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디자인 1세대 김윤환 전 원광대 교수 “디자인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것”
전북디자인센터(센터장 남궁재학)에 낭보가 찾아들었다. 전북지역 디자인 발전과 인재 양성에 밑거름이 될 소중한 서적 300여권이 기증된 것. 우리나라 디자인 관련 산업과 교육이 태동하던 시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망라하는 책들을 기증한 이는 김윤환 전 원광대학교 교수(80)다. 우리나라 디자인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그는 평생 디자인을 공부하고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소장해 온 자신의 책들을 센터에 기증했다. 갈수록 새로운 책들이 발간되고 있고 서고나 도서관에 가서 직접 책을 찾아 복사해서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디자인 공부를 하는 후배들이 지나간 역사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알고 되새기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번 기증에는 김 전 교수 재직 당시 제자였던 이점윤 전북디자인센터 책임연구원이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역 디자인산업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선뜻 책을 기증한 김윤환 전 교수와 그의 제자인 이점윤 책임연구원, 남궁재학 전북디자인센터장을 만나 이번 기증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한국 디자인 태동의 기록을 후세에 전하다 “요즘 제가 모든 걸 정리하고 있어요. 그러던 차에 제자가 좋은 기회를 소개해 줬지요. 시대가 변해 예전에 저희 아날로그 세대가 보던 책들이 요즘 세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걱정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도입돼 통용된 것은 불과 50여년 전이다. 1970년대를 전후해 국가 차원의 수출과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알려졌고, 단순히 외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을 넘어 수요자 중심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해 다양한 분야의 제품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970년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현 한국디자인진흥원)가 출범했다. 김 전 교수는 그런 흐름이 시작되던 단계부터 디자인을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쳐 온 이른바 우리나라 디자인 1세대다. 지난 30여년간 원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07년 정년 퇴임한 그가 이번에 기증한 책들은 월간 디자인 창간호(1976년)와 20호(1978년), 종합디자인 학술·논평지 월간 코스마, AXIS 1998년 1·2월호, 다양한 논문집과 워크북 등 전부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어렵게 구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재로 활용했던 소장본이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디자인 관련 책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구할 수 있더라도 고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어를 배워가며 일본어 원서로 공부를 했다. 이번에 기증한 책들의 대부분을 일본어 원서가 차지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디자인계 성전 ‘바우하우스’ 기증된 300여권의 책 중 그는 단연 ‘바우하우스’를 최고로 꼽았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디자인스쿨로, 그 이름을 딴 책 ‘바우하우스(김윤수 옮김)’는 우리나라 디자인계에서는 성전처럼 여겨지는 책이다. 독일 바우하우스는 예술적 창작과 공학적 기술의 통합을 목표로 삼았고 이를 통해 현대 디자인이 태동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히틀러의 폭정에 의해 문을 닫았다. 당시 바우하우스 교수진들은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화가와 조각가, 교육자 등이었는데, 이들이 미국으로 넘어가 히틀러로 인해 미처 하지 못했던 작품 활동을 하며 미국 현재 건축의 기초를 다지며 꿈을 펼쳤다. 이후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화재 중 가장 큰 규모였던 1871년 시카고 대화재는 재건을 통해 시카고가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중심지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됐고, 이 과정에서 디자인이 새로운 시카고를 만들어 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바우하우스는 그런 역사가 담겨 있는 책”이라며 “많은 이들이 내일을 위한 디자인의 출발을 바우하우스에서부터 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북지역 디자인 발전 위한 소중한 밑거름 전북디자인센터는 이번에 기증받은 책들을 전북지역 디자인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해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기증받은 책들을 정리해 센터 사무실 내 서고를 만들고 책을 비치해 센터 직원 누구나 필요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한 상태다. 남궁재학 센터장은 “전북디자인센터는 디자인 융합을 통한 디자인산업 활성화 및 지역산업 고도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그간 교육 현장에서 인재 양성에 깊은 뜻을 두고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은 물론 전북지역의 디자인 인재 양성에 밑거름이 될 귀중한 도서와 자료를 기증해 주신 김 전 교수님의 뜻에 따라 기증한 도서들이 값지게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점윤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누구나 인터넷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검색 엔진이 수익 위주의 알고리즘으로 형성돼 있어 무분별한 엑세스가 이뤄지기 쉽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번에 기증해 주신 책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김윤환 전 교수는 우리나라 디자인 1세대인 김윤환 전 교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 및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가구디자인 전공)을 졸업했다. 이후 일본 경도 시립예술대학 객원 연구교수,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장, 한국공예가회·홍림회·전북공예가회·전북산업디자인협회 회원, 대한민국 공예대전 심사위원, 청주 국제 공예 비엔날레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 산업디자인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또 목공예 작가로서 1982년(전북예술회관)과 1992년(일본 교토 마로니아 화랑), 1993년(일본 교토예술대학 화랑), 2006년(원광대학교 미술관)에 개인전을 열었으며 13차례의 초대전과 10차례의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30년 넘게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는 등 전북 미술의 기틀을 다지는 데 힘쓰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미술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난 2018년에는 (재)목정문화재단에서 전북지역 향토문화 진흥을 위해 공헌한 문화예술인에게 수여하는 목정문화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