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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가고 공(功)은 남는다

▲ 정원정

카랑한 날씨다. 궂긴 소식도 아닌데 왜 이리 가슴에 부딪힘이 세찰까. 가던 길의 방향이 어디인지 어리보기처럼 어리벙벙히 며칠이 지났다. 지난날 어머니가 내뱉었던 ‘지랄 같다’는 심정이다. 수필 지도 교수의 퇴임 소식을 듣고서다.

 

아련한 추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칠년 전 아무 인맥도 없이 다만 글을 쓰는 데 도움을 받고자 모 교육원 수필창작 반에 등록 했었다. 지(知)에의 갈망은 나이, 거리가 문제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난들 같은 팔풍받이에 집 한 채 지어놓고, 이십여 년 시골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다. 정읍에서 전주를 내왕하는 데는 교통편이 만만찮았다. 시골구석에서 택시를 호출해서 터미널까지, 거기서 시외버스로 전주 완산 터미널에서 하차하면 다시 택시로 강의실에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주 일 회 내왕하는 게 조금도 각다분하지 않았다. 초기 몇 년은 결석 한 번 안 했다. 서울로 이사하고서도 월 한 두 차례는 전주까지 와서 수강하고 당일치기로 돌아가곤 했다. 왜 지금까지 수필 창작 반을 탯줄 잡듯 붙잡고 쫓아다니느냐면, 그만한 연유가 있다. 한가지 씩 새롭게 배워지는 것도 즐거웠지만, 교수의 수강생들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와 문우들과의 사귐이 묵정이처럼 못내 정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메떨어진 것처럼 글이 쓰이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침 개강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휑한 강의실에 사람이 왔다간 흔적이 묻어 있었다. 등에 불이 켜져 있고 에어컨이나, 겨울이면 온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탁상 위엔 어김없이 교수의 손가방이 놓여 있었다. 교수께서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서 찾아오는 수강생을 손수 챙기는 데에 따뜻한 감동이 가슴팍을 흥건히 적셨다.

 

이 나이 되도록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강의실에서 보지 못한 풍경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삯꾼이 아닌 스승을 모신 게 뿌듯했다. 차츰 알게 되었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수강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는 그 분에게 신뢰가 갔다. 평생 사부님으로 모셔도 되겠다 싶었다.

 

첫 강의에서 들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을 누구나 가슴에 ‘주훙글씨’처럼 아로새겨두었을 것이다. 글쓰기에 끊임없이 격려와 가능성을 심어주고 북돋아 주는 그 분의 매력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한때 난 자분정 같이 내 가슴에 글감의 소재가 마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밤새워 글로 퍼내도 다시 괴어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 풋솜씨로는 어림도 없었다. 한 편의 수필이 되도록 글맛을 살리자면 대장간의 앞메꾼처럼 불린 쇠를 시우쇠 다루듯 글줄을 다듬어야 한다. 그 일에 즐거움을 갖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그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학습 분위기에서 주워오면 된다.

 

오랜 세월 글 쓰는 배움터에서 스승이 떠난다니 허우룩한 기분을 몇 줄의 글로 삭혀 보았다. 어딘들 스승이 서 있는 자리에는 또 문하생들이 모일 것이다.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시간은 가고 공은 남는다.’

 

△수필가 정원정 씨는 지난 2009년 제2회 행촌수필 문학상, 2010년 제11회 우정사업본부 전국편지쓰기대회 일반부 은상, 2011년 제3회 목포 문학상 수필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201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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