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브랜드공연 마당창극 15번째 시즌, 지난 23일 한벽문화관서 개막 백성의 삶 새긴 ‘각수’ 이야기, 객석 추임새 더해 마당창극 현장감 선사
전주의 밤이 오래된 활자의 숨결로 다시 살아났다.
지난 23일 오후 7시 30분, 전주문화재단의 전주브랜드공연 마당창극 15번째 시즌 작품‘별향단젼이라’가 한벽문화관 야외공연장에서 첫 막을 올렸다.
올해 작품은 전주가 품고 있는 문화유산 ‘완판본’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름 없는 백성들의 삶과 감정을 목판 위에 새겨 넣던 각수(刻手)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의 가치와 민중의 목소리를 마당창극 특유의 해학과 소리로 풀어냈다.
무대는 시작부터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붙잡았다. 객석의 등받이에 기대 있던 몸들이 자연스레 앞으로 기울 만큼 흡인력이 강했다. 풍남문과 남부시장, 전주 한지와 판소리 오바탕 등 전주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무대 곳곳에 녹아들며 작품의 지역성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정령’의 존재였다. 완판본과 경판본의 세평을 전하고 극의 흐름을 이끄는 이들은 단순한 조연을 넘어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개처럼 기능했다. 과거 활자문화의 전성기를 설명하면서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환기했다.
작품 곳곳에 삽입된 판소리 대목도 반가움을 더했다. 춘향가의 사랑가와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은 익숙한 소리의 힘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지난해 14번째 시리즈 ‘오! 난 토끼 아니오’가 수궁가의 전통적 면모를 강조했다면, 올해는 100% 창작극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택했다. 자칫 낯설 수 있는 소재였지만 전주의 공간성과 익숙한 정서를 적극 활용하며 대중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확보했다.
야외공연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도 극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달빛 아래 들려오는 전주천 물소리와 배우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고, 한벽문화관을 지나던 시민들마저 발걸음을 멈춘 채 난간 너머로 공연을 지켜봤다. 공연 중간중간 객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추임새와 웃음은 ‘함께 노는 판’이라는 마당창극 본연의 매력을 되살렸다. 관객들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장단에 맞춰 호응하는 풍경은 실내극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생생한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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