 소중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간다는 겁니다.
자기 자식을 예뻐해야 남도 예뻐하는 것처럼,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사랑하면 그것이 커져 결국 애국심이 되는 것입니다."
▲ 지방색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셨지만 지역감정, 지역격차가 심한 한국 사회에 적용한다면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전라북도는 어떤가요.
"내가 전주를 떠난 것이 1950년대이니 지금의 전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전북은 '동학란'에 의한 피해의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경기전에서 서쪽으로 가면 '수비대청'이란 곳이 있었는데, 어릴 때 부모님은 그 곳으로는 절대 놀러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어느날 몰래 가봤는데, 아름다운 곳인데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학란' 당시 정부군의 병영이 있던 곳으로 동학군 장교들을 잡아다 교수(絞首)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100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만큼 피해의식이 깊었던 것이겠지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밝은 방향으로 지역성을 가져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제 자신부터가 한국을 떠나 전 세계에서 살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아 달라졌어요. 자신의 고향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얼마전에 전라북도 출신 인사가 국내 유수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저 기금을 전북의 대학에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군요.(웃음)"
▲ 지금 전북에서는 새만금이 가장 큰 화두입니다. 새만금의 활용도를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새만금에 가보진 않았지만, 저도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 계획을 세웠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노무현 정부때 전북의 기술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전북 출신 과학자 스무명이 모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논의했던 것 중 하나가 새만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였습니다. 방조제 완공 직후 20년 동안 제대로 땅을 활용하지 못하는데, 이 기간 동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거였죠."
▲ 전북출신 과학자들이 스무명이나 모인 것도 그렇고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다니 매우 흥미롭습니다.
"여러가지 대안 중의 하나가 항공운용이었습니다. 항공하면 우리는 여객기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항공의 3분의 2가 군사적 목적입니다. 군사 항공과 관련해 비공개로 실험할 땅이 필요한데, 새만금이 적합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테스트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만드는 비용과 똑같거나 오히려 더 들어가는,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었으니까요. 테스트를 위해 고용되는 사람들은 물론, 항공유지산업도 함께 발생하게 되거든요.
수소에너지와 관련해서도 인구밀도가 없는 새만금이야말로 수소 창고를 설치하기에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수소가 위험하다고들 하는데, 사실 100m씩만 거리를 두면 안전합니다. 그래서 넓은 땅이 필요한데, 새만금처럼 넓고 싼 땅이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 보니 직접 투자자들보다는 나쁘게 이야기하면 땅장사하는 사람들이 벌써 새만금을 차지해 버린 것 같더군요."
▲ 그렇다면 당시 논의됐던 것들은 전부 수포로 돌아간 건가요.
"아닙니다. 당시 논의했던 대안 중 딱 하나 남은 것이 바로 플라즈마(plasma)센터입니다. 플라즈마는 세계에서는 첨단분야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첨단입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기술이죠.
전북 출신 과학자들이 모여서 전북에 무엇을 유치해야 하나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사항이 '한국이 무엇을 수입하는가'였습니다. 그런데 40%가 고급 자동차에 쓰이는 브레이크의 부품이나 자동차 엔진의 일부분, 휴대전화의 부품 등 소재 부품이었습니다. 자세히 봤더니 그것들이 전부 플라즈마로 만든 것이더군요.
지금은 정부가 플라즈마로 재료를 만드는 연구과제 보고서를 100건 이상 냈고, 이 중 몇 개는 산업화됐으며 각 대학도 플라즈마를 연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플라즈마 분야는 20년 전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됐지만 아직도 부족합니다.
(박교수는 국내 최초, 세계 다섯 번째로 전라북도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온 플라즈마 응용연구센터' 구축을 돕고 있다. 전북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고온 플라즈마 발생장치 개발이 핵심이다.)"
▲ 전라북도가 미래지향적인 기술을 주목한 셈인데, 그런점에서 미래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크겠군요.
