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당신을 나라고 부르지 마세요 처음부터 당신은 내가 아니었어요 당신의 마음을 사랑으로 믿고 한없이 부풀었던 내 마음이 문제죠 이전의 기억을 잊은 부드러운 속살 경계를 지우며 변해가는 당신의 모습 나는 그 매력에 푹 빠졌지요 그런 당신이 이내 스러져가는 이슬 같은 것이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 달콤함에 스왈스왈하다 보면 당신의 사랑은 더욱 커지고 나는 김빠진 맥주가 되어간다는 줄도 모르고 △“스러져가는 이슬” 같은 사랑에 취하고 싶다. <거품>이면 어쩌랴. 사랑은 이별을 동반할 때 내게로 온다. “김빠진 맥주가 되어간다” 한껏 부풀었던 사랑이 식어 간다는 사실이 재밌다. 경계를 지우며 변해가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과거가 이슬처럼 식어 가는 사랑의 묘미를 어찌하랴. 풍선처럼 터질 듯 부풀어가는 뜨거운 열정이 거품이라고 느꼈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사랑을 훔쳐 가지 않았을까. /이소애 시인
초저녁부터 문풍지가 울어대는 냉골방에서 우리 할매는 밤새도록 물레를 돌렸다 베를 짤 실을 마련키 위해서였다 할매는 해마다 겨울만 되면 턱없이 늙었다 물레바퀴에 눈처럼 하얀 실타래가 차곡차곡 감긴 만큼씩 꼭 그만큼씩 늙었다 할매 뒤를 이어 엄니가 물레를 이어받았다 물레를 물려받은 엄니 머리에 겨울이면 해마다 백발이 곱으로 늘었다 엄니 언제부턴가 할매가 돼 가고 있었다 △쓸쓸한 나의 감정을 다독여주는 시다. “꼭 그만큼씩 늙었다”라는 할매와 엄니가 “물레를 물려받”을 때처럼 늙음도 그러하다는 시인에게서 따뜻함을 느낀다. 옛 추억을 떠올리는 물레바퀴 소리가 실타래 감기듯 고단한 삶의 숨소리 같다. “문풍지가 울어대는” 냉골 방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 누비저고리를 입었던 소녀가 되고 싶다. 문풍지 소리가 힘들어하는 백발의 노인을 위로해 줄 것 같아서다. /이소애 시인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오늘도 머릿속이 노란 민들레 날이 갈수록 길은 자꾸 가팔라지고 봄바람에 마음 어수선하다 하루종일 입에 침이 마른다 갈 길이 천 리 아무리 치켜떠도 눈앞이 캄캄하다 정녕 지도 밖 길은 없는 걸까 꽃잎 흔들고 가는 바람에 애만 탄다 황사 바람 속 세상은 오리무중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체념하듯 날아오른 홀씨 하나 떠간다 지금 가는 길이 제 길이라 믿는 민들레 홀씨 두둥실 높다 △민들레 홀씨처럼 삶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화자가 허공에 떠돈다. 외로움의 농도를 저울에 올려놓지 않아도 번뇌의 아픔을 안다. “황사 바람 속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창공을 나는 홀씨의 슬픔과 두려움이 시를 부른다. 체념한 홀씨는 아파트 그늘을 지나 휘도는 바람이 붙잡는다. 찌그러진 단칸방에 몸을 내려놓지만, 민들레의 꿈은 “두둥실 높다” 바람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홀씨는 외롭지 않아야 산다. 그래야 꽃으로 핀다. /이소애 시인
