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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 화물처리 실적 초라

군산항의 지난해 화물 처리실적이 1700여만톤에 그쳐 전국 항만 가운데 10위를 기록했다.그러나 이같은 화물실적은 전국 항만 화물수송실적의 1.59%에 불과, 군산항의 유구한 역사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에 그치고 있다.이에따라 군산항의 화물 유치가 더욱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건설되는 부두의 공동화현상이 가속될 것으로 우려돼 물동량 유치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군산지방해양항만청에 따르면 지난해 군산항의 화물 수송실적은 1709만여톤으로 전국 항만 화물수송실적인 10억7654만여톤의 1.59%에 그치고 있다.주요 항만별 화물 수송실적은 부산항이 2억2618만여톤으로 가장 많았고 광양항이 1억8272만여톤, 울산항이 1억6938만여톤, 인천항이 1억3239만여톤, 대산항이 6471만여톤, 포항항이 5864만여톤의 순이다.또한 평택항 5132만여톤, 삼천포항 2412만여톤, 동해항 2238만톤에 이어 군산항이 10위에 랭크됐고 목포항과 마산항이 1505만여톤, 1361만여톤으로 뒤를 이었다.그러나 이같은 군산항의 화물 처리실적은 현재 군산항의 1부두에서 6부두까지의 화물 하역능력인 1734만여톤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내년까지 자동차부두 2만톤급 한개선석과 5만톤급 2개선석, 3만톤급 3개선석이 확충될 때 부두공동화의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항만 관계자들은 "군산항의 현재 당면문제는 물동량의 유치"라고 들고 "이를 위해 전북도와 군산시가 군산항의 물동량 유치에 걸림돌이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분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산업·기업
  • 안봉호
  • 2010.02.22 23:02

건설공제조합, 계약액 30% 내 보증서 발급…건설업계 불만

도내 자치단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관급공사에 대한 선급금 수령을 독려하고 있는 가운데 건설공제조합이 계약금액의 30% 수준에서만 선급금 보증서를 발급, 업계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지역 건설업계에 따르면 도내 자치단체 등 주요 발주기관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예산 조기집행을 위해 시설공사 등의 계약체결후 계약금액의 50∼70%까지 선급금을 수령할 것을 수주업체에 적극 독려하고 있다.이같은 선급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보증금 또는 보증서를 발주기관에 예치해야 하지만, 보증서 발급기관인 건설공제조합은 보증사고 등을 이유로 계약금액의 30%까지만 보증서를 발급해주고 있다.특히 30%를 초과하면 해당 건설사와 조합의 공동명의로 통장을 개설토록 하고, 이 통장에 선급금을 수령해 공동관리하면서 추후 공사실적에 따라 인출을 허용, 사실상 기성금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여기에 선급금 보증서 발행 수수료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업계가 선급금 수령을 기피, 예산 조기집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도내 업계 한 관계자는 "공사의 진행률에 따라 인출하는 금액은 더 이상 선급금이 아니라 단순 기성금에 불과해 수령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 때문에 30%까지는 공제조합에서 보증서를 끊고, 초과분은 수수료율이 더 높은 민간 보증보험을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중부담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업계가 출자한 공제조합이 업체들을 오히려 옥죄는 꼴로, 과다 규제 해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이에대해 건설공제조합 전주지점 관계자는 "조합내 보증사고 중 선급금 사고가 가장 많아 리스크를 최소화 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선급금을 운영자금으로 유용하지 말고 공사진행 상황에 맞게 사용하라는 취지로, 보증규정 및 세칙 등 본사 방침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산업·기업
  • 조동식
  • 2010.02.22 23:02

