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모두 그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무대 위 연주자들도 저마다 삑삑 삐이익거리며 음을 맞춘 후 곧바로 허리를 펴고 그를 맞이할 준비를 끝낸 듯하다. 이윽고 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 옆으로 한 줄기 조명이 비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반코트를 입은 작달막한 여성이 당차게 걸어 나온다. 그는 단발머리를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지휘봉을 든 오른손을 허공에 가볍게 돌리다가 내리고는 왼손을 흔들며 인사를 대신한다. 연주자들이 모두 일어나 그를 맞이하고 동시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객석 앞줄에서 팔짱을 끼고 찬찬히 그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지휘석에 올라 연주자들을 쭉 한번 둘러본 후 지휘봉을 들고 왼손 바닥을 위로 올리자 연주자들은 저마다 활을 들고 악기를 입에 대고 현에 손을 얹은 채 지휘자를 본다. 이윽고 지휘자의 지휘봉이 내려오자 연주가 시작된다. 첫 번째 곡이라서인지 관객을 하나로 몰아가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려는 듯 모든 악기가 열을 내어 방아타령을 연주한다. 음은 마음속에 좌정하다가 휘몰아치는 듯싶더니 다시 잔잔하게 온몸에 파고들어 관객을 들썩이게 한다. 나는 어느새 팔짱을 풀고 온몸을 짜릿하게 휘감으며 울려 퍼지는 음에 자연스레 무장해제가 된다. 그러면서도 눈은 지휘자의 왼손과 오른손의 지휘봉과 몸동작을 보고 있다. 연주자는 지휘자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다. 어느 연주자의 음이 높은 것 같으면 다독여 주고 낮게 잡은 것 같으면 소리를 키우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음악이 휘몰아치면 몸을 흔들며 흥을 돋우고 느린 장단에 자연스레 지휘봉을 태우고 내맡기기도 한다. 그는 원래 오케스트라 지휘자인데 국악단에서 초빙한 객원지휘자란다. 그에게는 분명 서양음악이 더 익숙하겠지만 연주회 내내 그의 지휘하는 모습을 객석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나는 그는 분명 우리의 흥과 신명이 몸에 젖어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연주가 이어질수록 지휘자는 어머니의 자리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지만, 독주자(獨奏者)나 초빙가수처럼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무리 없이 항해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같은 어머니자리.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더니……. 연주회를 본 후 프로그램에 있는 음악보다 지휘자의 몸짓, 미소, 연주단과 관객을 하나로 몰아가는 카리스마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원이라면 지휘자가 없다고 연주회를 마칠 수 없으랴마는 저마다의 개성대로 불어대고 뜯고 두드린다면 어디 음악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지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렁저렁 연주를 마칠 수 있다 할지라도 조화로운 음악에는 다가가기 어려울 것이다. 지휘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던 나는 내 몸짓을 보고는 설핏 웃음이 난다. 누가 보든 말든 나는 지휘자의 몸동작을 따라 하며 음을 타고 놀고 있다. 지휘자의 왼손이 연주자를 가리키면 나는 내 앞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내 안에 잠재된‘나도 이젠 새로운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깨우고 있는 듯하다. 이제껏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아오다가 그분이 연로하고 병약해진 지금 내 안의 연주단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지 못할까봐 지레 걱정이 되어서인지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내 인생의 지휘자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아니 내 아이들이 또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슴과 머리에 남아있겠지만 럭비공 같은 삶에서 내 머릿속의 음을 누르고 키우는 마음속의 작은 지휘자를 큰 무대의 지휘석에 올려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 수필가 전성권 씨는 2011년 〈문예연구〉로 등단. 현재 전북수필과 순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