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 26대 고종(高宗)임금과 귀인 장씨 사이에 셋째 아들로 태어난 분이 의왕(儀旺) 이강(이綱: 1877∼1955)공이다. 조선로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의 이복동생이고 영친왕(英親王) 이은(이垠)공의 이복 형이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의왕이 17세가 되던 1893년 9월 김사준의 딸을 맞아 가례를 올렸으며 슬하에 우와 건 두 아들을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록과 달리 의왕은 의친왕으로 더 알려져 있으며 정비(正妃)를 포함해서 모두 7명의 부인과 혼례를 올려 슬하에 13남9녀를 둔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00년에 미국에 유학한후 귀국(1965년) 후에는 적십자 총재를 맡기도 했으나 1910년 한일합방후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방탕한 생활도 풀어 항간에 파락호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여럿의 아내, 스물두명이나 되는 자녀는 이처럼 절제되지 않은 왕성유습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실 의친왕은 창일독립투사들을 비밀리에 돕는 등 일제에 합리한 퇴락한 왕실의 마지막 지사(志士)라 할만했다.
그 의친왕의 열한번째 아들이 1970년대 '비둘기집'이란 노래를 불러 인기를 모았던 가수 이석씨(본명 이해석·62)다. 왕실의 몰락으로 고종의 손자녀가 되는 형제자매들은 뿔뿔이 헤어져 지금은 소식조차 서로 끊고 지내고 있다했다. 그 자신도 불행한 결혼 생활로 가정마저 이루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그의 사연은 얼마전 KBS 인간극장에 자세히 소개돼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린바 있는데 그가 최근 전주를 자주 찾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왕조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전주에서, 더구나 이태조의 어진(御眞)을 보존하고 있고 경기전에서 열린 한지패션에 그가 초대된 것은 제법 의미있는 일이다.
그가 왕손으로서 전주를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60년대 말 고종의 딸로 알려진 황녀 이문용 할머니가 경기전내의 조경전에서 기거한도 사실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당시에도 황녀 스토리가 작가 유주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바 있다.
마침 전주시의회 주재민의원의 제안으로 마지막 왕손 이 석씨의 '전주 정착지 마련'여론이 일고 있다. 그가 조선왕조 개국의 발상지라 할 경기전 지킴이가 되어 왕실문화와 전통의 맥을 있게 하는 것도 아주 근사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그 앞길이 태조로(太俎路)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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