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이다. 24절기의 첫번째로 예전에는 입춘을 한해의 첫날로 삼았다. 농사채비도 이날부터 서둘렀다. 부인네들은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남정네들은 겨우내 넣어둔 농기구를 꺼내 손질하며 한해 농사에 대비했다.
입춘을 앞두고 이번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2∼3일 계속되고 순창 복흥에 70㎝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는 등 도내 서부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지만 어제부터 눈도 그치고 강추위도 오늘부터 풀린다는 기상대의 예보이고 보면 어김없는 절서(節序)의 약속이다.
박문재시인이 그의 시 ‘입춘 지나서’에서 ‘나무가지 끝마다/푸른 혈액이 감돌고’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제부터 얼음장 밑으로 봄의 숨결이 흐르고,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도 서서히 물이 오르게 될 것이다. 벌써 남녘으로 부터의 동백과 매화 화신도 들려오고 있다. 봄은 종종걸음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농가월령가의 정월령에서도 ‘정월은 맹춘이니 입춘·우수 절기로다/산충간에 빙설은 남았으나/평교광야에 운물이 변하도다’라고 자연의 변화를 일러준다.
입춘이면 집의 대문이나 기둥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붙이는 우리네 풍속이다. 입춘축(立春祝) 또는 춘련이라 부르는 이 글귀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비롯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망복래(開門萬福來)’ 등 집안의 행복과 평안,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내용을 대구(對句)로 붙였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인들에게는 이미 사라져버린 세시풍속이 돼버렸다. 아파트 공간에 입춘축을 써붙일 마땅한 장소도 없을 뿐아니라 입춘축을 쓸만한 서예솜씨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입춘이 지났다고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봄으로 향해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들은 절기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지속되는 경기침체에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는 물가고등 각박한 생활여건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온건과 강경, 개발과 보전 등으로 나뉘어져 빚어지고 있는 갈등과 대립은 모든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새봄에 가져보는 희망과 기대가 실망과 좌절로 바뀌지 않는 올 한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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