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되어 슬슬 햇빛이 내리니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도저히 표정을 바라볼 수가 없다. 태양열이 피부에 닿으면 살갗이 그을고 거칠어지며 자외선은 피부암을 유발한다고 하니 마스크를 쓰는 건 어쩜 당연하다. 집안에서도 햇빛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니. 나도 벌써부터 파라솔을 꺼내 외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언젠가 길에서 애기엄마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었다. “아줌마, 죄진 거 있어요? 얼굴을 싸매도 분수가 있지. 애들이 무서워 울잖아요?”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한 중년의 아줌마는 “싸매건 말건 무슨 간섭이야. 내가 애들보고 울라 그랬어?” 만만치 않은 둘의 큰소리에 엄마 치마폭에 달라붙은 큰아이와 유모차에 앉은 작은아이는 겁을 잔뜩 먹은 채 자지러졌다.
하기야 어른인 내가 봐도 무서울 때가 많다. 검은 등산복에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눈만 빠끔히 내놓고 팔을 휘휘 젓는 사람을 마주치면 정말 무섭다. 게다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으면 모양새만으로도 섬뜩하다. 차림새는 그렇다 치고 복면을 한 얼굴로 왜 그렇게 상대방을 빤히 바라보는지. 자기는 다 감추어 보일 것이 없지만 상대는 철갑을 두른 사람에게 알몸을 보이는 기분이다. 그 서늘함이라니.
요새는 남자들도 선크림을 뿌옇게 바르고 다닌다. 자외선이 피부의 적인데 여름엔 당연히 햇빛 차단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찬 공기를 막아 얼굴이 건조해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보니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가 되었다. 더구나 작업 현장에서 추위와 맞서는 사람이나 겨울에 오토바이를 탈 때는 그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런데도 얼굴을 가리면 두려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아기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흥” 하면 무서운 호랑이가 되고 “야옹” 하면 날카로운 고양이가 되어 아기에게 겁을 주게 된다. 아기를 웃게 하려면 얼굴을 드러내고 환히 웃으면서 어른도 아기가 되어야 한다. 하물며 마스크를 쓰고 아기와 마주치면 경기를 할지도 모른다.
메르스로 전국이 휘청거리고 있는 올 여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두 딸과 공항에 들어서니 눈에 띄는 사람 절반 이상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마중 나온 큰딸과 사위들도 마스크를 쓰고 다짜고짜 우리에게도 씌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증하는 바이러스까지 차단할 수 있는 방역용 마스크란다. 눈만 겨우 보이는 마스크를 쓰고 나니 숨쉬기도 불편하고 사람들 만나는 걸 삼가야 했다. 입가의 미소까지 감춰버린 마스크의 위력은 가지가지다. 이대로 길에 나서 아기를 만나면 겁을 낼 것이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두려워 피할 것이다.
△수필가 김춘자 씨는 임실 출신으로 지난 1998년 〈지구문학〉으로 등단했다. 전주문인협회 편집국장,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임실문인협회 부회장과 전북펜클럽 이사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