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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초보 운전자의 설움 - 양영아

TV를 보는데 골목에 들어서는 여자 운전자의 백미러에 고의로 팔을 부딪치며 교통사고라고 떼를 쓰는 사기꾼의 모습이 꼭 초보 운전 시절 내 모습 같았다. 여자가 운전을 하면 곧 사고로 이어진다는 남편의 편견 때문에 한참 후에야 장롱면허증을 꺼내 운전을 시작했다. 차 뒤 유리창에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훈장처럼 붙이고 다니면서 모든 사람이 나를 배려해주리라 믿었다.

 

도심을 빠져나와 시골길을 지나 약 1시간 이상을 달려야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나왔다. 아직 미숙해서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길은 기쁨이자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을 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그 사고가 났다.

 

동생을 태우고 관통로를 지나 명동사우나를 향해 서서히 우회전했다. 시속 5㎞도 안 되게 서행을 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동생이 갑자기 사고가 났다며 소리를 쳤다. 내 눈에는 사고 차량이 보이지도 않아 무슨 차가 사고 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고를 낸 차는 바로 우리고 했다. 그러고 보니 덜커덕 소리가 났던 것도 같았다. 그래서 차 밖으로 나가보니 어떤 남자가 발을 절룩이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아이고, 사람을 쳤네! 사람을 쳤어!”

 

죽는소리를 하기에 놀라서 병원으로 가자고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6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떼거리로 나를 둘러싸고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해댔다. 그 사이에서 갑자기 뚱뚱한 여자가 나타나서 “무슨 운전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으며 나를 밀쳐댔다.

 

그런데 차에 치였다는 그 남자는 까만 봉지에 막걸리병까지 들고 비틀거리면서 발등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렸다. 세상에, 자기가 부딪쳐 놓고 발등이 아프다니 이게 무슨 억지인가? 그래도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 저희끼리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가버렸다.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한참 뒤에 나타나더니 마치 나를 범죄자처럼 을러대며 사고 조사를 했다.

 

그래서 자초지종 사고 경위를 말하자 그 사람들이 서신병원에 가서 교통사고환자 처리가 안 되자 효자동 병원으로 갔단다. 자기들에게 8시까지 병원으로 오라고 했으니 나도 가보라고 했다. 접수하러 온 경찰이 어떻게 그런 사정을 미리 다 알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병원으로 가보니 낮에 으르렁대던 그 치기배들이 모여 술에 취해서 떠드는 게 영락없는 깡패들이었다. 그리고 의사도 경찰도 모두 한통속처럼 보였다.

 

나는 치기배고 사기꾼이 분명하니 고발을 하자고 했으나 남편과 보험회사 직원은 그냥 조용히 사고처리를 하자고 했다. 이유는 내 차 번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디서 다시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순응했다. 그들은 서울로 정밀검사 하러 간다며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지만 더는 상대할 수 없어서 보험회사에 맡겼다. 지금도 TV 뉴스에서 아직도 여자 초보 운전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여인들이여, ‘초보운전’은 위험천만한 표시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요즈음은 옛날과 달리 마음대로 사기를 칠 순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설령 사기행각을 벌였다 해도 CCTV와 블랙박스로 대부분 들통이 나니 불행 중 다행이다.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바르게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올까? 하루빨리 정직한 사회가 되어 걱정 없이 살아가려는 날을 기다려 본다.

 

△양영아 수필가는 초등교사로 정년퇴직 했으며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전북문인협회, 수필문학회, 영호남수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슴베>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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