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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의 술

▲ 장병선
가을바람이 불면 술 한 잔이 생각이 난다. 젊은 시절 농사일에 땀 흘리고 잠깐 쉴 때 마셨던 새참이 그립기 때문이다.

 

막걸리로 시작한 농촌의 술 문화는 이제 약주, 맥주를 거쳐 고량주 까지 진전하여 시골 들녘까지 맥주나 고량주가 배달되는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마시는 술은 하루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작업성과를 독촉하는 상사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에 최고의 맛이었다.

 

어느 날 문득 옛날 임금님의 술은 어떤 술을 마셨을까 궁금했는데 우연히 임금님이 마시는 우리나라 전통의 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술 이름이 ‘온’이라고 했다. 보통 술은 쌀밥에 누룩을 섞어 빚는다. 쌀이 누룩을 만나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처음 나온 술이 단양주이다. 이 단양주를 다시 한 번 빚으면 이양주가 된다. 이 과정을 12번 반복하고 정제하여 빚은 술이 온이다. 아마 온이라는 술을 만들다가 신하가 술기운에 취해 횟수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술맛이 궁금하였다. 나도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그 술을 마시면 걱정은 사라지고 보이는 여성은 모두 천국의 미인 같을 것 같았다.

 

중국 초나라 장왕 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느 날 장왕은 장수들과 늦도록 연회를 베풀며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자 통 큰 장수가 임금이 특별히 사랑하는 여자의 손목을 슬그머니 잡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 아마 술기운에 용기가 생겨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성추행을 당한 그녀는 엉겁결에 장군의 갓끈을 잡아 당겨 끊어버렸다. 그리고 빨리 불을 켜라고 소리를 쳤다. 장왕도 눈치를 챘지만 험악한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기지를 발휘하여 명령한다. “경들은 불을 밝히기 전에 모두 자기 갓끈을 버리시오”라며 연회석의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그때 갓끈이 떨어져 나갔던 장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 장수는 그 뒤 초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앞장서서 공을 세워 빚을 갚았다는 임금과 술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50여 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그 때는 가정에서 술을 빚을 수가 없었다. 술은 주조장에서만 제조하여 파는 독과품목이었다. 주세가 국가 수입의 비중을 크게 차지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서민들은 몰래 술을 만들어 보약처럼 마셨다. 당시 시골마을에서는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이웃마을까지 금세 전달이 되어 제조하던 술을 헛간이나 돼지 울에 숨겼다. 그러나 단속하는 사람들은 술에서 풍기는 발효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찾아냈다. 그렇게 발각되면 한번 봐달라고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술을 몰래 제조하다 적발된 뒤에 부과되는 벌금제도는 애주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술 제조가 자유롭게 허용되어 지역마다 특산주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경쟁 사회가 되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서로를 불신하고 오가는 말들은 사납다. 이럴 때일수록 한 잔 마시고 ‘카!’ 하면서 깍두기를 우지직하게 씹는 얼굴들이 보고 싶다. 좋은 일은 친구 덕이고 잘못 된 일은 내 탓이라며 텁텁한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싶다. 술에 취해 불그스레한 얼굴을 마주보며 마음을 열고 동네 모정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옛 친구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장병선씨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덕진문학〉 〈행촌수필〉 회원으로 문단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전주 덕진공원 문화재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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