지역건설업계, 안정적 자재확보 방안 절실

건설자재가격이 급등할 경우 공동구매를 통한 안정적 자재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역 건설업계에서 제기되고 있다.도내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철근값 등이 폭등할 때 수도권 대형사들은 자사의 자금력과 대형사간 컨소시엄을 구성, 급등한 자재의 공동구매를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자재를 확보한 반면, 지역 중소건설업체들은 채산성 악화 및 자재난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당시 대한건설협회가 중소업체 자재난 해결을 위해 공동구매사업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물량이 적은데다 선착순 구입으로 지역 중소업체들은 사실상 수혜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지역 중소업체 한 관계자는 "대형사들은 자재 소요물량이 많고 유사한 시공분야가 많기 때문에 공동구매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지만 중소업체들은 여건이 여의치 않아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이에따라 중소업계는 안정된 가격의 자재구입을 위해 자재값이 급등할 때는 조달청 차원의 안정적 물량공급 대책과 함께 지자체의 알선 및 협력 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업계 한 관계자는 "조달청이나 지자체의 경우 한해 사업계획 물량을 파악하고 있으므로 대량구매 또는 공동구매 알선 등을 통해 가격안정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특히 이같은 방안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며 협회 차원의 대책마련을 강조했다.건설협회 전북도회도 이같은 의견을 반영,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자재파동이 발생할 경우 본회와 연계해 주요 원자재의 공동구매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키로 했다.전북도회 관계자는 "지난 2008년 철근 파동때 공동구매를 통해 중소업체들을 지원했지만, 구매가격에 대한 이견 등으로 어려움도 있었다"면서 "도내 중소업체들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자재파동 때는 본회와 연계해 공동구매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산업·기업
  • 조동식
  • 2010.02.19 23:02

[독자 백가쟁명] 농촌, 농업, 농사 - 조태경

며칠 전 전북도청 광장 앞에 쌓여있는 나락 가마니들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한참을 멍하니 서서 속울음을 삼키고만 있었다. 지난 가을에 생산한 유기농 쌀이, 겨우살이를 위해 팔아야 할 쌀이 우리 집안 창고에도 묵혀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간 유기재배를 통해 살려진 생명의 땅에서 지렁이와 거머리, 메뚜기와 개구리, 산돼지와 뱀이 함께 뛰놀며 자란 쌀이었다. 쌀 한 톨마다 자연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땅기운으로만 키워낸 귀한 쌀이었던 것이다. 밥은 하늘이라고, 하늘의 얼이라고, 그 얼은 참 생명의 빛이라고,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목숨을 이어간다고, 서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농업, 농촌, 농부, 그리고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생각하며 빚었던 내 쌀이 똥값처분 받을 순 없었던 것이다. 굶주리는 서민들에게 그냥 주면 줬지 헐값에 매각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쯤 되면 이젠 쌀이, 쌀이 아니다. 쌀이 돈으로 보이고 상품이 되어버린 이상, 쌀은 쌀일 수 없다. 쌀에 깃든 농부의 정신을 담아낼 마음의 그릇이 없는 시대에, 쌀은 이미 쌀이 아닌 것이다. 그 존재가치와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는 시대에, 추락하는 쌀 가격에 가슴 아팠다. 전북도청과 우리 집안 창고가 머릿속에 겹치는 상황 속에 참담한 심경을 쓰러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뜻을 두고 농촌에서 산다는 것, 농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눈물겨울 때가 참 많다. 논에 우렁이를 사다 넣던 날, 내 가슴이 얼마나 설레었던가! 매일같이 논두렁을 둘러보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히 하였던 날들의 추억, 산돼지가 내려와 논을 휘젓고 다닐 때조차도 오히려 얼마나 큰 기쁨에 가득 찼던가! 햇빛, 바람, 비, 구름, 별들의 기운으로 온 우주가 협력하여 키워낸 한 알 한 알. 그 노고에 벼이삭이 고개 숙일 때 또 얼마나 흐뭇했던가! 자연의 보살핌으로 일구어낸 생명의 쌀. 우리는 언제서야 밥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밥을 통하여 하늘의 얼을 호흡하고 온 우주와 소통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러한 쌀을 산다는 것은, 이 땅에 한 농부를 심는다는 것이요, 농촌사회에 희망을 불어 넣어준다는 의미일 게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의 농부가 모여 농촌사회가 바로 선다면 농업 회생의 길을 열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인도의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선생은 농촌공동체의 정신회복을 강조하였다. 나라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농촌마을 하나하나가 인도를 구한다고 하였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투쟁이 절정에 서서 승기를 굳혀갈 때, 간디 선생은 "마을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내겐 영국으로부터의 독립도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인도의 혼은 농촌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마을공동체가 근간이 된 자립자치의 인도사회를 바랬다. 천혜의 땅 전북은 지형적 특색을 축복으로 여기며, 농촌이 살아있는 도농상생의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한다./조태경(농촌살림연구소장)