햇빛 갈아입고 산에 올랐어라 탱탱한 도토리가 딴죽 걸어 길을 잃고 한참 정신 줄을 놓았어라 가랑잎 사이 얼굴이 붉은 가을을 줍다가 눈이 먼 죄로 지금도 도토리 키 재기하며 살고 있어라 △가을이 깊어갈수록 붉은 단풍이 “탱탱한 도토리”를 유혹하고 있다. 청춘을 물들였던 연정이 “정신 줄을” 잡아당겼던 가을이 간다. 쓸쓸한 밤엔 별빛처럼 더 아름다운 낙엽의 빛. ‘색’은 시인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스며든다. 이럴 땐 도토리 한 움큼 양손으로 쥐어보면 가을을 줍는 것일 터. 가을은 사랑했던 옛 기억으로 찾아올 것이다. 사랑은 갔지만 사랑의 기억은 남아있을 시인의 슬픔이 가을을 줍는다. /이소애 시인
진흙 속 백팔번뇌 깨끗이 정화하여 자비로 피어나는 연꽃의 계향충만戒香充滿 부처님 독경 소리가 온 누리에 스미네 *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어느 자리에서나 향기로 그 자리를 빛내주는 사람이 있다. 언제 만나도 환한 낯꽃으로 주변을 피어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백팔번뇌로 진흙탕이 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아무 말씀 없으셔도 내 귀에는 그의 독경 소리가 들리는 듯한 사람이 있다. 잘 정돈되어 안과 밖이 경건한 사람이 있다. 애써 내색하지 않아도 은은한 향기로 주변을 감싸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꽃이다. /김제김영 시인
연분홍 키 작은 꽃잎 넉 장 땅에 기듯 살아가는 짝사랑하는 낮달맞이꽃 큰 빛 은혜 받아도 희미한 사랑에 애자져 빈혈 앓듯 핼쑥한 꽃 진노랑 키 큰 꽃잎 넉 장 노란 꽃수술 달맞이꽃 초저녁이면 꽃몸 열어 기운 받고 새벽이면 꽃잎 접는 만족한 은혜 짱짱한 사랑 달빛 사랑이야 어떠하든지 믿음대로 피는 꽃 묵은 밭뙈기를 뒤덮은 달맞이꽃이 피기를 기다린 순간이 있다. 낮 동안의 열기를 잔뜩 머금은 어린 꽃봉오리가 ‘뽁’하고 터지는 순간이었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데미안』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낮달맞이꽃과 달맞이꽃은 빛과 온도를 가늠하여 피어나는 꽃이다. 달빛에 대한 믿음으로 피어나는 꽃이다. 새벽이면 밤새 받은 달빛의 은혜에 만족하는 꽃이다. /김제김영 시인
존망 지추 절박한 시절 돌담 초가집 찬바람 솔솔 나무꾼 지게 목발 두드리고 콧노래 부르며 산으로 간다 처녀총각 새끼줄 허리에 감고 지게 목발 장단 맞추고 나무하려 간다 휘파람 불어 올려 본다 총각 나무꾼 선녀와 만남 복연 선경 이라 지나간 추억의 나무꾼 도시로 도시로 가는 청춘 오는 백발 수구초심 이라 숙흥 온정 농경 문화 인간은 물 따라 산다 △가을 하늘이 텅 비어 고요하다. 시골 마을도 텅 비어있다. 서로에게 은근히 사랑을 고백하던 산골 마을의 청춘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다.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던 콧노래도 바람 따라 멀리 떠나버렸다. 이젠 아무리 애를 써도 휘파람은 돌아오지 않고 백발만 흩날릴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에도 없으랴, 더는 윗목에서 물그릇이 얼지 않는다고 추억조차 얼어붙었으랴! /김제김영 시인
매화향기 동글동글 영글어 수줍게 웃는다 쑥향이 짙어지고 올망졸망 감꽃도 피었어라 한잔에 봄을 마시고 빈 잔에 여름을 따르니 어느 하늘 어느 바람 끝에 머물러 있을 그리움의 조각들이 저홀로 눈물 짓더라 △계절을 타고 오는 모든 것이 어디 그냥 그것뿐이겠는가? 봄의 매화 향기며, 공터마다 초록 이불을 깔아주는 쑥 향기며 추억 속의 감꽃들은 그냥 그것만이 아니다. 어딘가에 묻혀있던, 아니면 무언가에 잠시 잊혔던 그리움의 조각들이 매화와 쑥과 감꽃을 매개로 기어코 눈물을 불러오는 것이다. 해서 나의 빈 잔은 그냥 빈 잔이 아니다. 다음 계절의 그리움을 미리 꾸어다 그렁그렁 채워놓은 잔이다. /김제김영 시인