"플라즈마 장치는 원래 항공우주산업에서 나온 겁니다. 특히 우주산업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동안 우리나라가 우주산업에 주력하지 않아서 아직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거죠. 전 세계 진짜 기술은 우주 산업을 하는 나라가 쥐고 있습니다. 미국만해도 항공우주산업을 통해 소위 '기술제국주의'를 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플라즈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겁니다. 전라북도에서 플라즈마에 도전하고 나선 것은 미국에서 수출금지한 것을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플라즈마는 사실 적어도 국내 상황에서는 창조적 산업입니다.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제 시작했으니 조금씩 전진할 것입니다."
▲ 그 성과를 조급하게 얻으려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제안을 하면 경제적 타당성부터 먼저 따집니다. 세계 시장이 얼마나 큰 지, 관련 회사가 몇 개가 있으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를 묻습니다. 그 다음에서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지를 묻죠. 하지만 이미 데이터가 나와있는 산업들은 끝난 기술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독창기술은 보조하지 않고 모방기술만 보조를 합니다. 우리는 모방국가로서는 세계 1위입니다. 독창 아니고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어요."
▲ 전라북도가 우리나라 플라즈마의 중심지가 되려면 자치단체나 지역 대학, 기업 등이 긴밀하게 연계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가장 급한 것은 우선 센터 자체가 잘 돼야 합니다. 센터가 구축되고 나면 플라즈마 장치를 이용해 장사를 하는 일반 회사들이 생겨나고, 지역 대학에서는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치단체나 지역 대학, 기업, 주민들이 끝까지 힘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플라즈마가 순조롭게 될 지 아직 모르지만, 분명한 건 독창기술이라는 겁니다. 전라북도도 전 세계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북도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중간, 박 교수가 가장 힘있게 강조한 대목이 있다.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수소 에너지 개발'연구작업이다. "석유, 원자력, 태양 발전, 이것을 쓰면 모두 필요 없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생산방법을 발견한 거죠. 이걸로 모든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박 교수는 "연구가 잘만 되면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지 공급국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침 8시면 카이스트 기계과학동 2층 연구실로 출근해 밤 9시30분까지 연구만 한다는 박교수가 중간에 한 눈 파는 것이라고는 아침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하는 수영이 전부다. 그 흔한 골프도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한다는 그에게 '가장 즐거운 일'을 물었다. 곧바로 돌아온 답은 '연구'. "지식을 얻는 것 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겠느냐"고 했다.
"교수님의 지식을 고향 전라북도를 위해 써주시면 좋겠다"고 하자, 그는 "그럼요. 노력하잖아요"라며 웃었다.
빽빽한 그의 책꽂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북'이라고 써있는 파일 폴더가 눈에 들어왔다.
◆ 박철 카이스트 교수는
박철 교수는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도 채 되기 전에 전주로 왔다. 전라북도청 광공과장이었던 아버지는 경성고등공업학교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당시 전라북도 최고 기술자였다. 줄곧 전주에서 성장해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누군가 고향을 물어오면 당연히 "전주"라고 말한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공군에 들어가 공군장교가 됐다. 공군사관학교에서 교관 생활을 하는 동안 석사 학위를 땄으며, 제대하자마자 유학을 떠나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나사에는 1964년에 들어가 1995년 말까지 정부 관리자격으로 일했다. '레드 카펫 트리트먼트(red carpet treatment)'. 공항에서부터 귀빈 대접을 받으며 미국에 온 그는 당시 나사 안의 40명 과학자 중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였다.
이후 일본 도호쿠대학에서 재직하다 다시 나사로 돌아가 5년 동안 계약직원으로 일했다. 그 이후 카이스트에 2년 계약의 초빙교수로 왔지만 계속 계약기간을 연장, 지금으로서는 10년을 채워야 할 상황이다.
지금 나사에서는 그에게 다시 나사를 새롭게 설계하자며 손을 내밀고 있다. 박교수는 "미국이 우주로 간 목적은 이미 다 달성됐고, 미국이 항공우주를 한다고 한다면 새로운 목적이 있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초창기 나사 사람들 중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웃었다. 그래서 박교수는 제자들이 박사과정을 마치는 3년 후, 다시 나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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