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어찌하여 청산에 사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음만 지을 뿐, 대답은 아니 해도 마음은 한가로웠다는 이백의 ‘산중문답’의 경지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싶다. 때론 안개구름이 산등성이를 감돌아 여기가 인간세상이 아닌 별천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야릇한 산내움을 실은 바람이 불어와 풀꽃을 흔들어 깨우기도 하고, 살갗을 흘러내리며 세상에서 더러워진 나를 상긋이 씻어준다.
이따금 산 속을 흔드는 바람이 갑자기 일어 나뭇잎을 뒤흔드는 통에 나무의 잎이 뒤집혀 마치 하얀 꽃잎을 피워낸 듯 온 산이 아름다운 화원인 양 연출하기도 한다. 이를 본 친구는 이 무슨 하얀 꽃들이 어쩌면 저리도 아름답게 피었냐고 탄사를 늘어놓다가도 이내 그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채고는 머쓱하게 웃기도 한다. 이런 바람이 여름날 반드시 소나기를 몰고 오는 마중물 같은 돌풍이란 걸 마을 사람들에게 들어 깨달은 것은 한참 지난 후였다.
올 봄엔 들깨 씨를 두 번이나 뿌렸다. 보이지도 않을 작은 들깨 씨들을 새들이 모두다 쪼아버려 깨 농사를 망칠 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더니 순식간에 수십 마리로 늘어나 들깨 밭을 싹쓸이 했다. 농사를 망치는 새로 말하자면 까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새다. 좋은 소식을 알린다는 길조가 아니라, 아예 농사를 망가뜨리는 못된 망조(亡鳥)다.
그러나 나를 한없이 즐겁게 해주는 새는 뭐니 뭐니 해도 초록과 황금색깔의 아름다운 옷을 곱게 차려입은 꾀꼬리다. 이 새야말로 봄부터 여름철에 이르기까지 나를 반기는 진객 중의 진객이다. 꾀꼬리는 홀로인가 싶으면 어느새 다른 짝이 뒤를 따라 날아간다. ‘꾀꼬리는 훨훨/ 쌍쌍이 노니는데, 나만이 외로우니/ 그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까?’라 노래한 유리왕의 사랑도 읽을 만하다.
어디 이뿐이랴? 연미복보다 더 멋지고 날렵한 옷을 입은 장끼가 날아와 나래를 접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수더분하게 차려입은 까투리가 뒤따르며 화려한 장끼를 더욱 멋쟁이로 북돋운다. 앙증맞은 새끼들 서너 마리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며 엄마 뒤를 따른다. 멀찍이 고라니가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어 이들을 쳐다보고는 자리를 슬며시 내어주기도 한다. 영락없는 한 폭의 풍경화다.
소설가 박경리나 박완서가 원주의 산골과 구리의 시골에서 자연을 벗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간 까닭을 알만도 하다. 흐르는 물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툴 일 없고, 보이지 않아도 온갖 산의 향기 실어다 가슴에 안겨다 주는 산바람이 있어 세상이 부럽지 않다. 하니 산 좋고 물 좋은 산 속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래서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 〈도덕경〉에 담긴 상선약수(上善若水)! 대문호 톨스토이도 1884년 3월의 일기에서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은 노자가 이른 물이라 했다. 물은 막히지 않으면 흐르고, 막히면 멈췄다가 차고 넘쳐 다시 흘러간다. 담기는 용기(用器) 따라 제 모양이 바뀌더라도 아무런 불평 없이 이내 순응한다. 그런 까닭에 물은 무엇보다 귀하고, 무엇보다 강한 것이라고 톨스토이는 그리 말했나보다.
△수필가 전일환 씨는 장수 출신으로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다. 지난 1993년 〈한국수필〉에 ‘그 말 한마디’로 등단했다. 저서로 수필집 〈그 말 한마디〉(2008), 〈예전엔 정말 왜 몰랐을까〉(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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