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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술 익던 청수정 골목, 전주전통주의 DNA를 깨우다

전주전통술박물관 관장 박소영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도시 재생’이라는 말이 익숙한 화두가 되었다. 낡은 골목길에 벽화가 그려지고, 오래된 공간이 세련된 카페나 편집숍으로 탈바꿈하는 풍경을 전주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공간이 깔끔해지고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화려하게 단장된 외관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지우기 힘든 아쉬움이 남곤 했다. ‘우리가 정말 복원해야 할 것은 저 건물의 껍데기일까, 아니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최근 그 아쉬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목한 곳이 있다. 바로 현재 전주공예품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때 ‘청수정(淸水町)’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그저 전주 유명 관광지의 일부로만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전주공예품전시관, 즉 ‘청수정 65-5-번지’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맑은 물이 흐르는 동네’라는 이름답게 전주의 맑은 물로 술을 빚던 근현대 주류 산업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이곳은 새벽마다 은은하고 구수한 냄새가 풍기던, 하루도 빠짐없이 ‘술이 익어가는 동네’였다. 

​대기업의 거대한 공장형 주류에 밀려 이제는 추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그 시절 동네 양조장은 단순히 술을 제조하는 공장이 아니었다. 농번기가 되면 농민들의 고단한 땀방울을 씻어줄 막걸리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거나 누군가 상을 당할 때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할때 혹은 환갑을 맞이할 때 등 술은 언제나 인간의 희노애락과 함께하던 로컬 커뮤니티의 중심이었다. 즉, 전주 시민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매개체이자 문화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라진 문화이다.

​그런데 최근, 서서히 사라져간 전주의 술 문화에 대한 기억을 공고하게 붙잡아줄 뜻깊은 계기가 마련되었다. 일제강점기 전주 지역 양조업의 실태와 우리 술의 엄혹했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송주상 소장 문건(근대 양조 문서)’을 그 후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기증해 준 것이다. 한 개인의 공간에서 잠자고 있던 100여 점의 소중한 문서들이 공공의 자산이 되는 순간, 전주가 왜 전통주의 메카이며 우리가 어떤 뿌리를 가졌는지가 비로소 실증적 증거를 통해 세상에 명확히 드러나게 되었다. 

​지금 전통주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트렌디한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청년들이 전통주를 소비한다. K-콘텐츠 열풍은 막걸리를 포함해 K-푸드에까지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유행의 속도에 휩쓸리기보다 전통의 깊이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외형적인 성장 뒤에 숨은 진짜 ‘우리 동네 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우리가 오일주조장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증받은 송주상 문건을 연구하여 세상에 알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조들이 지켜낸 기록과 해방 이후 시민들의 삶을 달래주었던 양조장의 기억이 핏줄처럼 이어져 왔기에 지금의 ‘맛의 고장 전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매력은 새것을 얼마나 잘 지어 올리느냐가 아니라, 오래된 기억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어가느냐에 달려있다. 후손들의 소중한 기증으로 되살아난 옛 기록과 청수정 65-5-번지에 품고 있었던 오일주조장의 이야기는 오늘날 전주 전통주의 가장 단단한 DNA다. 낡은 문서와 양조장 터에 숨어있는 전주의 기억을 불러내어 시민들과 나누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도시 재생이자 문화의 복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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