아프게 하는 것들 때문에 슬픔이 가져다준 차가운 마음 적막에 스며드는 저녁 바람의 향기가 노크를 합니다 이제도 잊지 못하는 그리움 깊은 속가슴에 번지고 눈물로 여물은 씨앗 하나 고독한 마음밭에 심어 키웁니다 생의 물음표에 답하는 설렘의 꽃 숨결 피어나는 향기로운 그 기슭에 기대어 비로소 보이는 것 너머 뭉클한 마음의 소리 들립니다 생각에 살피던 얼룩진 마음일랑 씻어 내리고 생채기 딱지 진 자리에 핀 눈물꽃 바람의 향기로 마르는 날입니다 △슬픔은 “차가운 마음”을 가져다줍니다. 차가운 마음은 빗장을 스스로 닫아겁니다. 빗장 걸린 마음 안에서는 생채기 난 눈물이 흐릅니다. 그 “눈물로 여물은 씨앗 하나”가 마음 밭에서 자랍니다. 저녁 바람의 향기가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생채기는 “바람의 향기로” 말라 딱지가 지고 “고독한 마음밭에 심”었던 씨앗 하나가 제 문을 열고 나오는 중입니다. 더는 고독하지 않아도 될 시간입니다. /김제김영 시인
바람이 구름에게 구름이 비에게 비가 땅 위의 살아있는 것들에게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 간다 찬란한 햇빛이 기울어 호수 위에 어리는 노을이 산 그림자에 스며들 듯 그렇게 우리는 △온통 달맞이꽃이 전주천을 물들이고 있다. 노오란 색으로 강물이 물들어 노을도 노랗다. 그 길을 걷는 나의 마음에도 색이 스며들어 노랗다. 갈대 둥지에서 지저귀는 비비새 주둥이도 노랗다. 그래서일까. 등 굽은 노인이 천천히 햇살을 등에 업고 지나가더니 내 등도 물들어 굽었다. 곱디고운 한 편의 시가 너무 순수해서 기억이 노랗게 떠오른다. 장맛비 소리도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으로 물들고 있다. /이소애 시인
다들 피는 꽃이 하도 번지르르해 봄이 온 줄 알았다 입만 가지고 떠드는 꽃이 넘쳐나 어제는 옆집 김 씨 내외가 놀이터에 나와 피 터지게 싸우고 돌아가더니 오늘은 길 건너 담뱃집 모녀가 나와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들어간다 하다못해 떠돌이 개들까지 모여 어슬렁거리며 으르렁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네가 흔들리고 시소가 뒤뚱거린다 노을을 깔고 앉아 실없이 떠드는 말들이 가득하다 동네를 아무리 둘러봐도 싸우기에 이만하게 좋은 데가 없다 그대로의 야생野生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시가 존재한다. 시는 사람의 목소리와 행동에 민감해서 사람 닮은 시를 밖으로 내놓는다. <시의 소굴>이 그렇다. 팽나무 그늘에서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뒤척이며 동네 한 바퀴 돈 풍경화를 언어로 엮었으니 참 재밌다. “그대로의 야생”을 흔들리는 그네에 태워보면 “한바탕 소동”과 “피 터지게 싸우”는 동네가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야생의 속성은 자연을 거부하지 않은 거친 풍경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이소애 시인
화난다고 웃고 살면 어디 덧날까? 웃음은 유효기간이 없는 최고의 명약 둥근 세상 동그란 마음으로 웃으며 살자 웃음은 나와 이웃의 삶을 꽃피운다. 웃어보자, 웃으면서 서로 사랑하자 웃음은 슬픔도 이겨내고 빙산도 녹인다. △이웃 사람과 소통하기를 좋아하는 화자는 곧 시인의 자화상이다. “빙산도 녹인다”는 웃음에 우리는 왜 인색할까? 타인과 관계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시는 인생의 파도를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다. 시로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는 시인에게는 “동그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나면 늘 웃음꽃이 핀다. 웃음이 생의 고통을 녹인다. /이소애 시인
