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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생각 노래

▲ 양규태

고향생각이 간절하다.

 

나이 탓일까?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시냇물소리가 노래처럼 아련히 들려온다. 눈감으면 금방 조르르 달려오는 듯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던 앞동산이 보고 싶다.

 

어찌 되었을꼬. 마을 뒷산자락 밤나무 밭은 이 맘 때가 되면 알밤 궁구르는 소리가 새벽잠을 깨웠었는데, 지금도 그런지. 내 친구 몇이나 살아있을까. 배가 불룩하게 나와서 ‘짱구’라고 불렀던 친구 살았으면 내 동갑내기이니 노객이 되었을 터인즉. 그 친구 추석날이 면 머루 다래 한 옴큼 따서 담 넘어 내 집으로 훌쩍 던져주는 인정이 있었는데. 부자 집 큰아들은 지금도 미륵일까. 생긴 것이 미륵처럼 덕이 있게 보여서 ‘미륵’이라 놀렸었는데. 그 후덕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보고 싶다.

 

문득 떠오르는 동요 한 토막.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만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재명 선생의 노래다.

 

고향 초등학교 시절 담님 선생으로부터 배운 노래다. 낡은 풍금을 앞에 놓고 발로 구르시면서 목청을 높여 가르쳐 주셨다. 가르치시다가 곡조가 틀리면 대나무 회초리로 풍금 뚜껑을 ‘탕탕’ 두들기시면서 ‘그것도 따라 못하냐? 네놈들 살다가 고향 떠나면 부르는 노래이거늘’ 하시면서 호통을 하시었던 그 모습이 왜 이리도 새록새록 다시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 뒤로 느닷없이 동란이 일어나 고향을 떠나왔다. 선생님도 소식이 끊겼고 살다 보니 고향을 잊고 지내면서도 문득 고향이 그리울 때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이 노래를 혼자서 불렀다.

 

추석이 돌아오면 잊었던 고향이 눈앞으로 달려온다. 고향의 명절은 유난했었다. 가난 했던 시절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소쿠리를 옆에 끼고 들녘으로 나가 덜 익은 벼를 손으로 훑어다가 솥에 익혔다. 익힌 벼를 하루 쯤 햇볕에 말렸다. 말린 벼를 절구에 넣고 찧었다. 햅쌀을 작만 하는 수순이었다. 마련된 쌀은 조상님의 제사 쌀로 남기고 한 옴큼 손에 가만히 쥐어 주시는 어머니는 ‘아가. 먹어봐라 아버지의 땀이란다.’ 하시었다. 고소한 햅쌀은 사탕보다도 더 맛이 있었고 꿀물보다도 더 달콤했다.

 

어머니는 신이 났다. 벌처럼 집 안팎을 붕붕 날 듯 돌아다니시면서 추석준비를 하셨다. 멀리 나가셨던 가족들을 맞이할 생각에 얼굴에 웃음이 그득했다. 오랜만에 모인가족에 푸짐한 음식을 내놓은 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때 묻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시면서 ‘아가 뒷산에 가서 칙 잎을 정갈한 것으로 골라 몇 잎 따오렴.’ 시루떡 밑받침을 하기 위한 심부름이었다. 나도 덩달아서 맥없이 좋았다.

 

아버지는 닭장에서 살이 오른 암탉을 꺼내 닦달을 하셨다. 그런가하면 할아버지는 사랑방 창문의 모기장을 걷어내고 하얀 벽지로 바꾸셨다. 가을맞이 채비를 하신 것 이였으리라. 고향추석은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준비 되었다.

 

마침내 추석날 밤이 되었다. 앞동산에 둥실둥실 떠오르는 달은 참으로 고왔다. 동구 밖 너른 마당에 마을 사람들은 달맞이 제사를 지냈다. 풍년이 있어 감사하고 무병장수하게 보살펴 주실 ‘달님’이 고마웠다. 그러면서 달집을 태웠다. 마을 액운을 보내는 굿 소리로 추석날 밤은 뜬 눈이었다.

 

추석이 목전이다. 풍습(風習)은 바뀌었으나 풍속(風俗)은 다행이도 그대로다. 천년을 이어온 한가위의 풍속이 변치 않은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누가 시킨 일도 없고 누가 가르친 일도 없다. 때가 되면 모천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사람도 수구초심의 향수를 안고 고향을 찾아나서는 추석의 귀향 행렬에 인간의 존엄성을 느낀다.

 

△수필가 양규태씨는 1992년 〈문예사조〉로 등단. 수필집 〈해는 질 때가 더 아름답다〉 〈아직도 왼손이 남아있습니다〉 〈나를 버리면 천하를 얻고〉 등이 있다. 현재 부안 변산마실길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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