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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 최동민

하늘이 파랗다.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햇빛이 강하게 비친다. 날씨는 가을이라 덥지도 않고 선선하여 나들이하기에 좋다. 이런 날이면 마음이 울적하여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해변을 찾아 갔다. 들녘엔 벼들이 노랗게 익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풍성하게 잘 익은 과일이 빨갛게 물들어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한다. 구불구불한 해변을 따라 바다풍경을 바라보면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이며 기분이 상쾌하다. 바닷가 풍경은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다. 아득하게 보이는 수평선과 푸른 하늘, 맑은 공기는 처음 보는 듯이 우리를 반긴다. 한적한 마을의 풍경은 지난 날 어릴 적 고향마을을 생각나게 한다. 대나무가 있고 측백나무의 울타리도 주변의 나무들과 잘 어울려 있다.

 

바닷가에 닿았다. 모래밭을 걸으며 파도가 밀리고 밀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한데 파도만 철썩이며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밀려왔다가기를 반복한다. 손을 들어 숨을 크게 들이쉬고 파도를 향해 큰소리를 쳐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런 대답 없이 부딪치기를 계속한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널따란 모래밭을 따라 산과 바위가 있는 곳으로 하염없이 걸어간다. 머나먼 수평선과 끊임없이 다가오는 파도를 벗 삼아 아내와 함께 손을 잡고 해변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철썩철썩 다가오는 물결을 하나둘 헤아리며 발자취를 남겼다.

 

파도는 왔다가 밀려가고 밀려가면 다시 한 몸이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파도는 폭풍을 만나면 거세어진다. 집채 같은 커다란 바위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거세게 밀려든다. 그리고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다시 한 몸이 된다. 성난 파도가 힘차게 바위를 치거나 잔잔한 파도가 조금씩 어루만져도 모두 하나가 된다. 우린 서로 의견이 맞아 친하게 지내거나 뜻이 맞지 않아 대립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서로 다투기도 하고 헤어져서 다시 만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파도는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잔잔하게 살살 다가와도 다시 하나가 된다.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듯이 서로 화합하고 융화하기를 반복한다. 나도 파도처럼 이렇게 하나 되는 지혜를 갖고 싶다.

 

파도는 폭풍우에 흘러내리는 흙탕물이나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가리지 않는다. 바람과 함께 부딪쳤다가 부서지고 다시 모아 하나가 되기를 쉬지 않고 반복한다. 흙탕물은 싫고 맑은 물은 좋다고 투정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일 뿐이다. 모두를 다 보듬고 어르며 함께 생활한다. 모양이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나, 냄새가 좋고 나쁜 것도 가리지 않는다. 부모와 같이 포근한 마음으로 감싸며 떠안고 보살피는 것 같아 보인다. 나도 파도처럼 모든 걸 떠안고 포용하며 지내고 싶다.

 

사람들은 좋은 일은 오래오래 기억하며 생각하고 싶어 한다. 싫거나 짜증나는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가슴 속에 남아서 두고두고 애를 태우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주변을 뱅뱅 돌면서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즐겁고 신나게 생활해도 인생이 짧은데 거슬리는 일로 근심하고 걱정하며 고달프게 지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파도는 남기고 싶은 발자취나 지우고 싶은 흔적들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 지워버린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다. 나도 파도처럼 잊고 싶은 기억들을 모두 한꺼번에 지워버리고 하얀 백지처럼 깨끗하게 되돌리고 싶다.

 

오늘도 파도는 쉬지 않고 부딪치고 부서지며 다시 모아 하나 되고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모든 흔적들을 지워버린다. 언제나 새롭고 단정하게 새 손님을 기다린다. 나도 파도처럼 모두 지워버리고 새 손님을 기다리고 싶다.

 

△최동민씨는 교직에 재직하다 퇴직했다.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창암 이삼만 선양회 초대작가(문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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