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몰라도 '한자교육진흥법안'을 발의한 모양새를 보아하니 역시 국회의원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이 법안을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 등 의원 85명이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역시 국회의원의 주요 책무가 법안을 만드는 것인지라 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 등 주무부서와의 정책 협의 없이도 법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발의한 법안이 한글전용론자들의 심기를 자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동안도 우리는 한글전용에 대한 논의를 자주 접해 왔기 때문에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이번 법안을 발의한 박원홍 한나라당 의원은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현실의 추세와 한자문화권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고유 문화유산과의 관련성 등을 발의 사유로 밝히고 있다. 이 법안이 한자 교육을 체계있도 내실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의 어문정책 방향을 일거에 바꾸게 될 파괴력을 갖고 있음은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한 나라의 어문정책은 법률로 한정될 문제가 아니다. 전국민의 의사소통에 대한 규범이라는 점에서 몇 명의 국회의원이 머리를 맞대고 법조문을 만들어 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상식에 벗어난다. 듣자 하니 이법안을 상정하기까지 공청회 한 번 갖지 않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법안이 그동안 정부에서 어문정책을 아우르는 성격을 띤 '국어기본법'의 추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국어기본법이 바람직한 최상의 법안인지를 따로 따져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공개적으로 입안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한자교육진흥법안이 국어기본법과의 관계설정도 생략한 채 불쑥 발의된 것이다. 그 내용 역시 국어기본법의 국어심의워(기존 기구), 국제한국어진흥원 설립, 국어검증시험 지원 등의 조항이 중앙·지방한자교육심의회 설치, 한자교육개발진흥원 설치, 한자검증시험지원 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 국어기본법의 추진을 막기 위한 것이란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만도 하다.
물론 이런 한자교육진흥법안이 불합리성이 곧 국어기본법의 합리성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국어가 표의체계라는 생각을 가진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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