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날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석별의 정을 담아 건네주는 돈이‘전별금’이다. 겉봉에‘촌지’나‘미의(黴意)’,‘전별(餞別)’이라고 써서 주는 작은 성의지만 주고 받는 사람들의 정의는 남다르다. 다른 표현으로‘노자(路資)’라고 쓰는데서 보듯이 왕조시대 이래의 우리의 오랜 관행이자 미떡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전별금이 때로는 뇌물로 둔갑하여 공직의 명줄을 끊기도 하고 패가망신의 횡액을 안겨주기도 한다. 상식선을 넘는 두툼한 봉투는 이미 전멸금이 아니라 뇌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받는 쪽이 힘있는 자리일 경우 동티 날 확률도 그만큼 크다.
지난 99년 법조계를 들썩이게 했던 대전(大田)법조비리 사건도 단초는 바로 전별금이었다. 손이 크기로 소문난 한 변호사가 판·검사들을 초청해 자주 술 좌석을 만들고 이임할 때 액수가 상당한 전별금을 쥐어 줬는데 그게 정도를 벗어나‘뇌물성’으로 처벌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대법원에서 뇌물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당시‘뇌물’과‘전별금’의 한계는 블랙유모어의 단골 메뉴가 되기도 했었다.
검찰도 시인했듯이 판·검사들이 이임할때 변호사나 지역 유지들이 전별금을 전달하는것은 일종의 관례였다. 다른 기관이나 일반 기업체도 다르지 않다. 훗날을 기약하고 일종의 보험금이라는 사시(斜視)가 문제지 그‘미덕의 관행’자체를 폄훼할 일은 아니다.
요즘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특검에 구속된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씨가 몇몇 안면있는 검사에게 전별금을 줬다하여 여론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 액수도 그리 많지 않은것 같은데 곁가지로 불거진 가시가 검찰을 당혹케 하고 있다.
마침내 검찰총장이 검사의 품위와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일체의 전별금을 받지 말라고 엄맹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구설(口舌)에 올라있는‘전별금 문화’를 바로 잡겠다는 다짐도 했다.
물론 관행이라 해서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전별금이 그대로 통용되는것을 두고만 볼수는 없다. 그게 시대가 바라는 변화욕구에 합치하는 길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緣)을 잇는‘작은 정성’마저도 금기시 하는 그런 사회풍토에서 어떻게 공동체의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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