시드는 일은 씨種 드는 일인가 씨 드는 일은 시詩 드는 일인가 여름 내내 잉걸불처럼 끓어오르던 해바라기 저만큼 조용히 시詩 들고 있다 △“잉걸불처럼 끓어오르던 해바라기”에서 불타오르는 시인의 모습을 본다. 분명 시인은 “여름 내내” 탈고한 시가 책상 서랍에 가득할 것이다. 시인의 감성을 언어들이 해바라기 씨앗처럼 원고지에 서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부지런해서 여름 햇볕을 놓치지 않고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시로 여물어 갈 것이다. 금방 시들어 갈 꽃의 눈물도 시詩가 포용하는 여름의 끝이 보인다. /이소애 시인
밤 깊이 나직나직 눈이 오시네 지금까지 있었던 일 다 헛것이라며 세상 떠돌던 이야기는 전설로 변하며 밤이 깜깜함 털어내어 눈이 오시네 세상 소리는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라며 모든 만물은 하나로 보라며 가물거리던 기억은 덮으며 눈이 새 판으로 오시네 하늘이 처음으로 세상에 하늘 빛깔로 내려서며 사람들은 감동하라고 이쯤으로 정갈하게 종교 하나 펼치라고 사복사복 눈이 오시네 △‘눈이 오시네’는 마치 냉커피를 마실 때처럼 더위를 가시게 한다. 긴 장마와 된더위에 부대끼는 가난한 독거노인 안방에도 ‘나직나직’ 눈이 오시어 외로움을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유랑하는 낮은 영혼에 반짝반짝 하얗게 빛을 내는 눈이었으면 좋겠다. 그리움과 쓸쓸함을 위로해 줄 ‘눈’은 분명 ‘사람들은 감동하라고’ ‘사복사복’ 지붕을 덮을 것이다. 폭염이 눈으로 변신할 때 여름과 겨울을 기억하는 감정이 저장될 것이다. /이소애 시인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 한 줌을 손에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 나간다 사랑도 그러 하리 소유하려고 하면 할수록 멀리 도망가거나 자꾸만 오장을 긁다가 밤하늘에 뜬 그믐달이 되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모래알이나 심장을 터지게 한 사랑이나 품을수록 허망한 것이다 △품을수록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사랑은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가장 간절한 감정이다. 가장 소중한 감정이다. 그런 만큼 사랑은 붙잡아 두려 하지 말고 우리 곁에 머물게 하면 될 일이다. 우리 곁에서 서서히 번지도록 돌보아줄 일이다. 해서 찬란하게 피어나도록 가꿀 일이다. 모래 한 줌도 제대로 소유할 수 없는 우리가 사랑을 소유하는 일은 꿈에라도 하지 말 일이다. /김제김영 시인
눅눅한 여름을 말리느라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대며 가을을 재촉하는데 세월의 빠름에 아쉬움이 커가는 노인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장마가 끝이 나고 매미의 힘찬 날개 짓은 여름을 말리는 듯하고, 우렁차게 우는 소리는 가을을 부르는 듯한데, 자꾸 세월이 가는 것이 노인에게는 아쉬움이 더해간다.
