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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꽃향기

▲ 노은정

낯선 곳에서 우연히 지인을 만났을 때 기쁨은 참으로 크다. 이런 때 반가움을 표현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아카시아 향처럼 다소곳이 다가가 달콤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흔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비처럼 양팔을 벌리며 다가가 뜨겁게 포옹을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변의 시선이나 체면은 아랑곳없이 부등켜안고 어린애처럼 좋아서 폴짝폴짝 뛰며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이 전달되어 부러움과 함께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나는 더덕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더덕은 초롱꽃 목으로 속씨식물 중의 하나인데 덩굴을 이루는 다년생 식물로 8~9월에 개화한다. 꽃도 예쁘지만 꽃보다 더덕이 지닌 맛과 향이 주는 매력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직한 모습이 탐스럽기도 하고 많이 먹어도 자생적으로 몸이 보호될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더구나 우윳빛 속살에 은은한 향은 나를 유혹하고도 남음이 있다.

 

껍질을 벗겨내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고추장을 푹 찍어 입에 넣기라도 하면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식감을 더욱 자극하여 기분을 상승시켜준다. 내가 더덕을 좋아하는 애호가임을 알고계신 어머니께서는 시골 집 뒤뜰에 더덕 몇 뿌리를 심어놓으신다. 그리고 날마다 들여다보다가 뿌리에 약이 차는 4월초순경 쯤에 나를 불러서 대 여섯 뿌리 케어 더덕무침을 맛있게 해 주시곤 한다. 입안에 들어오기 전부터 향기를 잃지 않는 더덕의 맛이야말로 매력의 도가니다.

 

더덕구이 또한 이에 못지않다. 여러 가지 양념으로 색감을 내 보지만 그 특유의 향과 맛이 강하여 양념은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그럴수록 자신의 독특한 맛을 더욱 강하게 내기 때문에 구이로서도 일품이다.

 

장미향이 그윽한 토요일, 모처럼 여유를 만끽하며 쉬고 있는데 남편이 오늘 점심은 남원에서 유명한 더덕구이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귀가 번쩍 띄어 벌떡 일어나 인터넷으로 맛 집 검색을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가 남원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집을 찾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낯선 가족들이 옹기종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맛 집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창밖이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으며 다양한 메뉴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더덕구이 정식을 시켜놓고 은근히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나를 꼭 껴안으며 ‘여기까지 웬일이야’하며 더덕 꽃처럼 예쁜 얼굴을 옆으로 내밀었다. 리고 남편에게도 깍듯하게 인사했다.

 

헐~ 정말이지 행복한 순간이었다. 20년 지기 고교 동창생 친구였다. 반가움에 부등켜안고 팔짝팔짝 뛸 수는 없었지만 마음은 이미 공중을 날고 있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 눈빛을 보며 잠시 행복감에 젖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는 나와 남편을 자신의 가족들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친구 가족들 또한 마치 내 가족을 대하듯 하여 반가움이 컸다.

 

어린 시절 아빠와 산행을 하던 어느 날 문득 산딸기를 발견하고 칡잎에 한 움큼 따 주셨던 반가움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기분이랄까?

 

더덕 꽃 같은 내 친구! 더덕 향을 지닌 내 친구!

 

친구란 존재는 가슴을 설레게도 하고 그리움에 젖게도 한다. 눈빛만 보아도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 속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친구는 먼저 일어서며 이미 나와 남편의 식사비까지 미리서 지불하고 내 손을 꼭 잡고 앞으로 가끔 얼굴 보며 살자고 했다. 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훈훈하고 행복한 오후였다.

 

△노은정씨는 월간 〈한비문학〉에서 동시와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한국아동문학회에서 동화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북문학관 아카데미에서 어린이 성균관 교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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