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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와의 동행

▲ 정석곤
2002년 초겨울에 애마(愛馬)를 처음 만났다. 애마는 처음 세상에 나온 회색 소렌토(SORENTO)였다. 그와 동고동락하며 10년 고개를 언제 넘었는지 까마득하다.

 

전주시에서 익산시로 서너 달 다니다 교감 승진의 기쁨을 싣고 진안군 소태정 고개를 4년 반 오르내렸다. 또 교장 승진의 영광을 안고 4년 반 동안 임실군을 다니다 정년을 맞았다. 이제는 애마랑 제2 인생을 동행하고 있다.

 

작년 1월 중순 오후, 친구와 전주화산공원에 올라가 양쪽 끝까지 정담을 나누며 왕복했다. 전주빙상경기장 주차장에서 쉬고 있던 애마에게 큰일이 생겼다.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넣었는데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친구와 안간힘을 써보고 주위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막무가내였다. 고집을 부릴 땐 미웠다. 보험회사의 서비스도 안 돼 기아오토(KIAOUTO) 지점으로 견인했다. 키박스(keybox)가 고장 나 전체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부품과 수리비가 20여만 원인데 단골이라 19만 원만 달라고 했다.

 

그 뒤로 가고 싶은 곳은 어디를 다녀도 끄떡없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꽂아 시동을 걸면 여러 번 작동해야 했다. 시동을 끄고 열쇠를 빼지 않은 채 두었다가 시동을 걸 때는 괜찮았다. 답답해서 동네 카센터에 갔다. 열쇠를 바꿔보라고 해서 보조 열쇠로 시동을 걸어보았다. 조금 나은 것 같았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차를 타려면 두려움이 앞선다. 늘 실랑이를 하다가 시동이 걸렸다. 며칠을 견뎌보다 또 카센터를 갔다. 자물쇠 고장이니까 키 전문가를 오라고 해서 점검을 받아보자고 했다.

 

고민하다 키 박스를 교체한 데가 나을 것 같아 기아오토 지점으로 갔다. 자물쇠 부분 수리가 안 되면, 키 박스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는 말은 카센터와 같았다.

 

부품 무상 교체는 보증기간이 6개월이나 넘어 불가능하다며 열쇠 전문가를 소개해 주었다. 사무원한테 ‘행운 열쇠’ 가게에 전화를 부탁하고 곧바로 찾아갔다. 고급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서 고객의 부름에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차 밖에서 자물쇠에 열쇠를 꽂아 상하좌우로 움직여보니 시동이 걸렸다. 자물쇠가 잠겼다가 잘 풀리지 않아 그렇다며 구멍에다 기름을 스프레이처럼 뿌렸다. 소명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같이 ‘유쾌 상쾌 통쾌’해, 오후 한나절의 폭염으로 등에 맺힌 송골송골 땀방울이 금방 식어버렸다. 사장님은 갓 50대쯤 되어 보이는데, 자물쇠와 열쇠만은 어떤 문제든지 고객을 만족하게 할 자신감이 넘쳤다. 그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남모르는 많은 시행착오와 수련과정을 거쳤을 거다.

 

열쇠 사장님이 올여름 같은 폭염에 고객들의 청량제가 되듯이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까?

 

수필을 써보겠다고 맘먹고 입문한 지가 내년이면 10년이다. 수필은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온다는 말이 헛말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나는, 바라는 만큼 좋은 수필을 쓰는 게 아니라 시시콜콜한 신변잡사(身邊雜事)만 늘어놓은 글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서글퍼져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독자들의 마음에 시원한 바람을 일으킬 수필나무를 그려보며 새로운 십년지계(十年之計)로 순수한 열정을 품고 시작해야 할 성싶다. 애마도 즐겁게 동행해 줄 것이다.

 

△정석곤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수필집 〈풋밤송이의 기지개〉와 〈물끄러미 바라본 아내의 얼굴〉을 출간했다. 임실 삼계·관촌초 교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작가회·행촌수필문학회 이사,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편집국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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