꽃샘바람이 살랑대며 능선을 넘어오면 잠자던 가지에서 새싹들이 내밀 즈음 기다렸던 그리운 소식도 함께 오겠지. 세찬 바람결을 잊으려는 매화도 갈 곳 잃은 마음을 달래려는 듯 품을 열고 가냘픈 손짓을 하는데. 꿈에 그리던 여인도 전령을 따라 고운 바람결에 미소를 담은 채 해맑은 모습으로 고개 넘어 찾아오겠지 △꽃샘바람 분다. 잠자던 가지에서 새싹이 돋는다. 매화도 손짓하고 바람결에 들려오는 남녘의 소식도 손짓한다. 꽁꽁 언 땅이 겨울을 견뎌내는 힘은 단 하나, 봄이 데리고 올 여인의 미소다. 여인은 우리가 바라던 각자의 소망이며 꿈이다. 온천지에 봄빛 가득하다. 우리가 기다리던 여인도 “해맑은 모습으로 고개를 넘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김제김영 시인
겨울잠에서 깬 지렁이가 쭉 쭈욱 한바탕 몸을 늘린다 어디로 갈까 눈도 귀도 다리도 없는데 온몸을 꿈틀꿈틀 꼬불꼬불 땅속에 길을 내며 산수유 발가락을 간질간질 개나리 발가락을 간질간질 발가락들이 웃는다 방긋방긋 봄이 웃는다 △겨울잠을 자던 지렁이 한 마리가 세상에 봄을 불러온다. 어두운 땅속을 헤집어가며 산수유와 개나리와 목련을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콧속이 간질거리다 재채기 터지듯이 뿌리가 간질거리다 봄꽃이 팡! 팡! 터진다. 나무가 새잎을 낸다. 간질거린다는 말은 미동도 없어 죽은 줄 알았던 감각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지렁이가 기지개를 켰다는 말이다. 방긋방긋 웃는 봄이 온다는 말이다. /김제김영 시인
언제부터일까 뒤꿈치 터진 양말 한 켤레 함부로 걸려있네 고단한 발품으로 찢긴 상처 후우욱 구멍으로 빠져나온 한숨이 가슴속을 파고드네 어느새 흰머리가 돋고 복숭아뼈 그 자리에 새겨진 꽃잎 두 쌍 거친 들길 걷다 걷다 보풀로 물집이 맺혀있네 가늘게 떨고 있는 울타리 코끝 구멍 난 양말 한 켤레 아내의 고단한 하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네 △고단한 하루가 키워내는 것들이 있다. 구멍 난 양말이 돋아주는 것들이 있다. 가진 것 없어도 기백만큼은 짱짱한 젊은 아버지들과 나이는 들었어도 사랑은 아직도 낡지 않은 부모님들과 풋과일처럼 상큼하나 아직은 덜 성숙한 아이들을 저 구멍 난 양말이 키웠다. 정작 본인은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한 번도 위태롭지 않았던 것처럼 태연하게 웃어주는 아내가 키웠다. 해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김제김영 시인
보리밥에 열무김치 비벼주던 칼국수 집이 사라졌다 대를 이어오던 누이반점이 문을 닫았고 초밥집과 왕돈까스집도 임시파일처럼 삭제당했다 자애로운 불빛이 자취를 감춘 골목식당은 이야기를 얹은 숟가락과 밥그릇 대신 임대 놓는다는 시든 현수막 바람에 멍들어 있다 양손을 들고 꿇어앉아 있는 의자들과 그림자들이 손님인 듯 빈둥빈둥 튀어나와 지나친 시련과 피로를 야금야금 삼킨다 어둠이 꽁초를 던지고 가래침을 뱉는 검은 에너지가 적막을 켜켜이 지어 소복이 퍼 담는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불빛이 꺼버린 가게와 바람에 찢어진 현수막만 아우성치던 시장 골목들이 지독한 어둠을 딛고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어둠은 꼭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만은 아니어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환한 마음이 되었다. 서로의 가슴에 훈훈한 불씨가 되어 서로의 안녕을 챙기는 따듯한 이웃이 되었다. “적막을 켜켜이 지어”내던 시간은 이젠 웃음을 담뿍 담아 건네주는 훈훈한 인정이 되었다. /김제김영 시인
[경제칼럼]인구가 깡패다
[전북칼럼]피지컬AI와 에너지 대전환과 협업이 우리의 미래다
[문화마주보기]첫눈
[기고] 뉴욕에서 분 작은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익산에 새로운 바람으로
[오목대] 허물 수 없는 기억 ‘새창이다리’
[사설]전주시, 주 4.5일 근무제 민원 불편 없어야
트롯 유감
서양미술, 인물 초상화의 역사
[딱따구리] 농어촌기본소득 선정 관련 갈등보다는 성숙된 주민자세 갖길 기대한다
[사설] 전북인권사무소 빨리 설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