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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달력인심


달력만큼 세월의 흐름도 느끼게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겨우 5장 남은 일력(日曆)이 세밑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맘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한해를 반추해보기 마련이다. 보람차게 한해를 보낸 사람에게는 흡족함이,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에게는 회한이 먼저 찾아올 것이다. 달력은 삶과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달력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교황칙서를 통해 그때까지 사용되어오던 율리우스 달력을 개혁한 것이다. 율리우스 달력은 로마제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명령으로 만들어졌으나 1일의 정확한 길이가 자신들이 정한 길이보다 11분이 더 긴 사실을 간과하여 몇백년이 지나면서 큰 오차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율리우스 달력이 1천년이상 사용되면서 실제 계절과 10일간의 오차가 생긴 것을 바로잡고 개선된 윤년법칙을 도입했다.

태음력만을 사용하던 우리나라에 태양력이 도입된것은 1897년 1월1일 고종황제가 태양력 사용을 공포하면서 부터이다. 당시만해도 달력은 관공서에나 붙어 있어 일반국민들은 관이나 저자거리에 붙은 책력을 보고 날짜를 알기도 했다. 6·25전까지만 해도 달력있는 집이 드물 정도였다.

이처럼 귀한 달력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지역구 주민들에게 달력을 돌린 정치인들의 덕분이었다. 신문지 크기의 종이에 자신의 사진을 넣고 열두달을 차례로 표기했다. 음력이나 농사와 관련된 절기까지 다 기록돼 있어 벽에 부착해 놓고 요긴하게 활용했다. 농촌지역 주민들에게 매년 달력을 돌려 인지도를 높임으로써 국회의원에 당선돼‘달력 국회의원’이라는 별명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달력의 전성시대였던 1960∼1980년대에 달력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기업의 가장 효율적인 광고매체였고, 지속적으로 정치인들의 선전수단으로 쓰여졌다. 또 국정치표나 영농정보 등을 알려주기 위한 공익광고수단으로도 활용했다. 이처럼 많은 달력이 제작되다 보니 연말연시에 달력 구하는 것은 별로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이후 기업들이 달력제작비를 줄이면서 부터 달력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풍성했던 것이 달력인심이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 삭막한 느낌이 드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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