  • 산업·기업
  • 전북일보
  • 2010.02.19 23:02

[지역상품이 부자전북 만든다] (19)(주)은성식품

허기진 배를 채우거나 별미로 먹기에 안성맞춤이어서 남녀노소에게 각광받는 국수. 서민음식의 대명사인 국수를 고급화해 참살이 음식으로 거듭나게 한 업체가 있다. 익산시 여산면 ㈜은성식품(대표 김형귀)은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킨 뒤 늘이는 과정을 반복해 수연소면를 만든다.우리밀과 천연색소로 만든 오색 수연소면은 국내산 고급 밀가루를 주문 생산, 반죽을 3차례 늘리고 그 사이에 2차례의 숙성을 거쳐 만든 고급 국수다. 2㎏에 3만5000원으로 고가지만 삶은 뒤에도 면이 잘 퍼지지 않고 쫄깃한 맛을 유지한다.매월 밀가루 사용량은 1200포(1포 당 20㎏), 중간 유통업자를 통해 국내 고급 식당·호텔·백화점 등에 납품하면서 30명의 직원이 지난 2008년 14억원, 지난해 16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매년 성장하고 있다.김 대표(57)는 "여러 번의 도정을 거친 밀가루는 원가가 비싸고 반죽을 늘이는 과정에서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가 어려워 판로가 특화됐으며, 최근에는 대형마트와도 납품을 상담하고 있다"며 "한번 우리 국수를 맛본 소비자는 직접 공장에 와서 구매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은성식품은 지난 1990년 일본 수출용 고급국수를 제조하기 위해 10여명의 직원으로 설립했다. 5년 전부터 밀가루 가격 상승과 국내 물가 급등 등으로 수지가 맞지 않아 수출은 접은 상태다. 김 대표는 "수출 견적을 내면 가격이 오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수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지난 2007년 6월에 바이전북 인증을 받은 뒤 홍보전에 참여하면서 인지도를 높혀가고 있으며, 생산 제품의 대부분을 국내산 밀로 대체하고 있다.김 대표는 "바이전북 인증은 뒤 전국에 우리 제품을 알리는 기회를 얻었다"면서도 "바이전북 자체가 활성화돼 각 업체의 판로가 좀더 확대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부터 질이 향상된 우리밀이 생산돼 올해는 우리밀로 만든 기능성 제품을 적극 홍보해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 산업·기업
  • 이세명
  • 2010.02.18 23:02

도내전문건설업 '부익부빈익빈'

지난해 손익분기점에도 못미친 실적을 기록한 도내 전문건설업체가 전체의 77%에 달한 가운데, 이들의 실적이 상위 2.3%의 실적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전문건설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대한전문건설협회 전라북도회(회장 신영옥)가 16일 실적신고 접수를 마감한 결과, 도내 1940개 전문건설업체의 2009년도 기성실적총액은 1조6964억6663만8000원으로 2008년 1조5682억5432만7000원에 비해 1300억원(8.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실적신고액이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는 10억원 미만 업체가 전체의 77%에 달하는 1495개 업체에 이르는 반면 최상위 계층인 50억원 이상 신고업체는 2.3%인 45개 업체에 그쳤다.특히 이들 10억원 미만 업체의 신고총액이 4754억1052만9000원으로 50억원 이상 업체의 신고액 4760억3608만4000원에도 못미치는 등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전북도회 관계자는 "품셈현실화란 명목으로 공사비가 매년 삭감되고, 업체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 탓에 저가수주가 만연하면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면서 "특히 중·하위 업체의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한편 업체별 기성실적총액 1위는 ㈜준건설(대표 한상남)로, 전년보다 61억원 증가한 508억3622만8000원을 신고하면서 2004년 이후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 산업·기업
  • 조동식
  • 2010.02.18 23:02

