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보내고 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 때 쯤이면 평소에 서로 마음은 있으면서도 바쁜 일상에 쫓겨 만나지 못한 사람들끼리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따뜻한 정이 담긴 연하장을 주고 받는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우체국에서는 연말연시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연하장과 카드를 분류하기 위해 전 직원이 철야로 매달리고, 엄청난 배달물량으로 집배원들의 한쪽 어깨가 더욱 처지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연하장이 받는 사람을 기쁘고 흐뭇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름과 직책도 틀리게 해서 보내거나 똑같은 이름으로 두장씩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천편일률적 내용에 자필서명까지 인쇄한 연하장을 받을 경우에는 고맙기는 커녕 짜증과 불쾌감에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의 연하장 격인 성탄절 카드는 1843년 영국의 미술교육가 헨리 콜경이 왕립미술 아카데미회원인 존 칼레 호슬리에게 만들도록 부탁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당시 카드에는 한 가운데에 행복스런 가정의 모습이, 양 옆에는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을 먹여주고 입혀주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에게 성탄절 카드가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6·25직후 미군부대에서 카드가 흘러나오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유행하면서 부터이다. 그에 앞서 우리에게도 비슷한 풍속이 있었다. 조선조때 새해를 맞아 하급관리가 상관집에 문안을 드리고 명함을 놓고 오는 세함 풍습이 그것이다. 세배를 갔다가 윗사람이 없을 때는 방명록에 해당하는 세장(歲帳)에 이름을 써놓고 왔다. 오늘날 일종의 연하장인 셈이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1천만대를 돌파하면서 세계 1위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우리의 눈부신 정보화가 연하장 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e-메일 사용의 보편화로 종이 연하장의 수요가 크게 줄고, 반면에 인터넷을 이용한 연하카드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e-카드사업을 하는 한 업체는 시작 첫해인 2000년 연말에 회원수가 10만명에 불과했으나 3년만에 2백만명으로 늘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디지털세상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추세라지만 정성스럽게 사연을 적어 두고두고 온기가 남는 아날로그식 종이 연하장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