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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어린 양

▲ 김동영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

 

오늘따라 교회출 입구 스티로폼판에 붙여 만든, 모 권사를 환영한다는 장식도 붙어있다. 평소 자주 드나드는 사무실 이웃 개척교회에서 ‘나의 아버지’라는 복음성가가 녹음 반주에 맞추어 들려온다. 복음성가를 부르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목소리를 지닌 처음 출석한 여자 권사의 부름인 듯하다. 애수 어리고 간절한 소망이 담긴 성가는 이웃에 있는 나까지도 이끌려 가기에 충분한 가창력을 가졌다. 나는 귀 기울여 들으며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시내 변두리 농촌이나 다름없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대문은 물론 울타리도 없었고 키 큰 포플러 나무가 가로수처럼 드문드문 둘러쳐 있었다. 잔디와 작은 잡초들 가운데로 흙이 드러난 오솔길 같은 출입로 옆에는 빨간 맨드라미며 접시꽃이 피었고 흰나비며 잠자리 등 곤충이 철따라 번갈아 꽃을 옮겨 다니며 놀았다. 지금의 교회처럼 뾰족한 교회지붕 꼭대기에는 빛바랜 나무 십자가가 꽂혀 있었는데 그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상징물이였다.

 

어린 나는 그 십자가를 볼 때마다 하늘에 계신 분이 높이 솟은 십자가를 타고 교회로 내려오실 거라고 믿었었다.

 

철 따라 여름 성경학교가 열리면 어린이를 모아 놓고 기도하며 성가도 가르쳤다. 유대풍의 복장을 한 선지자가 기다란 ‘모세’지팡이를 짚고 어린 양떼를 거느린 표지 그림의 누가복음, 마태복음 등 질감 좋은 작은 선교 책자를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고급 칼라판으로 된 이 작은 책자는 어린 마음에도 욕심나는 것이어서 열심히 받아 모았다. 젊은 전도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경어를 사용했고 엄격한 우리의 부모는 물론 대다수 어른에 비하여 우리를 대우하는 것만 같아 무척 따랐었다.

 

그 뒤 부친께서는 그 작은 교회가 있는 동네를 떠나 양떼 같은 우리 칠남매를 거느리고 고풍스러운 성당 앞 동네로 이사했다. 이사하던 날 나는 작은 교회의 고즈넉한 나무 십자가와 따르던 전도사 선생님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글썽이며 떠나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의 새로운 놀이터가 된 성당의 십자가는 어린 소년인 나에게 하늘에 닿을 듯 높아 보였으며 마당에 높이 서있는 성모마리아 석고 입상은 그 앞에서 우리의 뛰어노는 모습을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가끔 검고 긴 복장에 흰줄 간 사각모자를 쓴 수녀님이 성경책을 옆에 끼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개구쟁이들이 노는 모습을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면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성당 십자가보다 더 높이 연을 날리려 애를 썼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이웃에는 정확하게 5개의 교회와 성당이 있다. 주일이면 수 백 수 천의 신자가 교회에 모여 주변의 교통을 통제해야 할 형편이다. 번쩍이는 대리석 관청 같은 교회 현관 양쪽에는 세련된 큰 웃음을 담은 몇 분의 사목님 그리고 장로님들과 한복으로 치장한 화려한 사모님들이 줄지어 서서 신자를 맞아하는 광경을 본다. 나는 지금도 가끔 주일이면 어린 시절의 잠재의식에 이끌려 아무도 모르게 교회를 찾아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줄지어 선 의욕적이고도 성대한 목사님 일행 앞을 통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집중되는 관심과 환영을 받아들일 준비와 자신이 내게는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네 언덕 위 낡고 작은 종탑 위에서는 주일 종이 울리고 맨드라미, 접시꽃이 핀 마당길을 지나 목사님이 ‘베드로’아저씨처럼 우리를 맞아주던 평화로운 작은 교회를 나는 주일마다 마음 속에서 그리며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양으로 남아있다.

 

△수필가 김동영 씨는 전주 출신으로 제50회 〈한국문예연구〉 겨울호에 신인을 등단했다. 한국문예연구문학회와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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