익산, 빛의 도시로…국내 첫 LED협동화 단지 조성

전북이 빛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전북도는 17일 도청 회의실에서 한국LED조명공업협동조합(조합장 은희문)과 전국 최초의 'LED협동화단지 조성과 회원사 이전'을 주 내용으로 한 1조6000억원대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이날 협약체결로 이전이 예정된 LED조합 회원사는 80개다.이날 투자협약에서 도와 익산시는 인센티브와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투자기업은 계획된 투자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한국LED조명공업협동조합은 오는 2015년까지 2단계에 걸쳐 1조6000억원을 투자할 예정. 익산에 250만㎡ 규모의 LED협동화단지를 조성해 공동브랜드 개발 및 공동 R&D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내수 및 해외 판로를 개척한다는 계획이다.80여개의 LED업체가 익산 LED협동화 단지에 입주할 경우, 전북의 전국 LED업체(567개)점유율은 지난해의 10%(73개)에서 27%(153개)로 증가해 광산업의 메카인 광주(16%)를 추월하면서 국내 LED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번에 투자협약이 이뤄진 분야는 전 세계 LED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LED응용분야로, 시장규모는 2008년의 130억불에서 2015년에는 1000억불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또한 1조 6000억원(2008년 기준)에 달하는 국내 LED응용시장에서 딸기와 잎들깨·국화의 전조용 백열전구를 LED조명으로 대체할 경우, LED 업체의 매출액은 1740억원, 식물공장·살균용 LED조명 매출은 2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김완주 지사는 "이번 투자협약체결은 규모나 이전기업 수 등에서 전북이 LED산업 메카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오는 2015년 LED융합 그린산업 메카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도와 익산시는 지난해 7월부터 협조체제를 구축, 다양한 유치활동을 벌여 타 지자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투자를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도는 작년에 LED산업 육성에 대한 비전을 선포했으며, 서남권 LED융합기술지원센터를 유치하는 등 LED산업을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 산업·기업
  • 김준호
  • 2010.02.18 23:02

홍성주 행장 4연임 가능할까

4연임을 노리는 전북은행 홍성주 은행장의 아성을 깨려는 입지자들의 도전이 거세다. 홍성주 행장이 전북은행 사상 최대의 실적을 쏟아낸 성과를 앞세워 느긋한 반면 낙하산을 타려는 외부 인사들의 움직임과 사상 첫 자행출신 은행장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를 등에 엎은 내부인사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홍성주 은행장은 17일 은행장 선임 관련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지금 상황에서 언급할 내용이 없다는 것.홍 행장은 지난 10일 전북은행 노조의 입장 표명 요구에도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홍 행장의 이같은 행보는 '행추위가 나를 선택하면 4연임으로 간다'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사실 홍 행장으로서는 4연임이 어렵다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은행장 취임 후 3연임 하면서 최대 당기순이익 실적을 연거푸 갈아치웠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생리가 그대로 적용될 경우 대주주든, 행추위든 경영실적이 뚜렷한 일꾼을 쉽게 갈아치우기는 부담스러운 일이다.이런 가운데 외부 인사들은 각종 인맥을 동원해 은행장 후보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탐문되고 있다.17일 현재 거론되는 외부인사는 문재우 금융감독원 감사, 양남식 전 KB국민은행 부행장, 정상덕 HSBC은행 감사, 최창호 전 한국은행 부총재 등이다. 또 내부인사로는 김용배 전 부행장, 김창환 전 부행장, 박용규 전 수석부행장, 문원태 전 부행장 등 전직 임원과 황남수 수석부행장 등으로 정리되고 있다.일부 외부 인사들은 대주주 주변 인맥, 행추위 위원 주변 인맥 등을 동원해 자신의 경쟁력을 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부인사의 경우 시중은행 경험, 한국은행 경험, 해외 지사 근무 경험 등을 내세워 변화하는 글로벌 금융환경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인물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전언.하지만 내부 인사들은 지역 실정에 밝은 점, 자행 출신 은행장을 배출한 부산·대구은행의 사례, 매번 낙하산 은행장 부임에 따른 직원 사기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사상 첫 자행출신 은행장 배출을 기대하고 있다.전북은행 행장추천위원회는 오는 25일 차기 전북은행장을 선정 발표한다.

