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원룸 3층 현관문을 노크해도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키로 문을 열고 손잡이에 걸려있는 막걸리 두 병과 도시락을 들고 들어서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양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나오셨다.
이제 일어나셨느냐고 물으니 기운이 없어 누워계셨단다. 가지고 온 도시락과 막걸리 봉지를 내려놓으며 지난번에 배달한 도시락통을 드니 열어보지도 않았다. “할아버지, 식사는 안 하시고 막걸리만 드세요?”라고 묻자 막걸리는 목에 걸리지 않고 잘 넘어가서 가끔 이웃집 아주머니께 부탁하여 사다 마신다고 했다. 혼자 계시는 것이 불안해서 요양원으로 가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먼 산만 바라보셨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마지막 배달지인 할머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을 들어서자 누워계신 할머니는 아랑곳없이 텔레비전만 혼자 떠들고 있었다. 목까지 이불을 덮은 채 눈을 감고 계실 때는 가슴이 덜컥했다. 할머니도 역시 배달된 도시락은 열어보지도 않고 머리맡에 베지밀만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며 이렇게 식사를 안 드셔서 어떡하느냐고 걱정을 했다.
밥은 넘어가지 않아 잘 먹지를 않은데 어느 날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 몇 모금 마시려고 받는다며 미안해하셨다. “괜찮아요. 한 모금이라도 필요할 때 마실 수 있다면 배달은 해야지요.” 밥이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락을 답답한 마음으로 들고나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들고 간 도시락을 내려놓고 빈 도시락을 챙겨 나오면 고맙다고 손을 놓지 못한 분, 골목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한 분, 걸음이 불편하여 현관문 안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기다리는 분,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며 배려해 주신다. 집에 매어있던 개들도 처음에는 목줄 끝까지 뛰어오르며 짖어대더니 이제는 발소리만 듣고도 기다리다가 들어서면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방학하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 손녀들이 찾아와서 2주 동안 배달을 쉬다가 갔더니 열쇠가 3개 중 하나가 줄었다.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종일 마음이 쓰였다. 지난번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새끼발가락 골절로 2개월 고생하고 그 뒤 혼자 라면을 끓이다가 발등에 화상을 입어 2개월 고생하며 회복이 늦어 꼼짝 못 하고 집에 갇혀 있었던 분이다.
따뜻한 밥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도시락을 들고 찾아가는 일을 이 나이에 내가 한다는 것은 이웃을 돕는다는 조그만 자부심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그 작은 일이 다리가 불편하여 쉬고 있으니 마음도 같이 불편해진다. 작은 일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아쉬움이 크다.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 찾아갈 수 있는 그 작은 시간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추억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가을쯤엔 다시 도시락배달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문진순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영호남수필 사무국장, 대한문학 작가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