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박영숙
잎이 넓어 공기 정화 작용이 뛰어나고 광합성도 매우 활발하여 카펫이나 벽지 등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를 흡수하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고무나무가 우리 집에 자리한 지도 어느새 30년이 되었다.
어느 지인이 새집에 입주한 기념으로 고무나무 화분 하나를 가져왔다. 그동안 네 번이나 이사를 하는 동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가는 곳 마다 잘 적응하며 시들지 않고 어른 키 만큼 쑥쑥 자라준 준 것이 대견하다.
고무나무는 이사할 때마다 항상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자리한다. 그런데 어떤 때는 잎이 헤싱헤싱하여 수형도 엉성 하자 짝꿍도 은근히 구박을 하며 내다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봄날 눈 딱 감고 밑 둥에서 약 30cm만 남기고 과감하게 싹둑 잘라서 네 개의 화분으로 분양을 하였다. 그리고 이 고무나무가 과연 어떻게 될까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자른 줄기에서 하얀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두어 달이 지나자 한 가지에 겨우 서너 개의 잎만 붙어있던 초라한 나무 등걸의 여기저기서 20여개 나 되는 잎이 뾰족뾰족 돋아나기 시작 했다. 이후 3년이 지난 오늘날엔 서른 개도 넘는 잎이 무성해져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생명 보전을 위한 자기만의 사투가 죽음을 무릅쓰고 새 생명으로 태어난 잎들이 마치 새로 얻은 독수리의 부리와도 비슷했다. 독수리의 수명은 80년 정도지만 그 부리는 40년쯤 살면 낡아져서 점점 못쓰게 된다. 부리를 못 쓰게 된 독수리는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40년이 된 독수리는 삶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다시 생명을 이어가느냐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된다. 이 때 의지가 약한 독수리는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삶의 의지가 강한 독수리는 낡고 못쓰게 된 부리를 재생시키기 위해 하늘 높이 오른 다음 온 몸을 바위 위로 내리꽂아 낡은 부리를 뽑아내고 새부리를 얻어 다시 40년을 맹금류의 수장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노인의 생각하나 바꾸는 것이 산을 옮기기보다 힘들다 했던가? 만약 내 삶의 방식이 낡고 효능이 떨어져 능력을 잃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삶에 도전 할까? 아니면 주어진 운명만 탓하며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고 결국 굶어죽는 독수리처럼 새로운 삶의 기회를 놓치게 될까?
나는 고무나무의 회생을 보며 고무나무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는 아름다운 비결을 배웠다. 고무나무는 공격을 받아 몸에 상처가 나면 반항하지 않고 눈물로 대응을 한다. 고무나무는 상처를 통해서 눈물을 흘리지만 이 눈물은 마냥 슬픔에 젖은 눈물로 나무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한 고무를 만들어서 상처부위를 덮고 그 수액으로 고무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신발이 되어주고 기쁨이 되어준다. 상처를 받았지만 흘리는 눈물로 오히려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고무나무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흘리는 눈물로 더욱 강하게 대응하여야 한다.
나이 먹을수록 제자리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제 고집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 부리를 가진 독수리처럼 거듭나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실만이 영원한 게 아닐까? 아집으로 사면초가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고무나무에서 교훈을 배워야한다. 고무나무는 햇볕이 없어서 힘들수록 그냥 말라 죽는 게 아니라 더욱 열심히 가지를 뻗고 잎을 만들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힘이 들수록 좀 더 자신을 계발하고, 분투하자.
△ 수필가 박영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전북문학관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늘푸른 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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