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들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허생원과 허생원의 아들로 유추되는 애송이 장돌뱅이 동이, 그리고 또 다른 잘돌뱅이 조선달이 함께 메밀꽃이 핀 밤기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보는듯 아름다운 풍경이다.
메밀은 아시아 북중부가 원산지로 줄기는 높이가 60∼90㎝이고 대공은 비어 있으며 곧고 붉은 색을 띤다. 잎은 세모꼴의 심장 모양으로 어긋나 있다. 중복(中伏, 양력 7월20일 전후)무렵 파종하며, 초가을에 흰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모여 핀다.
한줄기 꽃으로만 따지면 향기롭지도, 자태가 그리 곱다고 할 수 없다. 하나라 피었다 지면 주목도 못받을게 뻔하다. 하지만 무리지어 밭고랑을 메우고 있는 모습은 어지러울 정도로 환하다.
이효석 작품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일대는 초가을 이면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봉평에서는 이효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때쯤 '효석문화제'를 개최한다. 올해로 5회째이다. 소설의 무대 분위기를 살려 1930년대 봉평시장, 물레방아 등을 재현하고 6만여평의 메밀밭에서 지역축제를 개최한다.
지난해 축제기간중 전국에서 30여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공적인 지역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파란 가을하늘 아래 그림처런 펼쳐진 메밀꽃을 우리 고장 고창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도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鶴苑)농장에 조성된 4만여평의 메밀밭에는 지금 이효석의 표현처럼 소금을 뿌려 놓은듯 메밀꽃이 만개했다. 이곳은 지난 봄에는 보리를 심어 온통 청녹색 물결을 이루었던 곳이기도 하다. 바람에 따라 펼쳐지는 너무나 유연한 물결이 많은 관광객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 주었다.
마침 어제부터 고창 선운산 일대에서 풍천장어와 꽃무릇축제가 열리고 있다. 꽃과 잎이 따로 피는 까닭에 상사화로도 불리는 꽃무릇은 선운사 초입부터 도솔암까지를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는다. 무서리 처럼 하얀 메밀곷과 붉게 타는 꽃무릇이 지금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지겹던 비도 그친 초가을 잠시 짬을 내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경관과 맛을 찾아 나서는 주말 나들이도 의미가 있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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