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열이 살을 파고든다. 바람 한 점 없는 도로에 햇살이 작살로 내리꽂힌다. 오후 3시, 살다 살다 이렇게 더운 여름은 처음이라고 투덜대며 나이 드신 언니가 참다못해 내 일터로 피서를 왔다. 열려진 문으로 더운 열기가 훅, 따라 들어온다.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하루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단다. 아무리 지독한 여름일지라도 빨리 지나가면 가는 만큼 우리도 빨리 늙을 텐데, 그래도 좋으냐고 농담을 했다.
며칠 전엔 너무 더운 날씨 탓에 입맛을 잃었을 혼자 계신 어머니에게 점심 먹자는 전화를 드렸다가 벼락을 맞았다. “더운데 어딜 가냐?”고. 덥기는 하고 기력이 없으니 느느니 짜증이다. 초여름에 에어컨을 달아드린다고 했더니 전기세가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인지 두 마디도 못하게 하셨다. 이렇게 더울 줄 알았다면 억지로라도 달아드렸을 텐데 후회막급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더위에 어떻게 지내는가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죽을 것 같이 덥단다.
방송에서는 연일 폭염에 온열환자가 늘어나고 가축과 양식어류가 폐사하고 있다며 통계수치를 발표한다. 94년 이래 가장 덥다고 한다.
아, 맞아, 94년 여름. 무지하게 더웠던 기억이 난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원 계절학기 수업을 마치고 오후 두어 시쯤 이글거리는 해를 맞받으며 한 시간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어컨을 3단으로 켜도 너무 더워 속이 메슥거리곤 했다. 도저히 집으로 들어갈 엄두를 못 내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켠 친구네 매장 안, 사랑방으로 직행해서 벌겋게 익어버린 몸을 식혔던 기억이 또렷하다. 선풍기 2대로 버텼던 작업실엔 아예 두어 달이나 들어가지도 못했다. 친구네 집에서 수다나 떨고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겨우 잠들었다가도 금방 깨어 뒤척거리곤 했다.
그저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여름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해 여름 나는 사는 게 아니었다. 그저 더위를 견뎠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견디는 건 사는 게 아니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건 삶이 아니다. 시간을 운영해야 삶을 사는 것이다.
이제 16년 여름, 나는 아무리 지치고 힘겨워도 내 몫의 삶을 직시하고 싶다.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다. 적어도 94년 여름처럼 허망하게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아침밥 준비하며 땀 흘린 후에 냉수욕을 하고 출근 전에 다시 한 번, 퇴근하고 찬물을 끼얹으면 그럭저럭 괜찮다. 차가운 물이 전신에 흘러내리는 감촉을 몇 년 만에 느껴보는 느낌도 시원하고 찜질방 같은 차안에 들어가 뜨거운 핸들을 잡는 일도 별로 나쁘지 않다. 다행히 여름감기도 걸리지 않고 심한 배탈도 나지 않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지 모른다더니, 너무 더워 사람이 오지 않는 매장 한쪽에서 에어컨에 선풍기까지 켜놓고 자잘자잘한 부채그림을 100여 개나 그리며 잘 놀았다. 그려놓으니 선물할 데가 생겼다. 모처럼 귀국한 당숙을 보러 서울 가는 길에 울타리 같은 친구들도 만나 선물하고 당숙 당고모 대가족한테도 맘껏 나눠드렸다. 세상에, 내가 언제라고 이렇게 푸지게 뭘 선물해본 적이 있던가.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잘 살아내고 이제 말복이다.
머지않아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추운 겨울이 빨리 가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기상청이 생기고 가장 덥다는 이번 여름을 천천히 향유하듯이 말이다.
△박미서씨는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했다. 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그림에세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 옆에〉와 수필집 〈내 안의 가시 하나〉 〈이 찬란한 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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