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 한때 아시아의 맹주(盟主) 자리마저 빼앗기고 동네축구로 전락했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던 한국축구가 드디어 신기원(新紀元)을 이뤄냈다.
성질이 불같은 축구팬들은‘결승까지 갈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하고 있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4강고지를 점령한것만도 신화창조요 기적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축구 월드컵 4강은 결단코 우연이 아니었다. 세계의 변방 축구신세를 면치 못해온 한국축구의 고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한 히딩크 감독, 감독의 훈련 스케쥴에 온 몸을 던진 태극전사들, 그리고 전 국민이 하나되어 보내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예고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예리한 판단력과 원칙을 중시하는 추진력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한국축구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엄정한 선수선발과 체력 보강·즐기는 축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자기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작년 컨페더레이션컵 대회에서 프랑스에 0-5로 대패를 당했을 때나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5로 수모를 당했을 때도 그는 꿈쩍않고 자신의 방법을 고집했다. (감독이 한국인이었으면 진작 쫓겨났겠지만) 어쨌든 그는 한국축구에 새 역사를 쓰고 영웅이 됐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국인의 기질과 한국적 풍토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한국축구의 고질병이 정실에 의한 선수 선발과 경기 후반 급격히 떨어지는 허약한 체력, 그리고 반드시 골을 넣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문전 골처리가 미숙했다는 점을 웬만한 축구팬이라면 모르는이가 없다.
더구나 무명(無名)시절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박종환 감독은 이미 한국축구의 고질병을 확실하게 진단하고 한국축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카리스마라면 두번째 가라하면 서뤄워할 그도 대표팀 감독을 맡고 나서 부터는 웬일인지 제대로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불명에 퇴진을 하고 말았다.
요즘 그는 사석(私席)에서“왜 외국인 감독은 되고 한국인 감독은 안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하고 있다고 한다.‘원칙이 통하는 사회’바로 이것이 왕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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