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2 03:52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수필
일반기사

웃음꽃

   
▲ 박갑순
 

출근길에 노란 버스를 만났다. 여자 운전자가 저만큼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 차를 멈춘다. 어서 건너가라고 손짓하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한 송이 꽃 같다. 아이가 총총 걸어서 노란 버스를 탄다. 아이를 태우고 병아리처럼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어느새 입가에 꽃향기 퍼지듯 노란 웃음꽃이 피어났다.

 

최근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하는 일이 잦다. 정안 휴게소에는 통기타를 치면서 맑은 목소리로 7080세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무명 가수가 있다. 무대 앞에는 백혈병 소아 암 어린이 돕기 모금함이 놓여 있다. 먹고 싶은 호두과자 한 봉지 값을 거기 넣고 싶은데 용기가 없다. 모금함에 다가가는 발길이 많다면 자연스레 그 무리에 휩쓸려 맘을 담을 수 있으련만. 호두과자와 아메리카노를 든 많은 손들이 무심히 그 앞을 지나친다. 오늘도 용기 없는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차에 올라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용기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 옆으로 스치는 풍경도 시큰둥하다. 고개를 흔들어 기분을 바꾸려 애를 쓰다 한 송이 꽃을 발견한다. 달리는 버스 안인데도 그 향기가 코에 스미는 듯하다. 입술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아침에 만난 그 웃음꽃이다. 그녀에게서 받은 해맑은 웃음. 그녀는 내게 웃음꽃을 선사했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속의 나는 천편일률적으로 웃고 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보조개에 대한 설명을 하던 담임선생님께서 나의 보조개를 찾아주셨다. 웃을 때만 살짝 보이는 볼우물. 그 후로 나는 많이 웃는 사람이 되었다. 내 웃는 모습도 보는 사람에게 웃음꽃 선물이 되면 좋으련만.

 

길을 가다 만난 외국인들은 눈이 마주칠 때 하나같이 웃음을 선사한다. 누구인지 몰라도 그냥 반갑게 웃어준다. 구레나룻이 멋스럽게 난 노신사건, 뱃살이 퉁퉁한 젊은 여성이건 그들은 몸에 밴 자연스런 웃음꽃을 나눈다. 그들을 대하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거울처럼 마주보며 웃으니 어색할 것도 없다.

 

태교할 때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고전이다. 이제는 웃음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어떨까.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웃는 것을 익힌다면 화난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스치는 이웃을 마주하지 않으리라.

 

아기는 태어나 3개월이면 눈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엄마의 웃음이 망막에 잡히면 아기는 웃음으로 반응한다. 찡그린 얼굴을 보고는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갓난아기도 따라할 수 있는 쉽고 편한 웃음을 아끼고 사는 우리들은 아닌지.

 

최근엔 웃음이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기재로도 사용된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니 웃을 일이 생긴다고도 한다. 아무리 사소한 물품도 자본 없이는 생산할 수 없지만 웃음은 자본 안 들이고 만들 수 있을 뿐더러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도 예외다. 무수히 만들어도 과잉공급이라 탓하지 않고, 설령 소비하지 않아도 적채되지 않는다. 무한정 생산해도, 아낌없이 소비해도 되는 것이 웃음이다.

 

많은 꽃들 중 웃음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소심한 성격 탓에 선뜻 모금함에 다가가지 못한 내겐 웃음꽃이 있다. 무례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만나도, 무단 횡단하는 사람 때문에 급정거를 해야 할 때도 노란 버스의 그 운전자처럼 먼저 웃어 주리라. 초록 나무들로 가득한 저 산처럼 온 세상이 웃음꽃 만발하면 좋겠다.

 

△수필가 박갑순씨는 1987년 〈자유문학에 시, 2004년 〈수필과비평〉에 수필 등단. 현재 월간 〈소년문학〉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