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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옹달샘

▲ 박일천

산길을 가다가 갈증이 날 때 바위 밑에 고인 옹달샘을 보면 얼마나 반가운가. 옹달샘은 대개 야산보다는 깊고 깊은 산 속에 있다. 행여 자신이 흐려질까 봐 인적 드문 숲 속 바위틈에 고요히 숨어있나 보다. 아니면 심심산길을 가다가 목마른 나그네에게 맑은 물을 주려고 깊은 산 바위 밑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옹달샘에선 쉬지 않고 샘물이 솟아나온다. 나그네가 먹고 산짐승들이 먹어도 그리고 아무리 가물어도 옹달샘 물은 마르지 않고 흐른다. 도대처 어디서 그 맑은 물이 흘러나온단 말인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드디어 과학책에서 그 근원을 찾았다. 비가 오면 빗물이 나무 아래로 스며들고 나무들은 뿌리와 잔뿌리까지 서로 얽혀서 그물망을 만든다. 그리하여 비가 올 때마다 그곳에 물을 저장한다. 이렇게 나무뿌리 사이에 모인 물을 ‘녹색 댐’이라고 하는데 이 물이 서서히 땅속으로 스미게 된다. 땅으로 들어간 물은 자갈과 모래, 흙을 지나면서 자연히 여과되어 정화수가 된다. 이렇게 정화된 맑은 물이 얕은 곳으로 흐르다가 바위틈에 고여 옹달샘이 되리라. 옹달샘엔 빗방울과 나무, 자갈과 모래의 속삭임이 들어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져 언제나 맑은 샘물이 솟아 나언 거란다.

 

수필 쓰는 일도 빗물이 여러 번 걸러져 옹달샘이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좋은 책을 많이 읽어 풍부한 감수성을 길러야 하리라. 또 여러 가지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예를 들면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기회가 되므로 글 쓸 소재가 많이 생긴다. 지나온 추억 역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모인 글감을 바탕으로 생각의 그물망을 짠 뒤 글을 쓰면 된다. 초고를 쓰고 나서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퇴고를 거듭해야 한편의 글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수필은 정화된 옹달샘 물과 같아야 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자마자 금방 깨끗한 물이 될 수는 없다. 맨 처음 빗물이 땅에 떨어지면 흙탕물이다. 땅에 스며든 비는 나무뿌리 사이에 녹색 댐으로 저장되었다가 자갈, 모래, 흙을 지나면서 비로소 맑은 물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필도 다독, 경험, 추억 등을 가슴 속에 담았다가 사색이라는 여과장치를 거쳐 향기로운 글로 숙성시켜야 한다. 옹달샘처럼 맑고 맛좋은 수필을 쓰려면, 마음속에 넉넉한 글샘을 만들어 놓고 수시로 정화해야 한다.

 

가슴에 담긴 소재를 하나둘 꺼내어 글을 쓴 뒤, 퇴고하는 여과과정을 수없이 거친 뒤에야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 진솔한 수필이 나오지 않을까? 아무리 글감이 좋아도 생각을 거듭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다듬지 아니하면 일상적인 일기 같은 글이 되기 쉽다. 흙탕물을 거르고 걸러야 정화수가 되듯이, 문장도 갈고 닦아야 맑고 감칠맛 나는 옹달샘 같은 글이 되리라.

 

내 마음속에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을 하나 두고 싶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온 삶의 순간순간을 되살려 음미할 수 있는 수필을 써서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박일천씨는 〈대한문학〉에서 수필, 〈지구문학〉에서 시로 등단했으며, 현재 늘푸른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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