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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승 | ||
5월은 삼라만상이 은총을 받는 시절이리라. 푸르른 이파리가 산야를 덮고 햇살이 다사롭기 그지없다. 활기찬 생명의 물결을 보면 눈이 황홀하다. 이런 계절에는 새들조차 조물주의 손길을 알아차리고 알을 낳고 기르기에 여념이 없다.
오늘은 아내랑 공원의 숲길을 소요하다가 느티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는다. 덕진공원의 연꽃 단지에 연잎이 수면 위에 동동 떠 있다. 더러 대궁을 밀어 올려서 봉오리가 봉곳하게 피어오른 것도 있다.
연잎 사이로 논병아리 두 마리가 노닐고 있다. 머리에 빨간 리본을 단 어미 논병아리가 앙증스럽게 귀여운 어린 새끼를 데리고. 어미가 먼저 벌레를 한 마리 잡아서 새끼의 입에 넣어준다. 새끼가 부리를 벌리고 잽싸게 받아먹는다. 이번에는 먹이를 부리로 가리키며 스스로 잡아먹게 한다. 그러더니 날개로 새끼를 안은 채 조속조속 졸고 있다. 이윽고 연잎을 밟고 미끄럼을 타는가 하면 물속으로 들어가 둘이서 물바퀴를 휘저으며 유영을 한다. 먹여주고 다독이며 혼자서 살아가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려니.
잠시 눈길을 돌려 건너편의 소나무 단지에 시선이 머문다. 백로들이 흰 구름으로 덮여 있다. 다른 계절이 아니면 둥지를 떠나 먹이를 찾아 모두 떠나곤 했다. 아마 알을 부화하거나 새끼를 기르려는 정성을 다 하는 것이려니. 암수가 일심동체로 저들의 혈육을 애정으로 지키는 게 아닌가. 집단으로 소나무 위에 둥지를 튼 무수한 백로들이 단 한 마리도 신성한 의식에서 이탈하지 않은 채.
저들은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거나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햇살이 따가우면 날개를 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배설물이 넘치면 물어다 청소를 하며 잠자리를 돌본다.
페리칸의 수컷은 엄마 새가 새끼들을 지나치게 돌보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 제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먹여서 살린다고 한다. 세끼들이 살아서 자랄 때까지 계속하여 먹이다가, 자기는 한 입도 먹지 않고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병아리를 데리고 마당에서 놀던 암탉은 독수리가 달려들면 새끼들을 모두 품고 제 살이 뜯겨도 놓아주지 않는다. 까치도 개구쟁이들이 제 알을 훔쳐 가면 머리를 쪼아가며 울부짖는다. 이 새들의 엄마와 아빠의 모정이나 부정은 살신성인의 경지라 할만하다.
새들이 저토록 새끼들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치는 사랑을 본능이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을까. 이는 인간중심의 경솔한 오만이다. 새들도 인간들이 가지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어 가지고 살아간다. 저들의 단순하고 탐욕을 모르는 삶을 보면 장자나 노자가 대수로울 게 없다.
새들의 가족과 생활을 엿보면서 나조차 반성문을 쓰고 싶다. 우선 내가 아버지로서 다섯 남매를 기른 뒤안길을 헤아린다. 과연 새들에게 비하여 부끄러운 단면은 없는가.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 많다.
이로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새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사랑의 손길도 보내야 한다. 인지가 앞선다고 편리한 문명을 좇다가 이 지구를 병이 들게 한 죄책도 반성해아 한다. 인간들의 오만과 이기심 때문에 지구를 떠나는 가족들이 무수하다. 날마다 새와 짐승과 나무와 꽃들이 사라져 가는 현상은 가슴이 아프다. 지구의 사막화가 내다보이는 불안한 현실을 개탄하고 자연의 순량한 새들에게 외경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오늘은 새들의 사랑과 평화를 배우며 미소를 짓는다.
△ 수필가 이종승씨는 1993년 〈수필과비평〉, 1995년〈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 〈새벽이 열리는 집〉 〈정갈한 신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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