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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주보기] 여암 신경준 학문적 유산 활용 계승을

장진아 국립춘천박물관장

국립전주박물관은 고령 신씨 귀래정공파 문중에서 기탁한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관 중이다. 조선왕실의 기록문화를 조명하는 테마전 “기록의 보고를 열다”를 기획하면서 오랜만에 기탁 유물에 포함된 지도를 전시했다. 지도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 ‘땅’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시되고 있는 것은 <북방강역도>이다. 민족의 영산, 한반도 백두대간의 종주인 백두산의 웅혼하고 장쾌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북방강역도>는 <강화도이북해역도>와 함께 조선후기 학자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제작했다고 전한다. 두 지도를 비롯하여 문중에서 보전된 신경준의 저술들은 1934년 정인보(鄭寅普, 1893-1950)가 순창의 여암고택을 방문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정인보는 호남을 주유 중이었는데, 1934년 7월 31일부터 9월 29일까지 <남유기신(南遊寄信)>이라는 제목으로 총 43편의 여행기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25~28편에 해당하는 <신여암고택방문기(申旅庵古宅訪問記)1~4>에는 이 자료들을 처음 마주한 정인보의 감격이 생생하다. 

정인보는 이어 <남유기신> 29편에서 여암고택이 자리한 순창 남산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남산대 산 위 정자가 옛날 귀래정 자리인데, 고적(古蹟)에 승경을 겸한 곳으로 고송(古松) 사이로 보이는 탁 트인 경치가 제일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도 순창 귀래정은 여행객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 핫플이다.

귀래정은 신경준의 10대조인 신말주(申末舟, 1429-1503)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다. 순창은 신말주의 부인 설씨(薛氏)의 고향으로, 귀래정공파 기탁품 중에는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던 설씨부인이 사찰 건립을 위해 만든 <권선문첩(勸善文帖)>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낙향한 신말주의 행적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십로계(十老契) 활동이다. 70세 이상 열명의 노인 모임을 만들고 소박한 음식과 술, 시를 통해 서로 노닐며 우아한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신말주는 십로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모임에서 지은 각자의 시를 써 넣은 <십로계축(十老契軸)>을 만들어 이를 기념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십로계축>은 없어지고, 임진왜란 후 중건된 귀래정과 남산대 고택을 다시 경영한 것은 신경준의 조부 대였다. 신경준은 이 곳에서 태어났고, 늦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고향을 떠났다가 낙향하여 이 곳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는 잃어버린 <십로계축>의 이본을 우연찮게 얻어 신말주의 십로계 행적을 소환하고 귀래정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현재 전하는 <십로계축>의 이본 한 점은 귀래정공파 문중 기탁품에, 또 한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2023년 특별전에 이 두 점을 전시한 바 있다.

여암고택 방문 이후 정인보의 주도로 <여암전서(旅菴全書)>가 간행되었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조명되고 실학자로서의 위상이 정립되었다. 다만 지리학, 음운학, 역사학 등 학문의 갈래에 따라 따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지역에서, 지역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신경준의 위상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귀래정’이라는 지역의 공간을 중심으로, 가전 유물과 함께 <십로계축> 등 박물관 소장 자료를 종합적으로 연구, 소개하고 그의 방대한 학문적 유산을 지역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확장 계승할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지역학은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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