  • 산업·기업
  • 김재호
  • 2010.02.18 23:02

[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7)백화양조 ④두산 거쳐 롯데주류BG

청주시장을 제패하고, 소주에 이어 양주시장까지 사업 규모를 확대하며 종합주류 메이커로 성장한 백화양조는 소주와 양주 사업 부문에서 패착에 빠지고, 경영권까지 흔들리면서 1985년 말 결국 두산그룹에 경영권을 넘기고 만다. 또 두산은 24년만인 지난 2009년 3월부로 주류사업부를 롯데주류BG에 양도했다. 65년 역사의 백화양조는 이제 롯데주류BG 군산공장으로서 고급청주 설화 등 청주와 소주(처음처럼) 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위스키 시장 진출 과정과 실적 1975년 12월31일 시판을 개시한 죠지 드레이크(원액함량 19.9%)가 국내 양주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엄청나게 팔려나가자 백화양조는 위스키 제조공장을 이전 설립하기 위해 1976년 10월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에 60만평의 임야를 매입했다. 이어 12월에는 1980년말까지 몰트 위스키 국산화 시설을 완비하는 조건으로 위스키 제조면허를 받았다. 그러나 백화양조는 죠지 드레이크가 원액함량 19.9%로서 주세법상 '기타 재제주'에 속함에도 불구, 원액함량 20% 이상인 '위스키'로 표기한 것이 문제가 돼 결국 1977년 4월 탈세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어려움에 처한다. 당시 기타 재제주의 세율은 100%인 반면 위스키는 200%에 달했다. 조사 결과 탈세는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법인세 6000만원을 추징당했다. 또 죠지 드레이크라는 상표 사용은 물론 위스키 표시도 할 수 없어 죠지 드레이크 생산을 중단했다. 큰 타격이었다. 이 사건 후 국세청은 1977년 7월까지 원액함량 25% 이상인 위스키를 개발해 시판토록 조치했고, 주류업계는 주세법 제5조에 의거해 위스키 제조장을 별도로 세워야 했다. 백화양조는 시일이 너무 촉박했다. 중기 계획으로 세웠던 위스키 고창 공장 설립을 포기하고, 1977년 6월23일 군산세무서로부터 위스키 면허를 재발급 받은 후 군산시 월명동 군산 북중학교 자리에 위스키 공장을 세웠다. 백화양조의 새 위스키는 원액함량 25% 알콜도수 43도였고 원액은 노드런 맥콜사에서 공급받았다. 당시 국세청 방침은 위스키 상표명이 순수한 우리말이어야 한다는 것. 사내 공모 끝에 '베리에이틴'을 선정해 신고했으나 국세청은 순수 우리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승인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베리나인'이다. '베리'는 순 우리말 벼루의 사투리로서 '낭떠러지 아래가 강이나 바다로 통한 위태한 벼랑'이라는 뜻. 공교롭게 벼랑계곡을 뜻하는 영어 'Valley'와 음과 뜻이 일치한다. '나인'은 궁중에서 왕의 시중을 드는 사람을 뜻한다. 백화양조는 '베리나인'에 대해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위스키를 만들어 왕과 같은 고객에게 바치겠다"는 해석을 붙여 가까스로 국세청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또 과거 공전의 히트를 친 죠지 드레이크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가기 위해 죠지 드레이크 병을 사용하고, 상표 디자인도 그에 따랐다. 이 때 경쟁사들도 새 위스키를 내놓았는데, 진로는 '길벗' 해태주조는 '드슈'였다. 우리나라 주세법상 최초의 위스키 베리나인은 1977년 7월23일 첫 생산됐고, 대대적인 TV광고를 업고 7월25일부터 본격 시판됐다. 백화양조는 77년 하반기와 78년 상반기에 걸쳐 모두 5만 2856상자의 위스키를 출고, 51.6%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진로 39.3%, 해태주조 9.1%였다. 