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안병욱 교수는 인간의 3대 선택이란 명제를 들면서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했다. 누구는 배우자의 선택이고, 무엇은 직업의 선택이다. 끝으로 가치관의 선택은 삶의 질적인 방향을 가늠하는 갈림길이다.
부자들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 선택의 폭이 가난한 상대보다 훨씬 다양할 수 있다. 즉 ‘돈’은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기름지면서도 유리한 기회를 맞이하는 촉매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또한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방적인 길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상하와 우열은 이웃이나 상대와의 비교에서 유발된다. 한국 사람들의 소득은 독립이후 60여 년 사이에 수백 배로 늘어나 부자나라로 살아가면서도 삶의 만족도는 우리보다 가난한 터키나 중국보다도 더 낮다고 하니, 왜 그럴까? 어찌했든 이 문제는 풀기 어려운 퍼즐(숙제)이다.
청춘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먼 훗날 백발이 인생을 가로막을 때에야 느끼듯, 불만과 과욕과 허영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미래는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다. 100세시대를 바라보는 요즘과 비교할 때 1945년 광복 이전의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명은 40세 전후였다고 한다. 가난했기에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를 때우고 질병에 걸려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야했다. 먹을 것이 없어 배는 불룩 튀어나오고 검게 탄 야윈 체형이 말해주듯 국민 대다수가 영양실조에 걸렸었다. 6.25를 지난 때에는 미군(美軍)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모아 파는 상인들 덕분에 일명 ‘꿀꿀이죽’으로 연명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어른들은 떠올리기 싫은 추억에 눈시울을 적신다.
부모들에게 가난은 이리도 야박하고 천덕스러웠던 것이다. 억척스럽게 살다간 질박한 선조들은 가난이라는 아프고도 고독한 긴 터널을 겪으면서도 올곧은 생각과 정직한 품성으로 고난을 견디어낸 것이다. 우리들 후손들은 과연 얼마나 고맙게 여기면서 현대를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는 먹을 것들이 지천(至賤)이다. 해마다 음식쓰레기 처리비용으로 몇 조(兆)의 경비가 쓰여 진다고 한다. 물질이 풍족해질수록 그 풍요로움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질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배고프지 않는 삶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에 미화 1달러(한화 1,150원 정도)로 살아가는 지구상의 인구는 15%, 2달러로 사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33% 즉 25억여 명이 넘는다는 유엔의 통계다.
상식과 이성에 바탕을 둔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혜로운 언행과 판단이 행복의 가늠자다. 후회의 의미는 주어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상황들을 겪은 뒤에야 그 가치를 비교하면서 후회와 한탄에 젖어든다.
△수필가 김형중씨는 ‘수필시대’로 등단. 칼럼집 〈도전하는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당신도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