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핀잔을 들을지 몰라도, 우리나라를 절대 가난에서 구해낸 50대 이후 근대화의 역군들은 거의 다자연부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금방 죽어가는 사람도 병원 문턱 밟기가 어려웠던 그 시절, 의사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죽으나 사나 집에서 무명이불 깔고 출산을 했다. 요즘 처럼 주거환경이 변변한 것도 아니고 위급할때 찾아갈 의료시설 마저 귀했으니, 사실 위생·의료사각지에서 목숨 걸고 아이를 낳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이낳다 세상 뜬 산모가 하나 둘이 아니고, 출생한 아이도 얼마 못가 잃어버린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더구나 전염병이 한번 휩쓸고 가면 잘 크던 아이도 맥없이 보내야 했으니, 성년이 돼야 드디어 '살았구나'하고 안심을 했다. 한마디로 그 세대들은 철저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대로 이 세상에 살아남은 우성인자를 지닌 존재들이다.
그러다가 산업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 사상과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면서 우리의 출산문화는 엄청난 변화의 길을 걷기 시작햇다. 웬만한 중소도시까지 병원이 들어서고 아이 낳기도 그만큼 수월해지는가 싶더니, 60년대부터 시작된 가족계획운동이 점차 가속가 붙어 이제는 출산율이 1.17명까지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이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의학의 발달로 한번 임신한 아이는 별탈없이 낳아 자라게 되는데, 이는 입학시험이라는 경쟁의 문을 뚫지 않고 무조건 접수 1번을 합격시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저능아와 무력아도 귀한 생명이기는 하지만, 살 수 없는 아이를 미국까지 가서 살렸다는 것은 가족 모두에게 불행한 일 일수 있다”면서 "인간은 이미 진화현상을 멈추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고 있다.
한데 요즘 젊은 부부들이 유전학적으로 충실한 아이를 낳도록 힘쓰기 보다는 빗나간 부모사랑을 쏟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내 자식에게 최대한 특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 해외 원정출산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억지 궤변 늘어놓으며, 자기합리화를 꾀하지만 '이기심의 극치'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박탈감을 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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