그러나 새로운 위스키 시장을 놓고 엄청난 판촉활동과 광고전을 벌이면서 위스키 사업분야는 적자를 면치못했다. 하지만 백화양조는 베리나인에게 압도당한 경쟁사들이 만회를 위해 고급 신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판단, 고급 신제품 '베리나인 골드'를 개발했다. 베리나인 골드는 '주령 12년의 정상급 위스키 베리나인 골드'를 헤드라인으로 내건 광고를 앞세워 1978년 7월26일 시판에 들어갔다. 진로가 프리미엄급 위스키 '길벗 로얄'을 개발해 대항했지만, 1979년 1년간 베리나인 골드는 프리미엄급 위스키 부문에서 28만 2500상자를 출고, 시장 점유율 68.5%를 기록하는 등 시장 점유율을 더욱 확대했다. 하지만 1980년을 전후해 대통령 시해사건과 제2차 유류파동이 터지면서 국내 위스키를 비롯 맥주와 청주 시장은 침체됐고, 반면에 소주 소비량이 급신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동양맥주가 미국 씨그램사와 합작, 오비씨그램을 설립한 후 1981년 8월 내놓은 위스키 '블랙스톤'이 점유율을 올려나가면서 백화도 타격을 받았다. 1983년 백화양조의 위스키 점유율은 50.2%로 내려앉았고, 진로 26.2%, 오비씨그램 23.6%였다. ▲ 위스키 생산 전문기업 설립과 실패 백화양조, 진로, 오비씨그램 등 위스키 3사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적자경영을 해야 했다. 다른 주류사업 부문에서 얻은 흑자로 위스키 부문 적자를 상계, 회사 전체의 이익을 줄였기 때문에 결국 법인세 납부액이 감소했다. 이는 다른 주류 가격 인상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이에 정부는 1981년 12월, 세수확보와 대중주 가격 인상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위스키와 타주류를 함께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1982년 6월말까지(추후 12월말까지 연장) 위스키 부문을 별도 법인으로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이 당시 백화양조는 주력인 청주의 소비 감소와 건설 등 신규사업 실패 등으로 심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었고, 위스키 단독법인을 설립할 경우 존속시킬 능력이 크게 부족했다. 하지만 그동안 다져온 베리나인 골드 시장을 넘겨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위스키 전문기업 '베리나인'의 설립등기를 1982년 12월 10일 마쳤다. 자본금 5억 6000만원 가운데 5억원을 백화양조가 출자했다. 초대 임원은 회장 강정준, 사장 이건중, 부사장 강희중 등 이었다. 베리나인 위스키 공장은 백화양조로 부터 현물출자 받은 대명동 소주공장 자리에 세워졌다. 블렌딩실, 병입시설 등을 갖추고 1983년 11월 9일 첫 제품이 나왔다. 새 공장은 생산능력 1000㎘의 몰트위스키 제조시설과 연간 50만 상자의 병입시설 외에는 투자를 극소화한 시설이었다. 베리나인은 제1기(6개월)에 순매출 38억 7000만원, 순이익 2억원을 올렸다. 또 다음해인 1984회계연도에는 순매출 93억 3000만원, 순이익 2억 8500만원을 달성했다. 이 때 광고선전비가 무려 18억 3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프리미엄급 위스키 베리나인 골드로 큰 성장을 이어가던 베리나인은 1984년 특급위스키 시장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하며 1985년도 회계연도에 매출액이 72억 5700만원으로 떨어졌고, 무려 9억 46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정부의 특급위스키 생산정책에 따라 1984년 6월 내놓은 '베리나인 킹'이 오비씨그램의 '패스포트'와 진로의 '비 아이 피'에 밀린 것. 