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행정 참사였다. ‘빛의 혁명’을 통해 세워진 이재명 정부와 K-민주주의의 위상을 크게 훼손시켰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참정권 수호를 위한 제도 개혁 TF’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유권자 앞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선관위 쇄신은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진짜 본질적인 과제는 지난 30여 년간 아홉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도 제자리를 맴도는 해묵은 제도적 미비점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강력한 지방정부 구축과 자치분권의 토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개혁할 대상은 국회 정치개혁특위(이하 정개특위)의 고질적인 ‘늑장 가동’이다. 이번 정개특위는 지방선거를 고작 163일 앞두고 첫 회의를 열어 법정 선거구 획정 기한을 넘겼다. 이처럼 시간에 쫓기다 보니 장기적 설계는 실종된 채 ‘이번만 일단 치르고 보자’는 임시방편만 반복되었다. 선거 직전 졸속 개편하고 끝나면, 사후평가의 논의를 닫는 악순환 탓에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일정과 셈법에 종속된 부속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를 끊기 위해, 정개특위를 상시 가동 시스템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졸속 구조는 지방의회의 민주적 대표성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헌재의 광역의원 선거구 간 인구편차 3:1 기준에 맞춰 선거 직전 급박하게 「공직선거법」을 고쳤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이다. 인구 등가성에만 치중한 나머지 인구감소지역의 선거구가 거대하게 통합되면서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반면 시·도별 총량제에 묶인 기초의회 의원정수 배분 방식은 신도시 지역의 필요 의석을 적기에 확보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다양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혁도 겉핥기 수준이다. 비례대표 시·도의원 비율을 14%로 소폭 인상한 진전에도, 거대 양당의 독점을 고수하기 위해 ‘5% 득표율 봉쇄조항’을 그대로 둔 것은 모순이다. 자치단체장 선거 역시 문제다. 다자 구도에서 30~40%의 지지만으로 당선되는 현행 ‘상대다수대표제’는 수많은 사표를 양산한다.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 치르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적극 고려해 볼 만하다.
가장 심각한 왜곡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무투표 당선’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500명 안팎의 후보가 투표 없이 합의 정치를 명분으로 무혈입성했다. 이는 영·호남의 지역 독점과 수도권의 기초의회 ‘2인 선거구제’가 결합한 기형적 결과다. 이를 막기 위해 단독 후보라도 최소 투표율 30%와 과반 찬성을 요구하는 찬반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2인 선거구제를 축소하고, 다양한 소수 정당과 청년·여성이 진입할 수 있도록 3~5인 중심의 중·대선거구제를 점차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당원협의회 사무소 설치 허용이 지역 정당활동을 양성화하고 정치신인의 지역활동 기반을 다지길 바란다. 이는 단순히 ‘지구당 부활’에 대한 찬반이 아닌, 이미 존재하던 지역 정당활동을 제도 안에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지방선거 개혁은 단일 쟁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선거구 획정, 비례성 강화, 무투표 당선 방지 등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국회는 정개특위를 상시화하고, 선거 직후 제도의 효과를 평가할 독립적인 ‘제도평가 기구’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박희승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남원장수임실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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