특급 위스키 시판 전 70일이었던 매출채권 회수기일이 베리나인 킹 시판 5개월 후인 1984년 11월에 100일을 넘어섰고, 1984년 6월 130억원이었던 차입금이 1985년 6월에는 209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베리나인은 킹의 대체품으로 신상품을 계획, 1986년 7월28일 신제품 썸씽 스페셜을 첫 출하했다. 1912년 스코틀랜드의 힐 톰슨사가 발매한 프리미엄급 위스키로서 맛이 매우 부드러워 한국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출하 초기 6개월동안 9만 2000상자가 판매돼 특급위스키시장 점유율 16.7%를 기록했다. 베리나인은 1987년 위스키 총판매량을 50만 상자로 끌어올리며 15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백화양조가 경영권을 두산에 이양한 후의 일이었다. ▲ 소주사업 포기와 원료용 주정배정권 매각 백화양조는 초기 청주 전문 생산기업으로 출발, 소주와 주정 생산에 뛰어들어 백화소주와 백화산업을 계열사로 이끌었다. 또 술 지게미(주박)을 이용한 식초 생산기업인 화영식품을 인천시 북구 작전동에 설립했고, 태양건설을 인수해 건설업에도 진출했다. 종합주류 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해 위스키 사업도 펼쳤다. 또 이 과정에서 백화양조는 김제 포도주 농장, 고창 위스키공장 부지, 경기도 용인 부지 등 많은 부동산도 보유했다. 백화양조는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할 만큼 청주 부문에서는 거의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화영식품도 창업 초기 어려움을 딛고 흑자를 내는 기업이었고, 위스키 부문도 베리나인 골드라는 명품을 내세워 기반을 탄탄히 했다. 하지만 1979년 무렵 내린 '소주사업 포기' 결정은 백화양조의 경영상 큰 오점으로 지적된다. 당시 백화양조 등 소주업체들은 경영상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가 1976년 11월 '도내에서 50% 이상을 의무 판매'하도록 조치, 백화양조의 경우 이리의 보배양조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게다가 정부의 주조 시설 개선책에 의거, 55만달러를 투자한 것도 자금부담을 가중시켰다. 소주는 출고량 비율로 원료 주정을 배정받기 때문에 주정 배정량 확보를 위한 밀어내기 출고에 따른 출혈도 심했다. 결국 백화양조는 전체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소주사업을 포기하기로 결정, 1980년 1월 소주 원료용 주정배정권을 진로와 무학, 보배, 보해 등에 12억 8530만원을 받고 매각했다. 하지만 이 무렵 제2유류파동 등 불황으로 고가의 위스키와 청주 판매는 줄어들고, 저가의 소주 판매가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소주 시장은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으니, 백화로서는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두산주류BG시절 옛 백화소주의 명성을 살리기 위한 계획이 추진됐고, 1999년 4월 '백화소주 20'이란 이름으로 20년만에 부활했다. 이후 2003년 산소주, 2006년 2월 처음처럼(19.5도)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백화양조는 두산을 거쳐 롯데 일가가 되면서 안정적 성장 기반을 구축했다. 비록 경영권이 변하고, 시대가 변했지만 '백화수복'의 명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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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호
  • 2010.02.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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